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일 교수, 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K박사의 연구에 관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소설에서 얘기하는 맬서스는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를 말한다. 맬서스는 1798년에 발표한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구는 기하 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구와 식량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 같은 불균형 때문에 기근, 빈곤, 악덕 등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K박사는 이 맬서스의 예견을 믿고 인분에서 유용한 성분을 분리・정제하여 새로운 식품을 개발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매일 인분을 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오래된 변은 부패하여 K박사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새 인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K박사를 보며 C조수는 안타까워한다.
이러구러 몇 달이 지났네. 무얼 하는지는 모르지만 대변을 분석해가지고 무슨 유효 성분을 얻어 보려는 것은 알겠데. 좌우간 낡은 똥은 쓸 수가 없다 해서 그 뒤부터는 집안 하인의 변까지 죄 그릇에 누어서 박사의 연구실로 들어가게 되었네그려. 그러니깐 변소는 늘 소변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지. 집안사람들이라야 박사와 나와 행랑식구 세 사람과 식모 하나 침모 하나와 사환애 둘이었는데, 때때로는 그 아홉 사람의 것으로 부족될 때가 있어 그런 때는 박사는 가족이 이십 인이며 삼십 인이며 하는 사람들을 슬며시 부러워하는 기색까지 보이는데 연구재료가 부족해서 박사가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구를 때는 너무 미안스러워서 될 수만 있으면 서너 동이씩 만들어 보고 싶데.
어느 날 C조수가 할머님 장례식에 다녀와서 보니 K교수가 점심을 하고 있었다. K교수는 C조수에게도 자기가 먹고 있던 점심을 권했다.
“맛 좋지?”
하고 묻데그려, 그래서 괜찮다고 하니깐,
“똥내도 모르겠지?”
하고 또 웃데그려.
“?”
아닌 게 아니라 냄새가 좀 나기는 하는 것을 이 방 안의 공기 탓이라고 하고 그냥 먹었네그려.
(중략)
“먹은 것? 응 그것 말인가? 그것 때문에 토했나? 난 또 차멀미로 알았군. 그건 순전한 자양분일세. 하하하하하(박사는 웃을 경우에는 웃을 줄을 모르고, 웃지 않을 경우에는 잘 웃는 사람이라네)! 건락(乾酪), 전분, 지방 등 순전한 양소화물(良消化物)로 만들은 최신최량원식품(最新最良原食品).’
“원료는……그……”
“그렇지, 자네도 아다시피 그……”
나는 그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다시 일어서면서 토했지.
K박사는 인분에서 영양분을 분리하고 정제해 치즈(건락), 탄수화물(전분), 지방 등으로 만든 최고급 식품을 만들어냈다. 다시 말해 필수영양소를 다 포함하는 “고깃국물을 조금 넣고 만든 밥”처럼 느껴지는 식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과학의 힘으로써 가장 정밀히 만들은 것이겠으매 웬만한 음식점의 음식들보다 훨씬 깨끗할 것일”텐데 무엇으로부터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C와 다른 동료들은 도무지 먹을 수가 없었다.
박사의 말에 의지하건대 똥에는 음식의 불능 소화물, 즉 섬유며 결체조직이며 각물질(角物質)이며 장관내(腸管內) 분비물의 불요분(不要分), 즉 코라고산(酸), 피스린 ‘담즙 점액소’들 밖에 부패 산물인 스카톨이며 인돌이며 지방산들과 함께 아직 많은 건락과 전분과 지방이 남아있는데, 그것은 사람 사람에 따라서 혹은 시간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그 양소화물이 3할에서 내지 7할까지는 그냥 남아서 항문으로 나온다네그려.
