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일 교수, 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우리는 흔히 흙냄새를 고향냄새와 연결 지으며, 어머니 가슴과 같이 편안하게 만드는 냄새로 여긴다. 찌든 생활과 오염의 냄새로 가득한 도시를 피해 고향의 흙냄새를 찾는 사람들을 우리는 점점 많이 보고 있다. 흙냄새뿐이 아니다. 고향 시골에는 흙냄새도 있고 풀냄새도 있고 신선한 공기냄새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그곳에는 따뜻한 부모님의 내음이 배어 있고, 아름다운 추억이 함께 묻혀 있다. 이무영의 「제1과 제1장」에서 고향의 아버지 김 영감이 말한다.
‘사람이란 흙내를 맡아야 하느니라. 사람이란 흙내도 맡고 된장맛도 나고 해야 구수한 맛이 나는 게지.’
수택은 자신의 농촌생활 선택을 ‘퇴화’라 자소하기도 하고, ‘패배자’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흙내’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수택이 고통을 견디고 정착에 성공했던 배후에는 ‘흙내’가 있었다. 그렇다면 특이한 흙냄새가 정말 있다는 얘기인가?
아니다. 광물질 흙의 모재는 아무런 냄새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흙 속에는 지렁이, 땅강아지, 때로는 이름 모를 구더기류도 살고 있다. 이런 생물체들은 모두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흙 속에는 맨눈으로 볼 수 없는 토양미생물도 무수히 살고 있다. 이런 생물체들은 흙에 들어 있는 유기물을 분해시켜 우리가 흔히 ‘흙냄새’라고 부르는 유기화합물을 만든다. 지오스민(Geosmin: 디메틸옥타히드로나프탈렌올)과 2-MIB(2-메틸이소보르네올)가 그 대표적인 화합물들이다. 지오스민(Geosmin)이라는 말 자체는 흙과 냄새라는 희랍어에서 유래했다.
사람의 후각은 특히 지오스민 냄새에 지극히 민감해 1조분의 5밖에 안 되는 농도도 검출할 수 있다. MIB에게도 유사한 민감성을 보여준다. 이들이 주는 흙냄새는 잘못 처리된 음용수나 민물고기 등에서도 종종 감지된다.
이들 화합물들이 토양에 살고 있는 방선균(放線菌)의 일종인 스트렙토마이세스(streptomyces)에 의해 생합성되는 경로가 밝혀진 것은 1981년의 일이다. 미국 북일리노이대학교의 벤틀리(R. Bentley)와 메가네이선(R. Meganathan)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후에 브라운대학교의 캐인(David E. Cane) 연구팀이 더 큰 기여를 했다. 우리들이 복용하는 항생제의 대부분은 스트렙토마이세스를 통해 생산된다. 요즈음 어린이들은 흙을 갖고 놀지 않아 피부질환에 면역력마저 약해졌다고 한다. 이는 스트렙토마이세스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이로운 미생물과 접촉하지 않은 결과라고 보고 있다.
흙 1g에 미생물이 무려 3천만 마리가 살아 있다고 한다. 땅 3천 평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전체 무게가 무려 2톤이나 된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흙 속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물론 그중에는 해로운 것들도 많다.
가뭄 끝에 소나기가 오면 밭에서 향긋한 흙내음이 느껴진다. 장시간의 항해로 육지를 그리워하는 항해사들은 육지가 가까워지면 흙냄새를 멀리서도 느낀다. 방선균들이 토양의 유기물들을 분해시켜 만든 화합물들의 냄새다. 흙냄새는 쌍봉낙타들에게는 생명의 은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야생 쌍봉낙타들은 몇십km 바깥에 물이 있는 곳을 알아낸다. 스트렙토마이세스가 배출하는 냄새를 쌍봉낙타들이 민감하게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스트렙토마이세스는 토양이 지나치게 뜨겁거나 건조하면, 그 탈수 조건을 견디지 못해 생존 전략으로 포자를 만든다. 포자는 수년 동안 탈수와 열을 견디다가 비가 오면 흙냄새 화합물을 배출하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동물들 일부가 포자들을 퍼뜨려 자기 종을 확산시키려는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