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완벽한 모델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낭비합니다. 우리는 어떤 날을 보내고 나서 완벽한 하루였다고 생각합니까? 우리의 욕심대로 맞아떨어진 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간 날을 완벽한 하루였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흔히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날을 엉망진창이라고 치부합니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로 기억하고,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엄밀히 이야기해서 하루는 그 자체로 완벽합니다. 완벽해야 한다고 까탈을 부리는 쪽은 바로 우리일 뿐, 그것 자체로 이미 완벽하기 때문에 만족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욕망은 더 많은 욕망을 낳습니다. 바라는 게 많다 보면 자신의 고정관념들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새로운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사라집니다. 저는 이런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살 멋진 집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지만, 정작 그런 집을 장만하면 아이들에게 맘껏 지내지 못하게 합니다.
“소파 위에 다리를 올려놓지 마라. 거실에서 뛰면 안 돼. 신발 벗어. 이 집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니까!”
중독이 된 고정관념 때문에 빚어지는 부작용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누구나 대학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안 가는 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상에 내몰린 아이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예전에 어떤 가족과 가깝게 지낸 적이 있는데, 속상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집에 열여섯 살 난 아들이 있었는데 심각한 학습 장애로 글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애는 제가 보기엔 이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소년이었습니다. 매일 운동을 하는 게 습관이었던 그 소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좋아했고, 무엇보다도 자연을 대하며 끊임없이 감탄하는 아이였습니다.
교육자들은 그 아이가 글을 읽을 수 없다고 말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중독성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부모님은 그 아이를 어떻게든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아이에게 정말로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무시한 부모님 탓에 그 소년은 지금 정신병원에 가 있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가 만약 부모의 고정관념을 하루에 스무 개씩 만족시킨다 하더라도 나머지 하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려서 속상해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런 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만약 주위 사람들이 어떤 사람에게 하루 종일 대단하다, 놀랍다, 너는 지금 최고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준다고 칩시다. 그런데 누군가 나타나서 ‘나는 네가 싫어!’라고 말하면 당장 절망에 빠져버립니다. 얼마 전에 ‘깨달음’을 주제로 다룬 어떤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감각에는 한계가 있고, 중추신경계에도 한계가 있고, 개인적인 범주나 사회적인 범주에도 한계가 있고, 언어에도 한계가 있다. 여기에 더 보태자면, 우리는 과학의 법칙 덕분에 진리라고 여겨지는 지식들을 훨씬 많이 수집하게 됐는데 이것 역시 한계가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에는 분명 나름의 한계가 있지만, 이 모든 걸 바꿀 수 있습니다. 당장 내부 프로그램을 바꾸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먼저 결심을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나는 지금부터 체험을 시작하겠다! 음식의 맛을 보기 시작하겠다! 사람들을 느끼기 시작하겠다! 하늘을 보겠다! 공기의 냄새를 맡겠다! 모든 걸 느껴보겠다! 무심코 잠자리에 들기보다는 이불과 내 몸의 감촉을 느껴보고,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필 것이며, 이웃의 손을 잡을 것이며, 나 자신과 내 변화와 내 발전과 내 존재를 인식하겠다!”
세상이 이렇게 많은 것들로 가득한데 사소한 것들로 만족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작은 공간에 갇힌 채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다니,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평생을 동양적 구도(求道) 생활을 수행하며 서구인들에게 선(禪)을 전파하는 데 힘써온 폴 렙스(Paul Reps)는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압축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일에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거울을 들여다보는 걸 잊어버렸다.”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하라는 뜻을 담은 이 말이 저는 참 마음에 듭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야말로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이런 말로 시작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 나는 나쁜 습관도 있고 한계도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해. 그렇다고 내일도 계속 이렇게 살겠다는 말은 아니야. 그냥 지금의 나도 좋다는 것이지.”
이렇게 인정하지 않고서는 새로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저한테 마법의 지팡이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나는 지금의 내가 좋아. 난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말하게 하겠습니다. 아무리 일에 정신이 팔려 있다고 해도 하루에 한두 번씩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는 지금의 나를 사랑해!’라고 말하게 만들겠습니다.
여러분은 저와 만나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자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자기 안에 존재하고 있는 완벽함을 사랑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정신과 육체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걸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저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헛소동’이라고 부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헛소동을 일삼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아까 소개해드린 폴 렙스는 《존재(Be!)》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긴장하며 살아가는 훈련을 받는다. 사방을 둘러봐도 긴장하는 훈련뿐이다.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훈련은 없다. 가엾은 인간들! 모든 숨 쉬는 것들과 친구가 되라고 태어났는데 자기 자신하고도 친구가 되지 못하다니… ….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분석합니다. 한꺼번에 대여섯 가지는 동시에 생각하고 수행해야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지경입니다. 온갖 생각들로 머리가 어지러운 채 잠자리에 들지만, 그 생각들을 비워낼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머릿속을 비워내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하면서 하루 24시간 동안 걱정만 하게 되고, 쓸데없는 생각 때문에 미쳐버릴 것입니다.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텅 빈 공간이 아니라 꽉 찬 공간이 인생 앞에 펼쳐집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순수한 ‘나’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