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캐릭터를 찾아라_숨바꼭질 그림 놀이

<내 아이를 위한 그림 육아>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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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그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슈퍼맘이 아니다. 이것을 인정해야만 일과 육아의 줄다리기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두 돌이 다 되어갈 즈음에야 깨달았다.

출산 3주 만에 작업에 복귀해 개인전을 비롯한 대외 활동들을 빡빡하게 이어나갔다. 작업 시간이 부족해 집 안에 이젤을 펴놓고는 아기의 눈치를 보며 아기가 자는 틈틈이 일을 이어나갔다. 낮잠 시간이 줄어드는 아이의 성장 패턴에 맞추어 작업 패턴도 바꾸어야 하니 아이와 함께 일하는 것이 이만저만 힘들지 않았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전업 주부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났다. 그나마 내가 집에서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프리랜서라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나와는 달리 상황이 녹록지 않은 엄마들은 원치 않게 경력이 단절되기도 한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하면서도 ‘힘만 들고 티도 안 나는’ 육아는 심신을 지치게 했다.

생후 17개월 무렵 아이를 다소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를 장시간 떨어뜨려놓고 일한다는 죄책감이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감기를 달고 다닐 때면 아이를 너무 고생시키는 것이 미안해 처절하게 울면서도 일을 멈추지 못했다. 다른 ‘보통의 워킹맘’처럼. 급기야 아이가 애정이 부족한지 어린이집에서도 이불을 놓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함께 있는 시간에 충분히 사랑해줄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보았다.

본격적으로 아이와의 미술 놀이를 준비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 워킹맘의 애환이 담겨 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이라도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아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자는 마음이었다. ‘양보다는 질로 하는 육아’를 결심하고 나서 미술 놀이가 번거롭더라도 일하는 엄마의 미안함을 그렇게 줄여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미술 놀이를 하면서 육아의 피로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몰라 지루하기도 했던 육아는 미술 놀이 덕분에 엄마와 아이가 함께 즐기는 시간으로 바뀌어갔다. 엄마가 리드하는 놀이에 아이가 기뻐하는 것이 힘들게 육아에 끌려 다니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놀이 중에 아이를 안아주고 칭찬해줄 때마다 아이는 기쁘고 뿌듯한지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치곤 했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준비해준 미술 놀이 식탁에 앉아 ‘오늘은 뭐지?’ 하는 듯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을 때면 나도 아이와 함께할 미술 놀이가 기대되었다.

늘 곁에서 돌보아주지는 못해도 함께하는 놀이의 추억이 새롭고 즐거운 자극으로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 스케치북 한 장 한 장에 담겨갔다.

다양한 놀이를 하다 보면 특별히 아이가 좋아하는 활동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린이는 손에 직접적인 촉감이 느껴지는 놀이는 적극적으로 즐기지 못하지만 도구를 활용한 그리기는 소리를 지를 만큼 좋아한다. 임신 중에 늘 붓으로 그림을 그려서인지 특히 붓을 쓰는 활동을 좋아한다. 아이는 물통, 작은 물감 접시들, 스케치북을 늘어놓고 손에 붓을 쥐여주기만 해도 즐겁게 놀았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좀 더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도록 ‘엄마와 함께하는 수채화 놀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린이도 뽀로로 캐릭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지나가다 캐릭터를 보면 만져보고 소리 지르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번은 아이가 안 볼 때 스케치북에 하얀 크레파스로 뽀로로 캐릭터를 그려놓았다.

여느 때처럼 물감으로 붓질을 하던 아이가 종이에 어떤 형태가 떠오르자 멈칫하며 신기해했다. 반 이상 붓질이 지나가자 아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아이는 “뿌아, 뿌아”를 외치고 박수를 쳤다. 종이의 흰 부분을 채우자 선명히 드러난 하얀 캐릭터. 나는 아이에게 스케치북을 보여주며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기는 칭찬에 무척 민감하기 때문에 엄마의 칭찬을 좋아하고 칭찬해주는 엄마에게 오랫동안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6 아이를 칭찬해주면서 평소와는 다른 미술 활동의 기쁨을 알려줄 수 있어서 나 역시 기뻤다.

흰 드로잉으로 깜짝 이미지를 선물한 이후, 평범한 미술 놀이로 기쁨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고민했다. 어린 시절에 했던 미술 활동 하나가 생각나 동전을 한 줌 준비했다. 종이 밑에 납작한 사물을 깔고 색칠을 해서 면을 베껴내는 프로타주frottage7 기법의 놀이였다. 방법은 간단하다. 스케치북 뒤에 동전을 깔아놓고 여느 때처럼 아이에게 연필을 쥐여주었다. 나도 아이와 함께 연필을 들고 스케치북을 메워갔다.

연필 선이 움직이는 곳마다 입체감이 살아나고 동전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끼적이다가 멈칫하더니 종이를 뒤로 넘겨 동전을 찾아내기도 했다. 아이는 동전 그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한 듯했다. 연필로 동전의 형태를 드러내려면 얇게 골고루 면을 메워야 하는데, 이맘때의 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기법이다. 따라서 엄마가 함께 면을 메워준다면 아이는 흥미롭게 동전 프로타주 그림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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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이 지나가는 곳마다 동그란 형태의 동전이 나타나는 것이 신기했는지 아이는 평소보다 오랫동안 연필을 끼적였다.

자칫 반복적인 끼적임이 아이를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전 그림이 그런 지루함을 날릴 활력을 주었다. 동전 프로타주는 평소와 다른 즐거움을 주는 간단한 놀이다.

아이와의 미술 놀이는 육아로 지친 엄마를 더욱 힘들게 하기보다는 엄마의 심적 피로를 오히려 덜어주는 활동이다. 짧은 시간이라도 엄마가 나를 위해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 쏟는다고 생각하면 아이 역시 엄마에게 더욱 단단한 애착을 갖게 된다. 미술 활동이 사랑이 담긴 특별한 놀이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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