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함께 살아지다>
“태양빛을 형용할 말을 찾지 못해서 나는 진노랑, 유황금색, 레몬 금색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구나. 노란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고흐는 남부 프랑스에 쏟아지는 햇빛에 대한 찬탄을 늘어놓는다. 우중충한 날씨에 익숙한 북유럽 출신의 화가에겐 노란색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던가 보다. 고갱은 고흐를 해바라기 화가라고 칭하기도 했었다. 햇살의 형용인 듯한 꽃을 사랑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고흐는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로 오기 전, 2년 동안 파리에 머물렀다. 19세기 유럽의 수도였던 터라, 많은 철학자들과 예술가들 그리고 문인은 파리로 모여들었다. 고흐는 그곳에서 활동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으로 새로운 색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이기도 하다. 그가 파리를 떠난 이유는 물론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 가난한 작가에게 도회지에서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또한 그 모두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파리의 예술가들에게 지친 이유도 있었단다. 이런저런 이유가 덧대어져 목가적인 풍경을 찾아 떠나온 고흐는 아를에서의 생활에 무척이나 만족했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내레이션 속에 등장하는 고흐, 그의 표상과도 같은 불행한 삶 속에서, 고흐가 행복했던 시간은 얼마나 될까? 고흐는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행복의 감정을 아를의 풍경 속에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해바라기 연작들을 그려낸다. 그러나 자신이 흠모했던 고갱과의 불화, 그리고 귀가 절단되는 사단이 일어난 곳도 이 동네였다. 광기도 이곳에서 잉태가 된다. 때로 인생은 그토록 잔인하고 아이러니하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듣다 보니, 고흐의 인생을 담은 노래이기도 하다는…. 해바라기는 불꽃으로 타오르고 싶었던 고흐의 욕망이 투영된 형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노란색에 집착을 하기도 한다. 환상 속에서나마 최고의 노랑을 얻기 위해, 여름 내내 술에 취해 있기도 했었던…. 또한 시든 해바라기 그림은 좌절의 투영인 듯싶다. 고흐는 세상으로부터 방치된 자신의 심정을 시든 해바라기에 이입하기도 한다. 내 절망과는 다른 조도와 채도로 빛나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세상이 도리어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오기도 하지 않던가.
미학사로만 접한 탓에, 광기의 열정으로 자신을 향한 배려마저 불태워버린 히스테리 환자로 만 알고 있었다. 너무도 유명한 그 귀 절단 일화 하나로 그의 삶 전부를 오해했었던…. 그러나 광기의 열정은 그만큼의 온기도 지니고 있었다. 윤동주 시인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다간 화가, 오늘 밤에도 그의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