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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04. 2018

04. 자기 일의 지평을 넓혀가라.

<다시, 장인이다>



장인의 일에 있어서 창조력은 자기 일의 중심을 잡고, 그 일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 데서도 나온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은 자기 일의 중심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다음 절에서 살펴보겠지만, 자기중심을 잃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한눈파는 것은 결코 창조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일의 확장은 새로운 분야로의 이동과는 다르다. 일의 분산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분야 내에 머물면서 그 일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자신의 일과 인접하거나 맞닿아 있는 분야들에 대해서 학습하며 일의 범위를 확장한다. 그럼으로써 오히려 일의 깊이를 더해 갈 수 있다. 한마디로, 장인은 새로운 일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이다. 내가 연구한 장인들에게서도 이런 모습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장원섭, 2015).


이용 명장 최원희는 ‘진정한 이용사’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확고하게 가지고 업종을 이용에서 가발로 넓혔다. 조각가 오광섭은 새로운 재료와 기술을 접목하기도 했고, 근래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입체 조각이라는 관점에서 건축 분야로까지 일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는 주조 명장 임용환은 요즘 자동차에 더 많이 쓰이는 플라스틱까지 관심을 갖고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원희
: 탈모 고객을 만나게 되고 또 이제 나도 탈모가 일어나고. 그래서 나도 생각에 ‘이발하는 사람이, 이발사가 자기 머리 관리도 안 되면 되겠나’ 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중략) ‘아, 이게 참 탈모 된 사람들, 머리카락이 참 부족한 사람들은 절실하게 가발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 
진정한 이용사라면 머리카락 있는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은 물론이고, 없는 사람도 좀 나름대로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주는 게 진정한 이용사가 아니겠는가. 이제 이런 생각도 좀 했고. 그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지, 그때. 그때부터 이제 가발에 대한 관심도 약간 가지게 되었고. (267쪽)
  
오광섭
: 이태리에 가서 처음 밀랍 주조 방식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도 끊임없이 배우고 작품 영역이 넓어져 가고 있어요. 성당에 묵주 전등이라든지, 오병이어 전등이라든지, 저번에 봤죠? 표현하고자 하는 재료에 관심이 많아서 계속 관심을 갖고 배워 가고 있어요. 엊그제 일산 쪽에 광섬유 업체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그게 환상이더라고. 그런 재료들 있잖아요? 자꾸 개발하고 싶은 거? 표현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이런 재료들? 그런 거 관심 많죠. 
예술가라고 자기 세상에만 빠져 있고 신기술에 관심 없다는 편견을 갖기 쉬운데 신기술을 잘 이용하죠.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을 풍부하게 해 주는데 스스로 벽을 쌓을 필요는 없어요. 이런 맥락에서 건축도 하나의 입체 조각이고, 단지 사람이 거주하는 것일 뿐, 조각 분야에서 먼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성당 하나는 꼭 짓고 싶다. 남기고 싶다. 그것이 어떤, 성당의 랜드마크가 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어요. (268쪽)
  
임용환
: 실제로는 저는 금속 쪽 일만 하고 왔는데 최근부터 업종이 새로 늘어났어요. 플라스틱 사출. 우리가 하는 자동차에 보면 플라스틱이 상당히 많아요. 차를 타면은 눈에 딱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플라스틱입니다. (266쪽) 장원섭, 《장인의 탄생》, (서울: 학지사, 2015) 중에서
  
이렇게 자기 일에서 연관된 다른 분야의 일로 확장하는 것은 자기 일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무조건 자기 것만 고집스레 집착하면 고립되어 뒤쳐지고, 줏대 없이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따라다니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자기 일과 관련된 영역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면서 일의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
  
어떤 일이든 일은 항상 종합적이다. 비록 초기 숙련 단계에서는 잘게 나뉜 단순 기능, 예컨대 망치질이나 뜨개질 같은 단순한 일만 수행해야 할 수도 있다. 그 기능을 효율적으로 잘 해내면 훌륭한 기능인으로 간주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다양한 기능이 필요하다. 감당해야 할 이런저런 일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려면 마케팅이나 사업 경영까지 직접 해야 한다. 어느 한 부문에서 타고난 능력을 가진 것으로는 역부족이다. 결국은 아무리 타고난 천재라 할지라도 그 일뿐만 아니라 그 일의 넓은 범위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를 만들어 내려면 지독한 훈련 또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모든 부문에서의 천재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기 것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더 잘해내기 위해서 다른 영역의 새로운 것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장인의 일을 더욱 창조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아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은 그런 맥락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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