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
40대까지는 일식뿐만 아니라 이태리와 프랑스 요리에도 가는 식당을 따로 정해놓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이유를 대자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단골’이 되는 게 싫어졌기 때문이다.
단골 가게가 생기면 당연하게 단골손님이 된다. 종업원들이 나를 알아보고, 셰프하고도 친해져서 결국에는 알게 모르게 특별 대우를 받게 된다. 예약이 꽉 차 있어도 융통성을 발휘해준다거나 서비스 요리가 한 접시씩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예외적인 대접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그런 대접을 받으면 어쩐지 불편해지는 쪽이다. 만약 그 가게에 처음 온 손님이 있는데, 옆자리에만 특별 요리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혹은 옆자리 손님이 단골이라며 셰프와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광경에 괜한 소외감을 느끼면 어쩌나. 그런 생각들이 들어서 마음이 거북하다.
단골인데 한동안 발걸음이 뜸해지면 공연히 미안해지는 것도 불편한 일이다. 단골 리스트에서 빠지는 것도 서운하고, 그렇다고 스케줄이 꽉 차 있는데 일부러 찾아가기도 뭐해서 고민하다가 지쳐버린다. 익숙하거나 친한 느낌은 편안하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는 채워주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지금은 단골 식당이 없는 상태다.
이것은 거리감의 문제일 것이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딱 좋은 거리에서 상대와 관계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유명한 비유가 있다. 고슴도치는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너무 떨어지면 춥다. 그래서 둘은 서로 상처 입히지도, 추워지지도 않는 거리를 찾아내 함께 살아야 한다. 적정한 거리 두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비유다.
우리는 친구나 이웃과 혹은 직장의 인간관계에서 적정하게 거리 두는 법을 몰라 스트레스받는 일이 무척 많다. 그렇다면 관계에서 알맞은 거리의 기준은 무엇일까.
부담감이나 의무감으로 지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딱 적당한 거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무리해서 일을 맡거나 거꾸로 상대에게 과한 요구를 하는 상황은 거리가 너무 가까운 경우다.
가끔 들르는 커피숍 중 하나에, 커피를 무척 맛있게 내리는 젊은이가 있었다. 낯이 익어 서로 인사는 하지만 특별 대우는 없는 관계다. 내가 들렀을 때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었다.
2년쯤 지난 어느 날, 그 젊은이가 “이번 달로 그만두고 캐나다에 가서 일하게 됐습니다.” 하는 거였다. 매니지먼트 자격을 가지고 있어서 해외 기업에 취직하게 됐다고 했다.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것은 커피숍을 그만두기 1주일쯤 전인 그때가 처음이었다.
깊은 관계를 맺은 바는 없지만 이후로도 그 가게에 가면 ‘그 젊은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으려나?’ 궁금해진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고 살짝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거리였다고 기억한다.
사람마다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거리는 다 다르다. 그래서 그에 대해 생각하는 건 항상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