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한 인문학 교육법>
우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교육’이라는 두 글자와는 점점 멀어진다. 학창시절 질리게 공부했다는 이유로 ‘공부’와 인연을 끊은 사람도 많다. 10여 년간 학교 교육을 받으며 자존감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채로 사회에 나오는데 교육이나 공부와 인연을 끊고 사니 자존감을 회복시킬 기회가 없다. 게다가 틈이 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TV를 틀기 때문에 자존감 회복의 길은 점점 멀어진다.
해마다 발표되는 통계청 생활시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루 평균 2~3시간씩 TV를 본다고 한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시간이 더 늘어나 4~5시간을 TV 앞에서 생활하고 있다. TV가 사회의 학교, 성인들의 재교육장이 되는 셈이다. TV의 핵심은 진실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실제’를 표방하는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것 역시 진실을 가장한 허구에 불과하다. 시청자들의 말초적인 재미를 만족하게 하려고 짜놓은 것이지, 진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을 계속 접하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다. TV를 볼수록 ‘나는 너무 초라하다’는 감정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TV의 본질을 인문학적으로 생각해보자. TV는 누군가에게는 생계 수단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수단이다. TV는 반드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만 한다. 한마디로 말초적인 감각을 얼마나 잘 자극하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성패가 갈리고 먹고사는 문제와 부와 명예가 결정되는 것이다. TV를 켜는 순간 우리는 말초적인 감각의 세계로 빠져든다. 거짓된 세계와 접속하면서 우리는 끝없는 비교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생활을 수십 년 이상 해 온 사람이 누군가를 제대로 교육하기란 불가능하다. 그 사람의 두뇌는 이미 감각적인 자극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TV를 많이 보는 아이들의 정서 상태가 이를 증명한다. TV를 많이 보는 아이들은 대체로 공격적이고 충동적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TV를 많이 보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정상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TV에 나오는 연예인의 삶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낀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의 경우 이 부러움은 내 삶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진다. ‘저 사람은 멋지게 살고 있는데 나는 뭔가’ ‘쟤는 저렇게 예쁘고 날씬한데 나는 왜 이런가?’ 등 TV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것과 동시에 쓸데없는 열등감을 키우고 있다. 아내에게 이벤트를 해주는 남편, 영재 아이들, 성공한 아이돌 스타를 마냥 부러워하다 내 삶을 보면 갑갑할 수밖에 없다. TV의 조종에 따라 울고 웃으며 내 현실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아내가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함께 볼 때가 있다. 예능 프로그램은 정말 재미있다. TV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나도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들면 생각 없이 웃고 즐기게 된다. 남자 연예인이 출연해 “아내에게 이렇게 잘해주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미안한 마음에 아내를 한번 쳐다보게 되고,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속상하다”는 여자 연예인 이야기에는 괜히 우쭐하게 된다. 내 아내를 있는 그대로 자존감을 가지고 사랑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TV 출연자들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연예인 집을 보면 초라한 내 집이 부끄러워지고, 요리하는 사람을 보면 저렇게 해야 할 것 같고, 맛집 소개를 보면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TV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TV가 인간의 본성을 굉장히 격하게 만들고 있음을 느낀다. TV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가끔 봐도 불안함을 느끼는 데 TV를 좋아하고 많이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심할 것인가.
TV 광고는 또 어떤가. 광고 역시 허구의 삶을 보여 준다. 광고를 보면서 ‘인생을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광고는 없다. 끊임없이 인간의 허영심을 부추기면서 인간을 인간답지 않게 만든다. 광고에서 멋진 차가 나오면 갖고 싶고, 잘생긴 배우가 핸드폰 광고를 하면 내 핸드폰이 멀쩡한데도 바꾸고 싶어진다. 내가 가진 물건, 내가 사는 집을 바꾸면 나의 삶도 행복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입받고 있다.
TV가 말초적 재미만을 추구하다 보니 작가가 방송에 나가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에 나가도 작가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순간 사회자도, 카메라맨도, 방청객도 조용해진다. 심지어 조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자극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철학은 감각의 세계에서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학문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본질에 깨어있고 말초적인 세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인데 우리는 감각에만 깨어있어 본질을 놓칠 때가 많다.
물론 TV 프로그램 중에는 좋은 프로그램도 있다. 특히 교육방송에는 좋은 프로그램이 정말 많다. 하지만 과연 이 좋은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얼마일까? 지난 수십 년 동안 당신이 본 좋은 프로그램의 시청 시간을 계산해 보라. 아마 100시간도 넘지 못할 것이다. TV는 우리에게 ‘가짜’ 삶을 사는 방법을 배우게 한다. 인간적인 삶에서 크게 멀어지게 한다. 이 때문에 부모에게는 TV를 버리거나 멀리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이 “TV를 그냥 보면 되지 뭘 그렇게 피곤하게 생각하냐”며 불평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TV의 해악을 알리고 싶다. TV를 끄면 책을 읽게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야만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해야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가정에서 인문학 교육을 하려면 먼저 TV를 없애버리거나 시청을 제한하는 강력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때때로 공허감을 느끼는데 이 공허감을 채우려는 본성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TV이다. 그러나 TV가 사라지면 다른 것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강연장・박물관・미술관을 찾아다니고 자연스럽게 책을 손에 들게 된다.
혹자는 “TV를 꺼도 스마트 폰이 있지 않으냐”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스마트 폰 역시 TV와 같은 부작용을 갖고 있다. 그나마 스마트 폰의 긍정적인 면은 기득권이 보여 주지 않는 뉴스, 소수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시각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무익하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고, 진리의 세계로 가기 위해 감각적인 것들을 멀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