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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02. 2018

07. 돈은 안 쓰는 것이다?

<가정경제 재구성>




TV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을 보면 연예계 대표 알뜰맨으로 소문이 자자한 김생민 씨가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며 의뢰인의 영수증을 탐색하고 “돈 안 쓰는 당신, 그뤠잇! 돈 마구 쓰는 당신, 스튜핏!”이라고 외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많은 시청자가 공감을 하죠. 그 방송의 인기 덕에 김생민 씨는 20여 개의 광고를 찍었고, 남자 광고 모델 브랜드 평판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돈과 관련한 많은 어록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 커피는 선배가 사줄 때 먹는 것이다.
・ 옷은 기본이 22년이다.
・ 아이가 뭘 사달라고 하면 딴소리로 주의를 분산시켜라.
・ 지금 저축하지 않으면 나중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
・ 앞뒤가 맞지 않는 소비는 잘못된 것이다.
・ 가족과 함께할수록 과소비는 근절된다.
・ 모두가 다 가는 길은 지름길이 아니다.

물론 그의 방송을 보고 “저렇게 짠돌이로 살다가 스트레스 받아 죽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편해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생민 씨의 짠테크가 왜 각광을 받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마음껏 쓰기 위해 돈을 번다는 소비주의 풍조가 만연하다 보니 돈을 쓰지 않으면 불행할 것 같습니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은 나도 가져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런데 돈을 실컷 쓰고 뭐든 다 가져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주도적으로 돈을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원 없이 돈을 펑펑 쓰고 싶지만, 그보다 값진 일을 위해 쓰지 않는다’, ‘남이 가진 것이라고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돈을 분별 있게 사용하는 것이 진짜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돈을 주도적으로 아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필요한 곳, 소중한 일에 제대로 돈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돈을 쓰지 않은 데에서 자기 성취감을 맛보아야 합니다. 김생민 씨가 17년 동안 꾸준히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안 쓰는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쓰지 않는 것이 괴롭기만 했다면, 어느 순간 눌러왔던 불만이 터져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돈을 쓰지 않으면 생기는 뿌듯함이 있기에, 그 감각을 즐기고 지속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희망제작소의 이원재 前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경제생활도 다른 생활과 마찬가지로 가치와 효율성을 균형 있게 생각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바람직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최근 회자되고 있는 ‘착한 소비’는 ‘본연의 소비생활을 회복하자는 운동’으로 ‘사람을 위한 가치가 포함된 소비를 지향하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이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이 필요하다’, ‘자본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생산을 해야 한다’,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마을을 만들자’ 등 우리가 잃었던 사회를 되찾자는 운동과도 연결됩니다. 그런데 ‘유독 경제생활에는 어떤 가치나 윤리가 들어갈 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상하게 경제생활을 할 때 가치 판단이 흐려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죠.

경제자유주의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애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시장의 기본 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빵집 주인과 양조장주인, 푸줏간 주인의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생활은 시장에 들어선 순간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도록 메커니즘이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소비자가 그렇게 활동해야 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이는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는 주류 경제학의 오래된 기준으로 경제생활에서는 가치, 윤리를 빼는 게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토대가 마련된 반면, 우리가 아무리 경제생활을 활발하게 해도 여전히 불만족스럽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하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는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해 치열하고도 명쾌하게 풀어낸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통해 소비주의에 잠식당한 삶의 허상을 다음과 같이 파헤쳤습니다.

소비는 도취의 힘을 갖고 있다. 소비는 매혹적이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상업 영화를 소비할 때 우리는 잠시나마 세상의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맛있는 음식은 미각세포를 즉각적으로 흥분시키고, 마음에 드는 옷 한 벌은 피부의 세포들을 자극해 황홀경으로 이끈다. 하지만 소비는 풍요(豊饒)를 약속하는 듯해도,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과도 같다.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욕망이라 한다. 욕망은 채울 수 있다는 기대로 포장된 유혹이다. 욕망은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욕망에 저당 잡힌 인생의 행로는 끝이 없다. 욕망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소비주의에도 세속적 성공에도 없다.

그러면서 노명우 교수는 소비와 욕망의 악순환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따라서 ‘소비주의에 잠식당한 영혼’은 ‘풍요’라는 단어를 ‘럭셔리나 트렌디함’과 혼동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가치 전도된 풍요라는 본래의 뜻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한 중년 여성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쇼핑을 해요. 혼자 살아서 자녀교육비가 들어갈 일도 없으니 돈을 버는 족족 나를 위해서만 쓰는 거예요. 결혼한 친구들은 부럽다고 해요. 그들은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이기적이고 못나 보여요. 그런데도 인생 뭐 있나 싶고 헛헛한 마음이 들면 두세 시간 정신없이 쇼핑을 해요. 한 보따리 사들고 집에 들어오면 ‘또 졌다’라는 감정 때문에 마음이 어두워져서 나 자신에게 욕을 할 때도 있어요. 이러다 앞으로 큰일 나겠다 싶어 돈을 안 쓰기로 작정하고 집에 들어온 날은 마음이 훨씬 가벼워요. 내가 대견하기도 하고요. 돈을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거 다하며 살면 행복할 것 같은데, 버는 돈은 한정되어 있으니 결국엔 죄책감마저 들더라고요.”

그녀의 죄책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녀가 언급하지 않은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을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소비에 잠식당한 자신을 의식하면서 느끼는 고통은 아닐까요? 대다수의 사람이 이런 고민,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누가 돈을 쓰고, 쓰지 않는 결정을 주도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이제는 무엇에 돈을 쓰고 쓰지 않을지 선택해야 합니다. 욕망의 허상인 소비주의로부터 나 자신과 가정을 구해야 합니다. 평소 자신과 가정의 소비 습관을 면밀히 살펴보고, 돈을 써야 할 항목과 쓰지 않을 항목을 구분해보세요.

우선 단순하게 ‘어떤 일에 돈을 썼을 때 만족감을 얻는지’, ‘어떤 일에 돈을 쓰면 마음이 불안한지’를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그 만족감이나 불안감이 드는 이유를 정직하게 따져보세요. 다른 누군가의 평가나 기준이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떻게 생활을 감각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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