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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07. 2018

10. 사형수가 오늘 가장 원하는 물건은?

<창의력을 씹어라>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로 하여금 헛되이 살지 않게 하라.
- 미국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Desire
사형수의 간절한 기도
  
1949년 7월 14일, 한 살인범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것을 신호탄으로 1997년 12월 30일까지 대한민국에선 모두 920명의 사형수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실 형사소송법에 사형은 법무장관이 확정판결 후 6개월 이내에 집행명령을 내리고, 명령 후 5일 이내에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1997년을 마지막으로 지금껏 국내에서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형사소송법에 어긋나는 행위다. 아무튼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국제 앰네스티가 인정하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형 제도는 여전히 존속되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그 존속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사형은 정당한 응보(應報)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범죄를 예방해 사회를 방어하는 목적을 가지며 일종의 필요악(必要惡)으로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형제는 범죄 예방이나 응보주의 실현을 통한 정의와 공익 달성 등 필요악으로서 여전히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존속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사형 집행은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인지 내용이 꽤 무겁다.
  
오전 8시 30분, 서울구치소 기동타격대 선임 모 교도관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곧바로 보안과장의 호출이 있었고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감돌았다. 그것도 잠시, 그의 손에는 그날 사형이 집행될 사형수 네 명의 명단이 건네졌다. 오전 11시가 되자 기동타격대 후배 다섯 명과 함께 첫 번째 사형수를 데리러 가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교도관이 이름을 부르자 미결수들과 섞여 있던 사형수는 순간 멈칫거리더니 말없이 따라나섰다. 교도관은 사형수가 방에서 나오자 수갑을 채우고 “법무부 장관의 명령으로 사형이 집행된다”고 알렸다. 그리고 사형장까지 동행했다. 길어야 5분, 사형수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느린걸음으로 세상과 영원히 작별할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먼저 사형 집행자는 사형수의 이름과 범죄 내용, 사형선고 사실 등을 묻는다. 그리고 사형수가 원하는 대로 종교의식을 치르고 유언을 듣는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집행 개시를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오면 커튼이 닫힌다. 사형수가 보이지 않게 벽 뒤에 앉은 다섯 명의 사람이 동시에 자기 앞의 버튼을 누르면 누구의 선택에 따라 작동하는지 알 수 없도록 2~3초가 흐른 뒤 사형수 발밑의 장치가 열려 교수형이 집행된다. (<연합뉴스>, 성혜미, 2009.10.21.)
  
“확정판결을 받은 사형수가 오늘 가장 원하는 ‘물건’은 무엇일까?”
  
이는 필자가 외부 강의 중에 자주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이 질문에는 수강자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흥미로운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 칼(목을 죄는 밧줄을 끊기 위해)에서부터 휴대폰(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통화를 하기 위해서), 《성경》 등의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온다. 수강자들의 답변을 들은 필자는 “다른 것은 없습니까?” 하고 재차 묻는다. 그러면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다. 침묵을 깰 요량으로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답은 바로 ‘내일’이랍니다.”
  
그러면 갑자기 수강자들이 웅성거린다.
“에이, 조금 전에 ‘물건’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내일’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런 수강자들의 반론에 필자는 이렇게 응수한다.
“세상엔 유형(有形)의 물건과 무형(無形)의 물건이 있습니다. ‘내일’은 무형의 물건입니다. 그리고 세계적 기업들이 가진 자산 가운데 50% 이상은 브랜드와 같은 무형 자산입니다.”
  
틀린 것이 없지 않은가. 필자의 말에 그제야 수강자 중 절반이 쓴 미소를 짓는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켜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에겐 그에 걸맞은 가혹한 형벌이 주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사형 집행자는 사형수에게 사형이 언제 집행되는지 절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사형수들은 ‘혹시 오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초조함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집행 당일만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모든 사형수는 ‘오늘’만 죽을 수 있다. ‘내일’ 죽는 사형수는 있을 수 없다.
  
만약 사형수가 자신에게 명확히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면 오늘 밤에 얼마나 달콤한 잠을 청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나라는 사형수에게 그런 아량은 베풀지 않는다. 그래서 사형수는 매일 아침 죽음을 준비한다. 우리나라에 그런 사형수는 현재 60여 명에 이른다.
  
뉴스를 통해 매년 10여 명 이상의 사형수가 자살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게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른다는 극심한 중압감에서 해방되고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다.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임에도 이들의 압박감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양이다.
  
또한 사형수들은 언제든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여론의 움직임에 아주 민감하다고 한다. 특히 아동 혹은 여성에 대한 성폭행 살인과 같은 반인륜 흉악 범죄가 터지면 사형 집행 여론이 들끓는다. 그러면 사형수들은 여느 때보다 동요하며 두려움과 초조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죄를 짓고는 하루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 사형수가 오늘 가장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내일’이다. 적어도 오늘은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싶은 거다.
  
사형수도 내일이 자신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날이 있긴 하다. 바로 다음 날이 주말이거나 공휴일인 경우다. 관련 공무원들도 휴일에는 쉬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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