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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고생 총량 불변의 법칙

<나는 회사를 떠나지 않기로 했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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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백수가 된 후 내 삶은 기대한 것처럼 그렇게 잘 풀리지 않았다. 언젠가 현실이 될지 모를 퇴직에 대비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저서도 몇 권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꿈꾸던 일을 실제로 하면서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기저기 열심히 강의 제안서를 던져 보았다. 그러나 언제나 돌아오는 건 차가운 거절뿐이었다. 개인적으로 컨설팅을 해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가끔 외부 강의를 했다. 그것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힘든 환경에서 준비한 저서들도 꼬일 대로 꼬여 출판이 되지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어 출판된 책들도 반응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모든 것들이 기대처럼 잘 풀려나가지 않았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 재취업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오십이 넘은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굴욕스러운 일들도 많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밤늦게 술집 앞을 지나가다가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는 직장인들을 보게 되었는데 갑작스럽게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나는 회식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어쩌면 내가 바라본 사람들 중에도 회식이 싫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직장생활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내가 부러움을 느끼다니. 직장을 그만둔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마저 떨쳐 버리지는 못했다. 그만큼 내 삶은 힘들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그 깨달음에는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다. 그저 내가 주장하는 개념 중 하나일 뿐이다. 그 개념은 이렇다.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감당해야 할 고생은 그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것.

물론 사람에 따라 그 절대량은 다를 수 있다. 다이아몬드 수저나 금수저처럼 행운을 안고 태어난 사람은 평생 감당해야 할 고생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고, 그러한 행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고생의 양이 많을 것이다. 금전적인 측면 이외에 다른 요소들도 고생의 총량을 결정짓는 데 관여될 수 있다. 어찌 되었거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감당해야 하는 고생의 양은 정해져 있으며 변하지 않는데, 이름하여 고생 총량 불변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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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한평생 감당해야 할 고생의 총량이 정해져 있으니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든 그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하면 나이 들어 감당해야 할 고생의 양이 적으니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지만, 젊어서 고생을 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그 나머지 고생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주위에서 나이 들어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 중에는 젊어서 고생한 사람들이 많다. 젊어서 팽팽 놀다가 노년까지 편하게 지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거의 고생이라는 걸 해보지 않았다. 3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에서 근무했고 담당업무가 골치 아프다고 여겨지는 전략, 기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직장생활은 그리 힘들 게 없었다. 사원 시절부터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았기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일을 했었다. 내가 작성한 보고서는 회장에게까지 보고되는 것이라 해도 거의 수정을 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기에 일을 서두르지 않고 미루어 두었다가 한꺼번에 하는 경우도 많았다.

회사에서는 일에 몰두하기보다는 적당히 시간만 보내는 때도 있었다. D사에 근무했던 몇 년을 제외하고는 야근을 해본 적도 거의 없다. 게다가 내가 다녔던 곳들은 예외 없이 휴일을 꼬박꼬박 챙기는 회사들이었다. 추석이나 설날이 되면 개인휴가를 포함하여 9일씩 연휴가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12월 20일이면 업무를 종료하고 긴 휴식에 들어가기도 했다. 빨간 날에도 근무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하는데 나는 그 고통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심지어는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외환위기 시절에도 나는 일리노이 대학에서 회사의 지원을 받아 가며 공부를 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편한 조직에서만 생활했다.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이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 있을까? 물론 직장을 다닐 때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나자 고생하지 않고 편하게 지내 온 날들이 내게 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내 일의 전문성이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다. 전략이나 기획 업무의 특성은 일의 수준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즉 기업에서 원하는 것, 최종적으로 보고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맞춰 주기만 하면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기초적인 지식과 눈치만 갖춘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 전략이고 기획이다.

그래서인지 전략이나 기획 업무는 전문역량이 특별히 필요 없다. 재무나 회계, HR, 생산, 마케팅 등의 업무는 나름대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만 전략이나 기획은 전체적인 업무 프로세스와 몇 가지 자주 활용하는 분석 툴만 익힌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타고난 감각과 사업에 대한 전문지식은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전략, 기획을 하는 사람들은 전공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제조업이라면 엔지니어 출신이, 비제조업이라면 다른 사무직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세스라는 것도 알고 보면 회사마다 다르지 않다. 거시환경이나 미시환경 등 회사를 둘러싼 경영환경을 분석하고 자사의 전략을 되돌아본 후 새로운 전략 방향을 도출하면 된다. 신사업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방향이라는 것도 크게 달라질 필요가 없다. 조금만 감을 가지고 업무에 몰입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전략이나 기획 업무를 오래 한다고 해서 크게 전문성이 높아질 수는 없다. 일의 요령은 늘어날 수 있고 보고서를 쓰는 실력은 높아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일의 전문성이 될 수는 없다.

업무에 몰입하지 않는 시간에 나는 개인적인 관심을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자기계발서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거나 관심 있는 분야의 글을 썼다. 그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공부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미래를 대비한 나의 자기계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냈으니 비록 직장생활을 25년이나 했고 임원까지 지냈다고 해도 나의 경험은 다양하지 못했고 알고 있는 전문지식도 그리 깊지 못했다.

그렇게 직장생활을 마치자 내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강의 커리큘럼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강의 제안서가 거절당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컨설팅을 하려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맥을 이어 나가기가 어려웠다. 실무를 할 때는 편하게 사용하던 툴들도 개념을 명확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다. 때로는 감각적으로 처리하던 일들을 일일이 개념적으로 설명해야 하니 그런 것들이 장벽이 되었다. 지금도 웬만한 컨설턴트들보다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하지만, 컨설팅이라는 전체 프로세스를 놓고 보면 메울 수 없는 영역들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내 고생의 원인은 나 스스로에게 있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업무에 몰입하지 못했기에, 업무의 전문역량을 키우지 못했기에 당연히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고생은 끝났을까? 천만의 말씀. 아직도 채워야 할 고생의 총량이 많이 남은 모양이다.

지난겨울에는 ‘직업능력개발 훈련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두 달에 걸쳐 토요일과 일요일마다 하루 8시간씩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아야 했다. 두 달 전에도 한 달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전문 자격증을 받기 위해 하루 종일 강의에 시달렸다. 젊어서 하지 않았던 고생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것을 보면서 ‘고생 총량 불변의 법칙’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잘못된 이론이 아님을 깨닫고 있다.

40대 전후의 직장인으로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나의 일에 대해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가? 지금 나를 지켜 주고 있는 우산 밖으로 나섰을 때 버텨 낼 자신이 얼마나 있는가?

‘현재는 과거의 총합적 결과’라는 말이 있듯,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면 자신이 맡은 일에 소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일 자신이 해온 일에 전문성이 있다면 그래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요즈음의 환경은 개인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나이가 차면 회사를 떠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나서도 스스로 설 자신이 없다면, 그건 회사에 있는 동안 나 스스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전문분야가 없기 때문일 수 있다. 나 스스로 경제적인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는 전문성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니 다시 강조하지만, 미래의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지금 자신이 맡고 있는 일과 관련 없는 자기계발일랑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지금의 일에 몰입해야 한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회사라는 우산이 없어도 당당하게 홀로 설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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