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매력적

<피에스 프롬 파리>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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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는 오후에 한 골동품상에서 산 귀갑테 안경을 썼다. 두꺼운 렌즈 안경을 쓰니 미아도 평범해 보였다. 그녀는 레스토랑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식당은 만원이었고,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은 벽면에 뚫린 대형 유리창을 통해 다이지가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조 요리사도 정신없이 바빠 보였다. 다이지가 요리를 들고 나왔다가 사라졌다. 문이 열리고 다이지가 다시 나타나 사 인석 테이블 쪽으로 갔다. 그녀는 테이블에 요리 접시들을 내려놓고 돌아오다 미아를 스치면서도 알아채지 못했다. 주방으로 들어가기 직전에야 다이지는 세 걸음 뒤로 돌아왔다.

“미안합니다, 테이블이 꽉 차서요.”
미아는 안경의 효과를 실감했다.
“어디 앉을 데 없을까요? 아무 데라도 괜찮은데요.” 미아는 목소리를 변조했다.

다이지는 입술을 비쭉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기 남자 손님들이 계산서를 달라고 하긴 했지만 수다가 심한 사람들이라서……. 혼자 오셨어요? 카운터 자리라도 괜찮으시다면.”
다이지가 구석진 자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카운터 의자에 걸터앉았다.

몇 분 후, 다이지가 카운터 앞에 나타나 세팅을 한 다음 돌아서서 굽 달린 유리잔 한 개를 선반에서 꺼냈다. 그러고는 미아에게 메뉴판을 내밀며 가리비관자 요리는 떨어졌다고 말했다. 신선한 재료만 사용하는데 다 나갔다면서.

“유감이네요, 셰프님의 가리비관자 요리를 먹으려고 런던에서 일부러 왔는데요.”

다이지는 긴가민가하며 미아를 유심히 살피다 흠칫했다.
“맙소사!” 다이지가 외쳤다. “손에 뭐 들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네, 떨어뜨릴 뻔했잖아. 미쳤구나, 너!”
“못 알아봤어?”
“제대로 보지 않은 것도 있지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마음에 안 들어?”
“노닥거릴 시간 없어. 웨이트리스가 갑자기 나가버리는 바람에. 저녁 시간에 이러면 안 되는데. 너 배고프면 뭐 만들어주고, 아니면…….”
“도와줄까?”
“멜리사 바로우가 웨이트리스? 그래서 뭐 하려고?”
“여기서는 미아로만 생각해. 그리고 좀 작게 말해!”

다이지가 미아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접시를 제대로 들 줄이나 알까, 다 엎어버리는 거 아냐?”
“웨이트리스 연기 한 적 있어. 알잖아, 나 완벽주의라는 거. 얼마나 연습했는데.”

다이지는 망설였다. 보조 요리사가 울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손님들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으니, 당장 일손이 필요했다.
“그 웃기는 안경 벗고 따라와!”

미아는 주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다이지가 앞치마를 건네주고 가열램프 밑에서 대기 중인 접시 여섯 개를 가리켰다.
“팔 번.”
“팔 번?” 미아가 물었다.
“입구에서 오른쪽, 저기 큰 소리로 떠드는 남자가 있는 테이블. 친절하게 대해줘. 단골이야.”
“단골손님.” 미아는 접시들을 들면서 말했다.
“처음이니까 한 번에 네 접시 이상은 들지 마.”
“넵, 셰프, 분부대로 합죠.” 미아는 쟁반을 들면서 대답했다.
미아는 첫 번째 미션을 완수하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요리 접시들을 들고 나갔다.

서빙에서 자유로워진 다이지는 주방에서 원래 리듬을 되찾았다. 요리가 완성되면 종이 울렸고, 미아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서빙하지 않을 때는 테이블을 치우고 계산서를 정리했고, 다이지의 재미있어 하는 눈길을 받으며 지시에 따랐다.
밤 열한 시쯤 되자 손님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네 ‘단골’이 테이블에 놔둔 거야. 일 유로 오십 센트를 팁이라고.”
“인심이 후한 남자라는 말은 안 했다!”
“고맙다고 말하길 기다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더라고.”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그래서 뭐 하려고?”
“헤어스타일 바꿀 생각은 언제 한 거야?”
“너에게 일손이 필요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마음에 안 드나 보네, 내 머리!”
“너 같지 않아. 익숙해지면 모를까.”
“내 영화 안 본 지 오래됐구나. 이것보다 더 웃기는 머리를 한 적도 있는데.”
“서운해하지 마, 일이 너무 많아서 영화 보러 갈 시간이 없는 거니까. 이 디저트 갖다줄래? 빨리 문 닫고 눕고 싶어 죽겠어.”

