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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7. 2018

04. 어머니의 대화법

<B급 며느리>



어머니와의 대화는 어렵다. 내가 어머니와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매번 반복되는 프로세스가 있다.

1단계 : 모르쇠로 일관한다.
“엄마, 해준이 좀 진영이가 부탁하는 대로 해줘. 만날 때 그만 안아주라고. 애가 한번 손 타면 며칠 동안 떼쓰고 얼마나 힘든 줄 알아요?”
“내가? 아니야. 안 그랬어.”
     
2단계 : 다른 핑계를 댄다.
“그 옷은 해준이가 오줌을 싸서 어쩔 수 없이 갈아입힌 거야.”
     
3단계 : 노인을 위한 나라다.
“그래. 내가 했다, 했어. 내가 그거 하나 했다고 60 먹은 엄마한테 이렇게 따지는 거니, 지금?”
     
4단계 : 역습.
“그러는 너희는 뭘 잘했니? 기본도 못하는 애들이!”
     
5단계 : 최종병기 눈물.
어머니가 울면 아버지와 나는 당황해서 그저 달래주려고 애쓴다. 이럴 때 나는 여자의 눈물은 조금 치사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와 나는 항상 이렇게 진실게임을 벌인다. 스무고개를 하듯이 진실을 밝히고 나면 나는 피로감에 쓰러질 것 같았다. 증명해낸 사실 또한 ‘그때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해준이 옷을 갈아입혔는지’, ‘진영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따위의 것들이라 궁상맞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애초에 내가 주장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리고 만다. 기교파 투수의 허를 찌르는 변화구에 헛스윙을 돌리고 넘어지는 타자가 된 것 같다. 반면에 진영이는 냅다 직구만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라고 할 수 있다. 맞으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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