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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7. 2018

01. 생리를 안 한다고?

<생리 공감>



샬롯의 질문

2015년 가을이었다. 그해 나는 별다른 목적 없이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에 갔다. 짧은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을 맞이하기 직전 낮은 여전히 뜨겁고 밤은 차가웠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네덜란드의 아시아 영화제 팀에서 온 샬롯 일행을 만났다. 우리는 샬롯의 아이디 카드를 이용해 매일 저녁 열리는 리셉션에 가서 공짜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해결한 뒤엔 몰려다니며 산낙지, 오뎅, 회를 곁들여 술을 마셨다. 축제는 짧았다.

서울로 돌아온 뒤 한국을 떠나는 샬롯을 위해 송별회를 하기로 했다. 샬롯에게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마침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생리대 주머니가 떠올랐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는 자투리 천을 모아 작은 주머니나 식탁보 등을 만들었다. 그걸 보고 사촌동생이 생리대를 담아 다닐 주머니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는 손녀들이 쓰고 남을 만큼 많은 주머니를 만들어 주셨다. 노란 바탕에 하얀색 꽃무늬가 은은하게 퍼져 있는 보기만 해도 예쁜 주머니였다.

환송회 날 저녁을 먹은 뒤 조심스레 선물을 꺼냈다. 선물을 받아든 샬롯은 마냥 기쁘고 놀란 얼굴이었지만 얼굴 한편으로 당혹감도 스쳤다. 작은 직사각형에 달랑 단추 하나만 달린 주머니를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생리대 주머니야. 생리대 가지고 다니는 거.”
“생리대?”

샬롯의 의아한 표정에 나도 어리둥절해졌다. 생리대 몰라? 샬롯은 초경 이후 한번도 생리대를 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샬롯과 나는 1987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둘 다 열한 살에 초경을 맞았다. 초경 기간에 일회용 생리대를 쓴 샬롯은 바로 뭔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생리대를 차면 더럽고 답답하고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방법밖에 없을까? 샬롯은 어머니에게 물었고, 어머니는 자신의 탐폰을 꺼내 주며 사용법을 일러 주었다.

“그 뒤로 생리대는 한번도 안 쓴 거야?”
“응, 단 한번도.”


날카로운 첫 탐폰의 기억

대학 1학년 때 친구들과 동해로 여행을 갔다. 때마침 생리가 터졌다. 물놀이를 포기하긴 싫었다. 친구들이 탐폰을 써 보자고 했다. 바닷가 근처 편의점엔 서울 집 근처 편의점과 달리 탐폰이 많았다. 검은 봉지에 담긴 탐폰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까슬까슬한 모래가 바닥에 가득한 가벽으로 세워진 공중화장실이었다. 사용법을 여러 번 읽고 포장을 뜯었다. 처음 탐폰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생각보다 길고 크다. (이후에 어플리케이터 없이 탐폰만 있는 제품을 봤는데 실제 탐폰의 크기는 정말 작았다. 이런 크기였으면 겁먹지 않고 써 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플리케이터 끝부분 형태는 둥글지만 탐폰이 밀려 나오게 하려고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보기만 해도 날카롭고 아픈 기분이 든다. 당시 나는 성경험이 없었고 탐폰을 넣을 구멍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어플리케이터 끝으로 여러 군데를 찔러 보고 조금 더 깊이 들어가는 곳이 있어 탐폰을 밀어 넣었다. 눈으로 보기에도 까슬까슬해 보이던 윗부분이 그대로 질을 쓸어 가며 따가운 통증을 남겼다. 이미 내재되어 있는 공포가 모든 통증을 세심하게 극대화했다.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당장 친구들이 놀고 있는 바닷가로 가고 싶다는 급한 마음에 대충 정리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모래사장을 걸어가는데 자리를 잡지 못한 탐폰이 계속 질 벽을 찔렀다. 물놀이를 위해 고통을 감수했지만 너무 아파 결국 30분도 되지 않아 빼야 했다. 그 뒤 이틀은 그냥 생리대가 물에 푹 젖어 퉁퉁 붇도록 내버려 둔 채 생리대를 차고 물놀이를 했다.

통증의 기억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대로 탐폰은 좋지 않은 거라고 믿게 됐다. 탐폰을 쓰는 여자들은 이렇게 아픈 걸 감수하고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혹은 사람에 따라 전혀 아프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리라 여겼다. 나는 탐폰이랑 안 맞나 보다. 정말 그런 거냐고 마땅히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주변에 탐폰을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생리를 안 한다고?

