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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7. 2018

03. 그들이 왜 싸우는지 나는 알 수 없다.

<B급 며느리>



고부갈등은 고구마 줄기 같은 면이 있다. 정확한 하나의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A라는 사건은 B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B는 C 때문이다. C는 D, D는 E, E는 F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날은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엮여 있다. 할아버지 제삿날이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싸움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나는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핵심을 파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제사 전 2~3주 동안 몇 가지 일이 있었다. 당시에 진영이와 나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사를 가는 날에 돌이 갓 지난 해준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우리는 상의 끝에 처갓집에 해준이를 하루만 맡기기로 했다.

며칠 뒤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이사 가는 날에 해준이를 맡아주겠다고.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어머니는 아쉬워했다. 어머니는 처갓집에 양해를 구하고 자신이 서울에 와서 해준이를 보면 어떤지 물었다. 나는 일하는 와중에 계속 전화가 오는 것이 짜증 나서 진영이에게 물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아, 이건 내 잘못이었다.

진영이는 어머니의 전화를 몹시 불쾌해 했다. 처제가 우리 때문에 연차까지 받아놓은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싫어요.”라는 진영이의 까칠한 대답에 어머니는 열이 받았다. 어머니는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이날 어머니와 진영이가 날카로웠던 데는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어머니는 해준이를 무척 사랑해서 매일같이 보고 싶어 했다. 원래 친척들 때문에 종종 서울에 오던 부모님은 해준이가 태어난 후에는 훨씬 자주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조카 결혼식, 친척 장례식, 아버지 동창회, 어머니 친구 모임… 무슨 일이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당연히 서울에 올 때마다 우리 집에 들렀다. 그럴 때마다 진영이는 지쳤다. 어머니는 우리 집을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현관 비밀번호를 물어본 적도 있다.

한번은 어머니가 우리 집 침실의 화장대 위치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진영이는 “저는 여기가 좋아요.”라며 넘어갔다. 그런데 어머니는 대전에 가서도 계속 전화했다. “그 화장대 옮겼니?” 여러 번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다시 한 번 우리 집에 와서 화장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진영이는 대꾸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했다. 그때 나는 진영이에게 화를 냈다.
  
당시에 내가 부모님에게 저자세였던 이유는 내가 우리 집 생활비를 100% 책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했다. 몸이 축나도록 일하는데 공과금을 제때 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럴 때 대전에 전화를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부모자식 간에도 마찬가지다.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부모님은 자식한테 매번 돈을 쓰면서 보고 싶은 손자를 눈치 보면서 만나야 하는 것이 짜증 났을 것이다. 전세금도 자신들이 냈으니 자기 집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며느리의 아니꼬운 표정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 나는 가족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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