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Dec 20. 2017

03. 사용자의 경험을 우선으로 하는 가전업체, 하이얼

<중국 디자인이 온다>

하이얼은 중국을 대표하는 가전업체다. 유럽, 일본, 호주, 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대중적인 브랜드가 된 지 오래이며 중국 내에서는 ‘하이얼 가전 왕국’이라는 애칭까지 붙었다. 국내 가전 매장에서도 세탁기, TV 등 하이얼 제품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영국 유로모니터에서 실시한 세계 가전 브랜드 설문조사에서는 하이얼이 7년 연속 1위로 선정되었고,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발표한 ‘2016 중국 브랜드 가치 100대 기업’에서는 처음으로 1위를 거머쥐었다. 2012년에는 산요전기 브랜드의 백색가전 부문을 인수하고, 2016년에는 미국 GE의 가전 부문을 인수하며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이얼은 특이하게 중국이라는 큰 내수 시장을 갖고도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해온 기업이다. 이 과정에서 ‘선난후이(先难后易: 어려운 곳을 먼저, 쉬운 곳은 나중에)’ 전략을 채택하고 품질 기준이 까다로운 유럽, 미국 시장부터 공략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성공하면 국내에서도 입지를 굳히기 쉽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하이얼의 해외 진출은 쉽지 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Made in China의 품질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 있었고, 유럽 사람들은 선뜻 하이얼의 제품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이얼은 이를 돌파하고자 미국 법인을 세워 Made in USA를 강조하였으며 현지 사정에 맞게 디자인들을 개발했다.

그 효시를 알린 제품이 바로 와인 냉장고다. 당시 와인 냉장고는 미국 시장에서 그리 큰 규모를 차지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와인을 즐겨먹었지만 그냥 소형 냉장고에 보관할 뿐 전용 냉장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이얼은 적정 온도와 고급스러운 외관을 갖춘 와인 전용 냉장고를 개발하여 미국 시장을 공략하였다.

하이얼 와인 냉장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고 생각보다 판매가 미진했다. 그러자 하이얼 그룹은 자동차 회사 링컨과 손을 잡고 신차를 구매하면 하이얼 와인 냉장고를 보너스로 얻을 수 있는 프로모션을 기획했다. 링컨이 미국 내에서는 고급 자동차 브랜드로 입지를 다졌기 때문에 하이얼의 브랜드 이미지 역시 함께 향상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후 와인 냉장고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하이얼은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하이얼은 와인 냉장고의 성공에 힘입어 소형 냉장고 시장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내의 소비 시장을 조사해보니 희한하게 북미 지역에서 소형 냉장고의 판매량이 높았다. 북미 지역에는 대학생들의 기숙사가 많았는데, 하이얼의 소형 냉장고는 윗면이 평평하여 기숙사의 좁은 공간에서 책상으로 활용되고 있던 것이다. 이에 주목한 하이얼은 냉장고 윗면에 접이식 판을 덧대 좀 더 편리하게 책상으로 사용하게끔 만들었고 이는 미국 대학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이렇게 사용자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서 시작한 하이얼의 브랜드 철학은 중국 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1996년 하이얼의 세탁기를 구매한 한 농민이 배수관이 막혔다고 수리를 요청한 사례가 있었다. 세탁기에 고구마를 씻은 탓에 고구마가 배수관에 걸렸던 것이다. 곧장 조사에 들어간 하이얼은 이 지역의 많은 농민들이 세탁기를 그와 같은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을 파악했고, 6개월 뒤 고구마 세척 전용 세탁기를 출시했다. 비록 이 지역에서만 활용 가능성이 높은 제품이었지만 하이얼은 고객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중국의 유명 기업 알리바바의 회장 마윈의 자서전에도 하이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집에 갔더니 가전제품을 한 번도 구입한 적이 없는 어머니께서 자신에게 하이얼 제품을 권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어머니는 이렇게 답하셨다.

“그 회사는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러 오면 마루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덧신까지 가져와 신더라. 그리고 에어컨을 설치하는 동안 소파와 가구를 천으로 덮고 설치가 끝나면 준비해 온 천으로 에어컨이랑 바닥까지 깨끗하고 닦아주고 가니 정말 고맙지.”

마윈 회장은 여기서 그들이 천으로 닦았던 것은 바닥이 아니라 고객의 마음이라고 탄복하며 하이얼의 고객 서비스를 높이 평가했다. 이처럼 고객의 마음을 읽고 배려한 하이얼의 사례들은 점차 입소문을 타고 퍼졌고 하이얼은 해외뿐 아니라 중국 내에서도 탄탄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실제 하이얼의 브랜드 디자인 철학은 ‘사용자의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다. 하이얼에서는 불필요한 디자인이나 과도한 포장을 지양하고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이런 하이얼의 사용자 중심적 생각은 2013년 국제적인 디자인어워드, 레드닷 디자인어워드의 제품 디자인 분야 수상으로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은 하이얼의 냉장고에 있는 슬라이딩 레일 서랍 덕분에 대용량 냉장고에서 음식을 가져오는 불편함을 해결했다고 극찬하며 하이얼의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디자인적 요소를 높이 평가했다.

                            레드닷 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한 하이얼 냉장고 <Haier 3D Fridge>


현재 하이얼은 소비자의 탄탄한 신뢰를 기반으로 여러 라인들을 구축 중이다. 대표적으로는 카사르테(Casarte)라는 프리미엄 라인을 선보이면서 고급 가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카사르테에서는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 3인을 초빙하여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매년 IF 디자인어워드, 레드닷 디자인어워드, 골든 해머 어워드 등 국제적인 디자인 상을 휩쓸고 있다.

청소 기능이 결합된 하이얼 공기청정기 


카사르테 라인의 세탁기 <Casarte 27“ Ultrathin Washer>                         <Casarte C802 Washer>



또 산요전기를 인수하며 만든 아쿠아(Aqua) 라인에서는 산요의 기술력과 하이얼의 추진력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 초소형 세탁기를 개발했으며 IOT 기술과 결합한 스마트 냉장고를 선보였다.

아쿠아 라인의 초소형 세탁기 <Aqua Cotton>                       아쿠아 라인의 스마트 냉장고 <Aqua Digi>


이 냉장고는 평상시에는 커다란 액자처럼 있다가 어플을 통해 원하는 화면으로 바꿀 수 있으며 인터넷 쇼핑몰에 접속하여 장을 볼 수 있는 기능도 탑재하고 있다. 여기에 식품의 유통기한 확인과 레시피 추천 기능까지 있으니 궁극적으로 하이얼은 ‘콘텐츠 있는 냉장고’를 탄생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이얼은 사용자 우선이라는 목표 아래 시시각각 변하는 산업 패러다임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열고 진화 중이다. 실제 하이얼은 독립된 디자인 부서의 인원을 줄이고 매년 600개가 넘는 외부 디자인 회사와 일하며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제품을 내놓는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디자인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단 산업 패러다임과 기회에 따라 디자인을 유연하게 변화시키는 데 강하다.

이러한 고객의 니즈에 대한 접근은 공자의 ‘서(恕)’의 철학을 연상케 한다. 공자는 『논어』 위령공(衛靈公)편에서 자공과 나눈 대화에서 ‘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자공: 평생토록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 그것은 서(恕)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공감이다. 이때 ‘서’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이 합쳐진 것으로 ‘같은 마음’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남과 같은 마음, 사용자의 마음이 되는 철학인 것이다. 하이얼 역시 이러한 ‘서’의 철학을 바탕으로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내놓으며 중국 UX 디자인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05. 책에 모든 마음을 쏟아야 한다. (마지막 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