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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7. 2018

02. 생리를 하는 이유

<생리 공감>


여성의 몸과 생애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다룬 웬다 트레바탄의 《여성의 진화》에 따르면, 체내에 있는 세포를 죽이거나 죽여서 배출하는 일은 상당히 소모적인 일이다. 몸이 선호하지 않는 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몸은 평균 35년에 걸쳐 매달 상당한 양의 피와 함께 세포들을 배출한다. 《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를 쓴 나탈리 앤지어는 <흡반과 뿔> 챕터에서 여성의 생리에 관해 다룬다. 20년 넘게 생물학 관련 기사를 쓰고 있는 과학 전문 기자인 앤지어는 여성이 주기마다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던진다. 임신을 위해 부풀어 올랐던 자궁벽을 이루는 세포들이 임신에 실패해 배출되는 것이 생리라면 굳이 그렇게 ‘많은 양’의 피를 흘려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궁은 혈관을 가졌기에 피를 흘릴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한 번이라도 자연스럽게 ‘자궁에서 피가 나오니까 당연히 거기에 무수히 많은 혈관이 존재하겠지!’라고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경의를 표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당연하고 단순한 생각인데, 앤지어의 글을 읽기 전에는 감히 그렇게 생각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자궁에 왜 그렇게 많은 혈관이 필요할까?

왜 그 많은 혈관들, 그 동맥 슬링키들을 지닌 것일까? 나선 동맥들은 커다란 드라큘라 같은 태반을 지탱한다. 태반은 태아 뇌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아야 한다. 뇌 조직은 만족할 줄 모른다. 무게 대 무게로 비교할 때, 뇌는 몸의 다른 조직보다 유지하는 데 열 배나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임신 말기 석 달 동안에 태아의 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탯줄을 통해 아기에게 들어가는 총 에너지 중 거의 4분의 3을 사용한다. 탯줄이 긴 소시지처럼 그렇게 굵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며, 출산 뒤에 살집 좋은 태반을 배출하는 것이 출산의 세 번째 단계(첫 단계는 자궁경부의 확장, 두 번째 단계는 태아의 분만)로 분류될 만큼 하나의 일로 여겨지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아기의 뇌는 먹어야 하며, 그것은 피를 먹는다.
-나탈리 앤지어, 《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 문예출판사, 179쪽.


여성의 몸은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 생리를 시작한다. 인간의 뇌가 그 피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앤지어의 글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처럼 다시 한 번 목을 타고 허리까지 전율이 느껴진다. 아기의 뇌는 피를 필요로 한다. 그 피를 준비해 두었다가 배출하는 것이다. 정교하고 섬세한 뇌가 없다면, 그 뇌로 뻗어 나가는 수만 갈래의 핏줄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앤지어의 주장은 가설 단계에 있다. 《여성의 진화》에 따르면 가임기 동안의 모든 영장류 암컷은 난소 주기를 보이지만 모든 영장류가 수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생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웬다는 ‘왜 인간은 생리를 진화시킨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생리를 하는 이유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다. 생물학자 마지 프로펫(Margie Profet)은 생리혈이 자궁 내의 병원체를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진화했다고 했다. 성관계 중에 정액과 함께 들어온 병균을 없애기 위해 생리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주장은 다양한 반증에 의해서 힘을 잃었다. 오히려 생리할 때는 혈액으로 인해 병균이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인간의 성관계 횟수가 늘어나면서 이전보다 생리를 하는 횟수도 늘어났다는 프로펫의 가설에 따르면 과거에는 성관계 빈도가 현재에 비해 적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입증할 근거가 없다.
  
웬다 트레바탄은 인간의 생리는 단지 복잡한 생식 시스템이 진화하면서 생긴 부산물(byproducts)이라고 보는 대안적 가설을 제시한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태반은 자궁벽을 깊이 침범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리혈이 생겼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 밖에도 왜 여성이 생리 주기에 많은 양의 피를 흘리는지에 관한 의견은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는 학교에서 이런 가설들에 대해 따져볼 시간을 갖지 않는다. 의무교육이라 불리는 공교육 안에서 반드시 몸교육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백번은 강조하고 싶은데, 생리를 ‘성적인 의미’와 분리시키기 위해서다. 여성이 왜 생리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실행되고 이 연구로 도출된 내용들이(꼭 방점을 찍은 확실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하더라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학 시간 커리큘럼에 들어간다면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충분히 이 피가 왜 흐르는지, 무엇을 위한 피인지 학문적이며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별을 섞어 팀을 짜고 그 안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피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고, 피를 흘리는 노동에 대해서도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다. 수업에 자극을 받은 어떤 학생은 생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나 의학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좀 더 이 피의 목적에 대해 그리고 이 피를 흘리는 여성에 대해 궁극적으로 알게 되리라.
  
2003년 모 신학대에서 한 원로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 돼. 분명히 아세요. 그게 보수고 성경적이고 신학에 맞는 거야.”
  
“성경적이고 신학에 맞는” 멍청한 소리를 쏟아 냈던 그의 뇌도 결국 이 피를 먹고 자랐을지 모를 일이다. 얼마 전 미국 태평양북서부국립연구소(PNRI)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수정 과정에서 주도권을 쥔 것이 난자라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정자 수억 개가 난자를 향해 돌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강한 정자가 살아남아 난자와 만난다는, 정자는 아주 빠른 수영선수처럼 멋있어 보이는 반면 난자는 수동적인 객체로 보이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연구였다.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영역은 무궁무진하고 아직은 무엇이 맞다, 아니다, 섣불리 규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남성의 시각과 태도, 언어로 연구·기록되는 학문 관행이 이제 변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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