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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07. 2018

01. 천만 원짜리 와인과 행복

<슬픈 날엔 샴페인을>



아주 오래되고 귀해서 천만 원짜리로 평가 받은 와인의 맛은 대체 어떨까? 표현하기조차 힘든 우아한 향과 이 세상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신비한 맛을 지녔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대개의 경우 식초 맛이 날 공산이 크고 아니면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경매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 와인 열 개 중 하나는 1985년 영국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화 156,000달러(1억7천만 원)에 팔린 프랑스의 1787년산 샤토 라피트 로쉴드(Chteau Lafite Rothschild)로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의 소유였다고 알려졌다(그러나 나중에 그 진위 문제가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당시 그 와인을 구입한 사람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Forbes)의 사주인 말콤 포브스의 아들이자 부회장인 크리스토퍼 포브스였다.오래 숙성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보르도의 최상급 와인도 50년 이상은 보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인데, 그 당시에 이미 200년이나 된 와인의 맛은 과연 어땠을까? 그런 와인은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이미 제맛을 잃어버린 상태였을 확률이 높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에서 아주 유명한 와인이 엄청나게 비싼 값에 팔렸다는 기사를 본다. 그렇게 비싸게 거래되는 이유는 좀 더 특별한 맛에 대한 기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희소성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이너리에서 일 년에 겨우 수백 상자만 만들어낸다면 돈 많은 사람들과 와인애호가들이 몰려들 것이고,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철저히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오래되고 구하기 힘든 와인을 수집하는 것은 맛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된 우표나 동전을 수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의 칼럼니스트인 허브 케인은 “와인이야말로 제값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는, 몇 개 남지 않은 호사스러운 제품의 하나다. 우리는 실제 값어치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했을 때 그 와인을 최고로 즐기게 된다.”라고 했다. 미국에서 와인사업을 크게 하는 어느 사업가의 말은 이렇다. “나는 가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비싼 와인의 병에 붙어 있는 저 라벨이 떨어져 나간다면 그 값이 얼마로 매겨질지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와인을 고를 때마다 고민한다. 맛이 좋고 괜찮은 와인을 싸게 구입하고 싶다는 열망과 값싼 와인은 품질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심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격은 적당하면서도 값이 비싸 보이는 와인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비싸게 보이는 ‘라벨’에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가 결론적으로는 와인을 오히려 비싸게 산 것이다. 기억하시라! 와인업자들은 그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와인은 실제로 그렇게 비쌀 이유가 없는 음료다. 무엇보다도 분명한 것은 와인을 만드는 데는 비싼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와인은 다른 과일들이나 마찬가지로 밭에서 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밭에서 자란 포도를 따서 발효시킨 다음 병에 담은 농산물일 뿐이다. 미국에서는 매일 마시는 일반적인 테이블 와인의 값이 우윳값이나 소매점에서 파는 페트병 생수 값보다도 싸고 유럽에서는 더 싸다. 다만 와인에 붙는 과대한 세금과 제조업자들에게 부과되는 여러 가지 명목의 부과금, 그리고 정치적인 문제들에서 비롯된 비효율적인 공급 방법 때문에 최종 소비자 가격이 몇 배씩이나 높아진 것뿐이다. 그래서 와인을 구입할 때마다 와인과 가격의 상관관계 때문에 무척 혼란스럽다. 와인의 맛과 값은 기분이나 분위기, 날씨, 심지어는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에 따라서도 좌우된다. 그만큼 주관적인 음료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경제적으로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 와인의 값을 따지는 것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와인을 즐기기 위해 정당한 가격을 치르고 싶다.
  
꽃은 꽃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듯 와인도 그렇다. 와인 한 잔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것은 햇빛과 흙과 물과 바람과 이국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와 참나무통의 부드러운 접촉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곧 와인이 아닌 다른 성분들을 마신다는 것이다. 행복은 어마어마한 가치나 위대한 성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작은 것들, 무심히 건넨 한마디의 따뜻한 말 또는 스스럼없이 내민 도움의 손, 은연중에 내비친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음식 한 그릇과 와인 한 잔이 있는 식탁은 요란하지 않은 풍요로움과 잔잔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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