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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25. 2018

02. 가능한 모든 일은 언젠가 일어난다.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진자운동을 하는 추는 되풀이되는 일련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추는 아래쪽으로 움직이면서 빨라지다가 힘이 약해지며 멈춰 서고 방향을 바꿔 이를 반복한다. 완전한 진동이 이루어지고 나면 진자의 가능한 모든 상태를 볼 수 있다(공기저항이나 어떤 종류의 마찰도 없다는 전제하에). 진자는 이론상 역시 물리학적으로 허용되는 다른 상태에는 놓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푸앵카레는 특정한 시스템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에서 가능한 모든 상태를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태양계 또한 이런 시스템에 속한다. 우리는 임의로 태양계의 어떤 상태를 머릿속에 떠올려보고 충분히 오래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그 상태를 실제로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 상태가 물리적으로 가능하기만 하다면 말이다. 언젠가는 토성, 목성 그리고 해왕성이 상당히 정확히 일직선상에 있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소행성대에 있는 돌멩이들이 ‘목성은 바보’라는 글씨를 만들어낼 것이다. 진자와 같은 정규적 시스템은 항상 똑같은 모습만 보인다. 반면에 카오스 시스템은 모든 가능한 현상을 언젠가는 실제로 드러낸다.

이는 지금까지의 모든 상태들이 언젠가는 다시 되돌아오지만 진자운동과 같이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근접한 모습으로 나타나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태양계에 충분한 시간만 허용해준다면 언젠가는 모든 천체들이 지난 금요일 8시 반에 놓여 있던 위치와 거의 정확히 일치하는 위치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복잡한 시스템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발견은 근대 카오스 이론에서 중요한 기본 개념이었다. 그리고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은 앙리 푸앵카레 덕분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태양계의 역학이 실제로 카오스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행성들이 아주 얌전하게 규칙적으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이 말이 조금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다. 행성들은 서로를 아주 미세하게만 방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각 행성의 움직임은 주로 태양이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정해지므로 다른 모든 행성들을 배제하고 그냥 이체문체로 계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여덟 개의 행성과 다른 수많은 천체를 거느리고 있는 태양계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정한 시간 동안에는 이런 근삿값이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는 카오스가 나타난다. 또 다른 행성들의 방해로 전체 시스템의 움직임이 예측 불가능해진다. 특히 두 개의 천체의 공전 주기가 단순하게 반복되는 리듬에 따르게 되면 문제가 되는데, 이를 공명이라 부른다. 해왕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65년이다. 이것은 명왕성이 태양을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정확히 3분의 2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명왕성과 해왕성이 서로 접근하면 육중한 해왕성이 작은 명왕성의 궤도를 조금 변화시킨다. 그리고 불쌍한 명왕성은 태양을 두 바퀴 돌고 나면 또다시 상당히 가까이 다가오는 해왕성과 만나게 된다. 해왕성은 같은 시간에 태양 주위를 정확히 세 번 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해가 더해져서 초기의 작은 차이가 빠른 속도로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내행성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행성인 지구도 여기에 속한다. 특히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이 문제를 일으킨다. 수성은 목성과 궤도 공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성이 주기적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수성의 궤도를 점점 더 길쭉한 타원형으로 변형하면, 수성은 먼저 금성을, 그다음에는 지구의 궤도를 방해할 것이다.

프랑스 과학자인 자크 라스카르(Jacques Laskar)와 미카엘 가스티노(Mickaël Gastineau)는 태양계의 움직임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슈퍼컴퓨터를 사용했다. 오늘날의 측정 정확도로는 행성의 위치를 단지 몇 미터 단위로만 기술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아주 미세하게 다른 초기조건을 가진 수천 개의 시나리오를 계산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여 앞으로 수십억 년 동안의 행성의 궤도를 예측했지만 대부분 별다른 점은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는 상당히 이목을 끄는 예측들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금성이 태양계 밖으로 내던져지고 수성이 태양과 충돌하기도 하는데, 화성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 수성, 금성, 지구 그리고 화성은 서로 충돌할 수 있으며, 수성과 금성의 충돌이 가장 자주 등장했던 시나리오였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수백 년 동안은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행성 중 하나가 다음 주에 갑자기 왼쪽으로 급커브를 틀어서 행성이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수십억 년 뒤 태양계에 얼마나 많은 행성이 남아 있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어떤 행성이 현재 몇 미터 더 왼쪽 혹은 더 오른쪽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평화로운 궤도 또는 종말론적 충돌이 결정될 수 있다. 행성들의 장기적인 운명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순전히 우연이다.

앞으로의 움직임을 더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초기조건을 조금 더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카오스적 역학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측정 정확도가 10미터 정도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어떤 행성의 위치를 10만 킬로미터 정도밖에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조건의 정확도를 얼마나 개선해야 동일한 정확도로 두 배 멀리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 두 배의 정확도로는 충분치 않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 초기 위치를 마이크로미터(밀리미터의 1,000분의 1) 단위까지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이것은 완전히 가망이 없는 일이다. 더 정확한 측정 기술이 있다고 해도 카오스를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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