미아는 웨이트리스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고, 이런 일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친구에게서 인정을 받았다.
자정, 마지막 손님이 떠났다. 다이지와 보조 요리사가 주방을 치우는 사이 미아는 테이블을 정리했다.
다이지와 미아는 함께 커튼을 내리고 레스토랑 문을 잠갔다. 둘은 걸어서 몽마르트르 거리를 가로질렀다.

“저녁마다 이래?” 미아가 물었다.
“일주일에 육 일은. 고되지만 다른 직업을 갖진 않을 거야. 난 운이 좋은 편이지, 내 가게니까. 비록 월말은 죽을 맛이지만.”
“월말에는 미어터지는구나.”
“멋진 저녁이기도 하지.”
“일요일에는 뭐해?”
“자.”
“그럼 애정 생활은?”
“내 애정 생활이 썰렁한 침실과 주방 사이 어디쯤에 있긴 할까?”
“이 레스토랑을 시작한 뒤로는 아무도 안 만났어?”
“몇 명 만났는데 내 일상을 견디지 못했어, 한 놈도. 넌 같은 직업을 가진 남자와 사니까 모를 거야. 네가 촬영을 떠나고 없는 날들, 그걸 참아주는 남자가 몇이나 될 거 같아?”
“이제는 특별히 함께하는 것도 없어.”

인적이 없는 텅 빈 거리에 둘의 발소리가 울렸다.
“우리 둘 다 노처녀로 끝날지도 몰라.” 다이지가 말했다.
“넌 그럴지 몰라도 난 아니지.”
“빌어먹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누가 못 하게 막아?”
“그럼 너는 누가 못 하게 막는데? 어디서 만났는데, 그 남자들? 손님?”
“사랑과 일은 별개야.” 다이지가 대답했다. “딱 한 번만 빼고. 아주 자주, 너무 자주 오는 남자였는데 얼마 후에야 내 요리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
“어떤 남자였는데?” 미아가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괜찮은 남자, 꽤 괜찮은 남자였지.”

그사이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다이지가 정문 비밀번호를 눌렀고,
계단에 오르기 전에 전등을 켰다.
“어떻게 괜찮은데?”
“매력적.”
“또?”
“뭘 알고 싶은데?”
“전부 다! 어떤 점에 끌렸는지, 첫 밤은 어땠는지, 연애 기간은 얼마나 됐는지, 어떻게 끝났는지…….”
“듣고 싶으면 기다려, 다 올라갈 때까지.”

아파트 안으로 들어간 다이지는 소파 침대에 쓰러졌다.
“난 탈진 상태야. 차는 네가 준비해줄래? 영국인들이 주방에서 유일하게 잘하는 게 차 끓이는 것 같던데.”

미아는 친구를 향해 주먹감자를 날리고 조리대로 향했다. 전기 포트에 물을 붓고 다이지가 약속을 지키길 기다렸다.
“작년 7월 초, 어느 날 저녁이었어. 레스토랑은 거의 비었고, 끝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가 들어왔어. 잠시 망설이다 못 말리는 직업의식 때문에 보조 요리사와 웨이트리스를 퇴근시켰지. 손님 한 명은 혼자 해결할 수 있으니까. 메뉴판을 내밀었는데 내 손을 덥석 잡고는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라는 거야. 자기를 위해 내가 남아 있어줘서 고맙다면서. 난 바보같이 그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
“그게 왜 바보 같아?”
“그가 먹는 동안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도 함께 깨작거렸지. 활기가 넘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어. 그가 치우는 걸 도와주겠다고 고집하기에 내버려뒀지. 좋더라고. 레스토랑 문을 닫을 때 그가 술 한잔하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어. 한 카페의 테라스까지 걸었고, 우리는 거기서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었어, 아름다운 세상이었지. 그는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허풍을 떨지도 않았어. 솔직히 말해 어떻게 이런 남자가 나한테 왔나, 기적이라고 믿을 정도였으니까. 그는 집 앞까지 바래다주면서도 올라오려고 하지 않았고 그냥 키스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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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완벽한 남자를 만났던 거야. 계속 만났어. 레스토랑이 끝나는 시간에 와서 문 닫는 걸 도와줬고, 일요일마다 함께 시간을 보냈지. 여름이 끝날 때까지는. 그러다 그가 더는 만날 수 없다고 했어.”
“왜?”
“아내와 아이들이 바캉스에서 돌아왔기 때문에. 더는 캐묻지 않아주면 고맙겠다. 난 이제 목욕하고 잘 거야.” 다이지는 그렇게 말하고 침실 문을 닫았다.




