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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03. 2018

08. 미래 예측 자체가 미래를 변화시키는 경우

<예측, 일단 의심하라>



때로는 미래가 과거와 달라진 이유가 딱 한 가지 원인때문일 수도 있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미래 예측 작업 그 자체일 수도 있다. 2001년 영국의 노동당은 토니 블레어 총리를 필두로 하여 제1기 내각을 구성해 집권 중이었다. 당시 블레어 총리는 총선을 다시 치를 절호의 시기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노동당에 투표할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테며, 제2기 내각을 구성하는 일은 순조로울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여론조사에서는 노동당이 상당히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선거 전날 밤에는 영국의 특이한 선거제도를 감안하여 노동당이 표결수 47%를 확보해 블레어가 연임할 거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었다. 내가 컴퓨터 예측 모델을 예전 선거에서 나온 패턴들에 맞게끔 조정했더니 득표율 45%에서 48%가 가장 유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블레어가 거둔 실적은 어땠을까? 그가 이끄는 노동당의 득표율은 고작 40.7%였다. 진정한 예측 전문가라면 이 정도 결과를 떠들썩하게 반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언론과 매스컴에서 블레어가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밝히긴 했어도 예상보다 저조한 득표율이었다. 내 컴퓨터 모델을 통해서는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단지 5%밖에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블레어가 거둔 실적은 초라한 결과, 이른바 ‘조용한 승리’였다.

그렇다면 예측값이 잘못되었던 건가? 단지 하나의 예측 결과만을 놓고 그 예측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구한 예측값은 득표율이 이렇게 나오지 않으리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단지 그럴 것 같지 않다고만 했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바로 저주스런 자멸성 예측이란 요소다.
  
정치분석가들이 표결 자료를 자세히 조사하고서 깨달은 바는 10명 중에서 4명은 아예 투표하려 하지 않아서 투표자 수가 1918년 이래 가장 낮았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와 대중매체에서 워낙 노동당의 압승을 예상한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투표해봤자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여기고서는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주로 노동당을 찍었을 사람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따라서 예측값을 내는 행위 자체가 사람들의 태도에 변화를 초래했고 이 바람에 예측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빚었다.

이런 일은 흔히 대두되는 문제다. 과거 자료를 분석했더니 어떤 회사가 향후 12개월 사이에 파산할 확률이 90%라고 했다고 하자. 이런 전망치는 일종의 충격요법과도 같은 작용을 한다. 파산 전망에 정신이 혼미한 팀장들을 각성하게 만든 것이다. 그들은 회사가 도산하지 않게끔 최선을 다하려고 분발했다. 그 결과1년 후에도 그 회사는 여전히 건재했다. 시내의 한 지역이 새로운 우범지역이 될 거라고 예측했다고 치자.이런 일이 발생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단속을 강화하는 등의 조처를 취하게 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떤 예측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측한 대로 되는 자기충족성을 드러낸다.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는 아들 손에 죽을 거라는 예언이 있자 아직 젖도 못 뗀 아들을 산비탈에서 죽게 만들었다. 결국 그 아이는 목동들 손에 구출되고 친부가 누군지 알지 못한 채로 성장했다. 세월이 흐른 후 건장한 성인이 된 그는 길을 가던 중 마차를 탄 낯선 사람과 시비가 붙었다. 그는 그 이방인과 좁은 길에서 누가 양보해야 하는지 옥신각신했다. 이 싸움 끝에 오이디푸스는 그 사람을 결국 죽였다. 후일 그는 마차 속의 인물이 친부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신의 예언을 비껴가고자 해도 그 예언대로 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렇게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특성을 자기충족성 혹은 자기충족적 요소라고 한다.
  
증권계의 전문가가 주가 상승을 예측하면 사람들은 해당 주식을 매수하고 이 덕에 그 주가는 상승한다. 적어도 단기간의 깜짝 반등 정도는 거의 확실시된다. 《데일리미러》의 금융 저널리스트 두 사람이 2005년에 주식을 매수하고서 24시간이 지난 시점에 이 정보를 ‘흘렸다.’ 즉 그들이 기고 중이던 ‘시티슬리커즈’라는 칼럼에 이 정보를 게재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들이 ‘앨런 슈거 경의 비글렌 회사’의 주식을 수천 파운드나 사들인 후 다음 날 ‘슈거가 돈벼락을 견인할 전망’이라는 제목을 달고24 칼럼에 게재하여 이 비글렌 회사를 우호적으로 다룬 사실을 수사관들이 포착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의 행태와 예측값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방금 위에서 밝힌 것처럼 예측값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하냐에 따라 예측값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우리의 처신 때문에 예측에 큰 손실을 입힐 수도 있다. 2008년에 출시된 구글 플루트렌드 웹서비스는 20개국 이상에 걸쳐 독감 발생 지역을 예측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 예측값들은 ‘해열제’ 그리고 ‘기침’과 같은 독감 연관 검색어들을 구글검색창에 입력한 총 횟수의 집계자료를 기반으로 한다. 대체로 이 예측은 적중도가 매우 높다고 입증되었다.

그런데 2013년에 구글 독감 예측 서비스가 대중에게 너무 알려지면서부터는 사람들이 특이하게 행동했다. 그들은 독감 때문이 아니라 구글이 쓰는 예측 방식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독감 연관 검색어를 입력했다. 만약 이 구글서비스를 몰랐더라면 그들은 독감 연관 검색어를 구글의 검색창에 입력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2013년부터 그 파장은 예상을 뛰어넘었고 구글 플루트렌드 서비스는 독감 발생 예상수치를 월등히 높게 잡았다. 결국 실제 독감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총수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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