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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21. 2018

09. 세상이 온통 네모 투성이인 까닭

<창의력에 미쳐라>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단단한 장미의 외곽을 두드려 깨는 은은한 포성의 향기와
냉장고 속 냉동된 각진 고깃덩어리의 식은 욕망과
망각을 빨아들이는 사각의 검은 잉크병과
책을 지우는 사각의 고무지우개들
- 시인 송찬호의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중에서


사각은 한국인을 기억한다!

“한국은 모두 똑같아요.”

필자의 지인인 아일랜드 영어 강사는 우리나라 아파트가 모조리 성냥갑처럼 생겼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했다. 순간,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성냥갑 아파트! 폭발이라도 할까 두렵다. 두렵다고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더 고민스럽다. 하도 빼곡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콩나물시루 같기도 하다.

우리의 위대한 산물이지만 도가 지나치면 해악으로 변하는 법! 사방이 각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또 동서남북이 일직선으로 완전 포위되면서 아파트는 삭막하고 여유가 없어 짜증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59.9%였다. 대한민국 사람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분쟁과 비리의 주 무대도 아파트다. 어마어마한 관리비에 알뜰 장터, 게시판 광고료, 각종 공사비, 재활용품 판매비 등을 둘러싸고 주민들과 대표(부녀회) 간의 대립이 발생하기도 한다. 아예 직업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사람도 있다.

돌연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국인의 창의력과 상상력 결핍은 어쩌면 우리의 성냥갑 아파트 문화에서 오는 게 아닐까?’

전혀 근거 없는 상상이었으면 좋겠다. 아무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우리 국민들의 심성이 모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 최고의 마천루인 ‘부르즈 칼리프’를 쌓아 올릴 만큼 우리는 훌륭한 기술과 건설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아파트가 네모인 것은 더 이상 기술적인 문제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것일까?

위트 넘치는 가사와 반복되는 운율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노래가 하나 있다. 이 노래를 접한 아이들이 ‘세상은 왜 이렇지?’ 하고 새로운 호기심을 가질 만한 노래다.

제목은 <네모의 꿈>이다. 가수 화이트(White)가 불렀던 이 노래에는 “네모난”이란 단어가 1절과 2절에 걸쳐 무려 30회 이상 등장한다. 1절 노랫말을 살펴보자.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 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걸.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들을 때마다 가사가 참 재미있다. 꽤나 철학적이기도 하다. 세상에 네모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세상은 온통 네모인데, 정작 우리 신체(뇌, 장기, 뼈 등) 중 어느 것 하나 네모난 건 없다. 각진 생각을 못 떠올리는 까닭을 이제야 알겠다.

앞의 노래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획일화되고 단순화돼가면서 차츰 그 구성원들이 가진 창의력과 독창성을 잃어 가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그래 아프다.


둥글둥글한 둥근 꿈

네모는 매너리즘(mannerism)이다. 틀에 박힌 일정한 사고방식이나 행동을 습관적으로 취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성이 상실되었음을 가리킨다. 당신이 어떤 사고를 하느냐, 어떤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다른 이들과 충격적일 만큼 달라질 수 있다.

‘네모의 꿈’ 노랫말 끝머리처럼 지구본을 보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둥근데 그 안의 부속품들은 어째서 모두 네모난 건지 모르겠다. 아파트라는 각진 부속품 속에 살지만 우리네 사고와 행동은 둥글둥글 둥근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국의 출판인 앨버트 허버드(Elbert Hubbard)는 이렇게 말했다.
“네모난 구멍의 네모난 못이 되기보다는 네모난 구멍의 동그란 못이 돼라. 세상은 이미 결정된 것이지만 삶은 아직 변화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이 말은 만들어진 세상의 틀에 동조하거나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기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삶에 접근하면 훨씬 더 유익하고 가치 있음을 뜻한다.

빛과 어둠의 양면을 모두 접해야 삶이 아름답고 소중한지를 깨닫듯 네모만이 아니라 삼각도, 타원도 골고루 접해야 우리의 사고도 유연해질 수 있다. 각진 네모투성이 생각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둥근 타원형도, 안정감의 삼각형도, 사랑의 징표 하트형도, 고집스러운 개성형도 모두 필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다양성이 결여된 사회에서는 창의력도, 상상력도, 미래도 기대하기 힘들다. 자신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절대 타박하거나 비웃지 말라. 상대를 따라하거나 애써 맞출 필요도 없다.


Think
Critically

1. 성숙한 사회의 소중한 가치 중 하나는 획일화와 단순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2. 빛과 어둠의 양면을 접해야 사물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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