그때부터 논쟁이 시작됐다. 샬롯의 송별회에는 네덜란드 여성 두 명, 한국 여성 두 명, 한국 남성 두 명 그리고 한국계 미국인 게이 남성이 있었다. 네덜란드와 한국. 두 국가의 여성들 간의 논쟁이 가장 치열했다. 남성들은 게임을 관전하듯 오고 가는 말들을 듣다 놀라기도 하고 질문을 쏟아 내기도 했다.

“몸에 좋지 않을걸.”

탐폰을 착용하고 있는 내내 이물감이 있으리라 생각한 나는 그걸 어떻게 생리하는 내내 끼우고 있냐, 몸에 좋지 않을 거라 주장했다. 무엇보다 생리대와 탐폰은 피를 빠르게 흡수하는 화학물질을 품고있어 그걸 몸 안에 넣는 건 분명 좋지 않으리라는 게 내 나름의 가설이었다. 미국에서는 탐폰 쇼크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피가 묻은 생리대를 계속 차고 있는 것도 위생적이진 않잖아? 피랑 분비물이 묻은 생리대를 몇 시간씩 차고 있어야 하잖아.”

탐폰은 새지 않는다. 한꺼번에 피가 물컹, 하고 나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물컹, 피가 나오는 느낌에 대해 여성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굴을 낳는다’는 표현을 쓰는 여성이 많았다. 질에서 굴만 한 크기의 덩어리진 생리혈이 불쑥 나오기 때문이다.) 탐폰을 끼우고 있으면 생리를 한다는 사실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생리대에 피가 묻어서 나는 냄새도 나지 않는다. 휴대가 간단하다. 쓰레기도 생리대에 비해 적게 생긴다. 생리대를 붙였다 떼어내면 속옷이 손상된다. 이후로도 샬롯은 탐폰의 장점을 줄줄이 늘어 놓았다. 나는 예의상 샬롯의 이야기를 경청했지만 사실 그중 절반도 믿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탐폰은 악몽이었기 때문이다. 《월경의 정치학》을 낸 박이은실 선생님에 따르면 대부분 여성은 어릴 때부터 생리대를 사용하기 때문에 처음 선택한 생리대를 신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뒤로 충격을 가할 만한 정보를 얻거나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생리대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근데 난 이제 생리 안 해.”

샬롯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뭐?”
“내 동생도 안 해.”

샬롯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자궁 내 피임 장치를 삽입했다. 성인이 되자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산부인과 주치의와 상담한 후 자궁 내 장치를 삽입하는 시술IUD(intrauterine device)이 가장 잘 맞으리라는 판단을 내렸다.

동생은 임플라논(Implanon) 시술을 받았다. 팔뚝에 아주 얇은 칩을 박아서 호르몬을 조절하는 피임법이란다. 나중에 그게 뭔지 산부인과에서 상담을 받아 보았는데, 팔뚝 피부 밑에 매우 얇은 막대형 피임봉(rob)을 한 개 삽입하는 시술이었다. 두 시술 모두 반영구적이었다. 시술을 받으면 배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생리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극도로 적은 양만 하게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IUD 시술을 받은 여성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다. 다큐멘터리에 담지는 못했지만 시술을 받은 유진 씨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이서영 작가도 시술받은 사실을 칼럼에서 다루었다. 나 역시 샬롯과 대화를 나눈 지 정확히 1년 뒤에 상담을 받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았다. 

IUD에 대해 들었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뭐? 자궁 안에 무슨 장치를 넣는다고? 도저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까 다시 한번 말해 줄래? 샬롯은 탁자에 와인잔을 내려놓고는 손으로 대략의 크기를 만들어 보여 줬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으로 티(T) 자 모양을 만들며 말했다.

“이렇게 생긴 티 자 기구를 삽입하는 거야, 자궁에.”

듣기만 해도 내 자궁 안에 티 자형 이물질이 낀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몸서리가 쳐졌다. 샬롯은 덧붙였다.

“피임약을 먹거나 콘돔을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안전해. 생리를 안 하기 때문에 생리용품을 살 필요도 없고 한 달에 한 번씩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사실 피임에 편한 것보다 생리를 안 하는 게 더 좋아.”

하지만 시술 때는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단다. 지금도 3년에 한 번씩 장치를 새로 삽입하는데 그때마다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 그래도 피임과 생리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 고통은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게 샬롯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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