김동인의 소설 「K박사의 연구」에서 놀랄 만한 내용은 앞에서 인용한 K박사가 말하고 있는 대변의 자세한 설명이다. 그 과학적 정확성이 매우 우수하기 때문이다. 대변은 장(腸)으로부터 항문을 통해 배설되는 혼합물을 말한다. 대변은 대체로 물렁물렁한 상태로 배설되지만 변비일 때는 단단하게, 설사를 할 경우에는 묽은 상태로 배설된다. 대변을 몸 밖으로 배설하는 행위를 배변(排便)이라 한다. 대변에는 먹은 음식물 중 소화・흡수되지 않은 잔여물(7~15%), 물(65~85%), 박테리아, 소화액(담즙 및 췌액), 점액, 위장관의 상피가 벗겨져 나온 탈락물 등이 섞여 있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100~200g을 배설한다. 물론 그 양은 섭취한 음식물의 종류와 양, 소화흡수상태, 질병의 유무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
장내의 미생물들은 여러 가지 독성화합물들을 만들며, 변의 특징적 냄새를 준다. 그 예가 인돌, 스카톨(벤조피롤계 화합물), 피롤, 메틸 황화물들, 황화수소 등이다. 「K박사의 연구」에서 “스캇톨이며 인들이며…”이라는 서술이 나오는데 이들은 스카톨과 인돌을 뜻한다. 또 “…고산(酸), 띄스린 ‘담즙점액소(膽汁粘液素)’들밖에…”라는 표현에서 고산은 콜산(cholic acid)을 말하나, 띄스린은 어떤 화합물을 지칭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담즙산의 조성을 볼 때 레시틴(lecitin)이라고 추측해본다. 콜산은 간 내에서 콜레스테롤로부터 합성되어 글리신이나 타우린과 합쳐 담즙으로 배설된다.
일반적으로 식물성 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소화 흡수가 안 되는 섬유질(셀룰로스류)이 많이 배설되므로 변의 양이 많아진다. 육류를 많이 섭취하면 인돌과 스카톨 생성이 늘어 냄새가 지독해진다. 변은 원래 음식물보다는 에너지를 많이 잃은 상태지만 고형분으로만 계산하면 원래 영양분의 약 절반을 지니고 있으므로 ‘K박사’의 지론이 영양학상으로 보면 옳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물을 제거한 변의 조성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소화되지 않은 섬유질과 소화 주스 성분 ~30%
・박테리아(대장균) ~30%
・지방 10~20%
・무기질 10~20%
・단백질 2~3%
박테리아의 대부분은 대장균이 차지한다. 우리가 흔히 대장균이라 부르는 균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 160여 종이나 발견되었다. 사람의 변 1g에는 약 50억 마리의 박테리아가 있다. 육류를 자주 섭취하는 사람들에게 독성이 큰 물질을 만드는 부패균도 20가지 이상이나 있으며, 웰치(Welch)균이 그 대표적 예다. 이 균은 냄새와 활성이 큰 독성분을 만든다. 어쨌든 육식이 채식보다 독성분을 훨씬 더 많이 만든다는 점은 확실하다. 박테리아들은 탄산가스, 수소, 메탄 같은 기체들을 만든다. 놀라운 일은 박테리아들이 비타민 B12, 티아민, 리보플라빈, 비타민K 등의 생성과 흡수를 돕는다는 사실이다.
변의 색깔은 섭취하는 음식 종류에 따라 차이가 나며, 담즙의 빌리루빈이 장내의 박테리아 작용으로 분해되어 스테르코빌린과 유로빌린이라는 화합물로 변해 갈색을 띤다. 사멸한 적혈구 세포도 변에 색깔을 더해준다. 채식자의 변은 중성 내지 약한 산성이지만 육식자의 변은 암모니아, 프토마인 등 단백질 분해 생성물 때문에 강한 알칼리성을 띤다.
변과 관련된 몇 가지 얘기를 소개한다. 새끼 코끼리들은 아직 장내에 필요한 균들을 가지지 못해 어미의 배설물을 먹는다. 코알라와 판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서 자기들이 먹는 식물들의 분해 능력을 늘린다. 원숭이들은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변을 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황조롱이는 자외선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는데, 먹이인 흑쥐의 배설물이 자외선을 내보내기 때문에 먹이가 숨어 있는 장소와 마리수를 알아낼 수 있다. 즉 배설물이 생물 신호 역할을 한다. 소위 배설물을 말려 연료로 사용해 발전하는 예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독일 등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인분을 정제하여 물고기 양식에 사용하는 기술도 있다. 동물들의 사료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K박사’의 연구결과를 사료 개발에 이용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