쉐 라미 루이에서 식사를 하고 나온 로렌이 베르브와 거리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파리의 매력에 푹 빠진 건가?” 폴이 물었다.
“우리가 방금 먹어치운 엄청난 양의 식사, 그 매력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 로렌이 말했다.

셋은 택시를 탔다. 집에 도착하자 친구들에게 푹 쉬라고 말하고 폴은 글을 쓰기 위해 서재에 틀어박혔다.

로렌은 침대에 앉아 노트북의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아서는 십분 후 욕실에서 나와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이 시간에 메일 읽는 거야?” 아서는 놀랍다는 듯 물었다.

로렌은 노트북을 아서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자신이 방금 작성한 글을 보고 아서가 깜짝 놀라자 로렌이 깔깔대고 웃었다.

아서는 로렌이 써놓은 첫 줄을 다시 읽었다.

<소설가, 독신, 주로 밤에 일하는 미식가, 유머와 인생 그리고 우연…… 을 좋아하는 남자.>

“아까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시더라니.”

아서가 노트북을 닫으려다 실수로 버튼을 클릭하게 됐고, 그 바람에 폴의 인적 사항이 데이트 사이트에 완벽히 등록됐다.

“우리가 이런 장난친 걸 알면 폴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텐데.”
“그럼 당신이 빨리 가서 사과해야지, 방금 들린 삐, 신호음 때문에 되게 겁나는데…….”
가슴이 철렁한 아서가 재빨리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이 계정을 아는 건 우리밖에 없어. 그리고 폴의 일상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겠다는 것도 아닌데.”
“나도 폴에게는 함부로 못 하는데.” 아서가 대꾸했다.
“폴이 우리를 위해 어떤 모험을 했는지 상기시켜줘?” 로렌이 불을 끄면서 받아쳤다.

아서는 어둠 속에서 한동안 눈을 뜨고 있었다. 수많은 기억이 되살아났다. 정신 나간 도주와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 폴은 그를 돕다 하마터면 감옥에 갈 뻔하기도 했다. 지금 누리는 자신의 행복은 친구의 배짱 덕분이었다.

아서에게 파리는 우울하고 고독하게 살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이번에는 폴이 그렇게 살고 있었다. 이런 고독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지 아서는 잘 알았다. 하지만 데이트 사이트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 텐데, 아무리 고독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자자.” 로렌이 속삭였다.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지 아닐지, 그건 두고 보자고.”

아서는 아내에게 바짝 붙어서 잠이 들었다.




미아는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서 계속 뒤척였다. 지난 몇 주를 떠올려보지만 기뻤던 때라곤 없었다. 요사이 계속 우울했는데 오늘은 단연 최고의 날이었다. 비록 가슴 한쪽은 여전히 허전하지만.

미아는 옷을 갈아입고 조용히 아파트를 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거리는 어둠에 잠겨 있고, 길은 안개비에 젖어 있었다. 그녀는 언덕을 따라 테르트르 광장까지 올라갔다. 캐리커처 화가가 이젤을 정리하고 있었다. 화가는 고개를 들고 미아가 벤치에 앉는 모습을 바라봤다.

“한밤중인데요?” 화가가 미아 옆에 와서 앉으며 물었다.
“불면증.” 미아가 대답했다.
“잘 알죠. 나도 새벽 두 시 이전에는 눈을 붙여본 적이 없거든요.”
“그럼 당신 아내는 밤마다 기다리나요?”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어요.” 화가가 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친구에게 초상화 전해줬어요?”
“아직 기회가 없어서 내일 주려고요.”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친구에게 내가 그린 거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 레스토랑에서 점심 먹는 걸 좋아하는데 왠지 거북할 것 같아요, 그녀가 알면.”
“왜요?”
“허락받지 않고 초상을 그리는 거, 위법이거든요.”
“그래도 그렸잖아요.”
“아침마다 내 이젤 앞을 지나가는 그녀를 보는 게 좋아요. 기분 좋게 해주는 그 얼굴을 간직하고 싶었죠.”
“당신 어깨에 머리를 기대도 될까요? 오해하지는 말고요.”
“그래요, 내 어깨는 입이 무겁죠.”

둘은 잠자코 파리의 하늘에 보일 듯 말듯 어렴풋한 달을 바라봤다.
새벽 두 시, 캐리커처 화가가 헛기침을 했다.

“잠이 오지 않았어요.” 미아가 말했다.
“나도 늘 그래요.”

미아가 일어났다.

“그만 헤어질 시간이네요.” 미아가 말했다.
“네, 잘 가요.” 캐리커처 화가가 일어나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테르트르 광장에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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