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엄마>
엄마는 너를 업고 자전거를 탄단다._신현림
올해 장미꽃이 몇 번 피었는지 아니?
이상기온으로 네 번 피고 졌단다.
이상기온으로 태풍이 불어도 두렵지 않단다.
우리 아가와 폭탄의 차이는
가슴에 품고 싶다와 품기 싫다는 거지만
전쟁이나 대구 방화 참사처럼 사람이 만든 재앙은
어미가 막을 순 없지만
네가 그린 코끼리를 하늘로 띄울 수 있고
어미의 눈물로 한 사발 밥을 만들 수 있고
어미의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희망의 폭동을 일으킬 수 있지
고향 저수지를 보면 나는 멋진 쏘가리가 되고
너를 자꾸 보면 섬이 된단다.
너라는 근사한 바다를 헤엄치는 섬
포대기를 두르고 한 몸이 되어
자전거를 타면 어디든 갈 것 같지
내 몸속에 번진 너의 체온
향기가 퍼지는 구름같이
모든 것의 시작을 뜻하지
너와 있으면 뭐든 바꿀 수 있고
맨날 어미는 다시 태어난단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픽업하러 갔다가 원장 선생님께 아주 기쁜 이야기와 아주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이 똘똘한 것이 얼마나 예쁜 짓을 많이 하는데요.
놀이방에 있는 애들이 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혼자 책상에 앉아 있지 않겠어요.
뭘 하나 들여다봤더니 책을 보고 있더라고요.
엄마가 글 쓰느라
매일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봐서 그런가,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자고 일어나도 울지도 않고 인사도 제일 잘하고.
엄마가 이 예쁜 짓을 못 봐
억울해서 어째.”
약 올리는 것 같은 농담 섞인 말도 감사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이 예쁜 짓을 못 봐 억울해서 어째”라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린 듯 아파왔다.
‘언제 이렇게 자란 걸까. 작업하는 방에 와서 비키라며 내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바람에 물결치는 보리 이삭처럼 내 딸이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매일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고는 씻기고 밥 먹이고 잠들 때 같이 있어준 것 외엔 별로 없는데, 엄마가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 한다는 사실이 신통하기도 하고 나를 참 숙연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나를 슬프게 했다.
서윤이는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한 아이의 어머니를 보고 “엄마!”라고 부르며 함께 따라가겠다고 울고, 그 친구도 자기 엄마라며 서로 난리를 쳤다는 이야기였다. 그 어머니의 키와 옷차림이 대충 나와 비슷하다고는 하나, 결국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든 건 내 책임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어 한없이 슬펐다.
살림과 밥벌이로 바쁘게 뛰다 보면 도서관에서도 보통 두세 시간밖에 못 앉아 있는 형편이었다. 서두른다고 해도 다른 아이들보다 한 시간이나 더 지나서 딸을 데리러 갔다. 겨울이라서 다른 부모님들은 평소보다 더 일찍 아이를 데려가나 보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나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 다른 때보다 30분 먼저 데려가실 순 없나요?
애들 다 가고 나면 서윤이 혼자 남아서 우는 게
영 안쓰러워서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슴이 먹먹했다.
저녁때가 되면 애처롭게 우는 아이의 모습이 어른거려 괴로울 때가 많았다. 그래도 도서관에서 악착같이 일을 해야 어느 정도 먹고살 형편이 되는데, 나더러 대체 어쩌란 말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일 저녁이면 마음속에서
이런 갈등과의 싸움이 일어났다.
그뿐 아니라 가슴 한 켠엔 내 작업에 대한 안타까움도 들었다. 아이는 숨을 쉬게 해주는 만큼 내게 귀한 존재이지만, 생계부터 육아까지 1인 5역을 맡다 보니 시 쓰기 힘든 환경이 속상해 울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 고단하고 다양한 경험을 시로 승화시킬 꿈을 키워야지 어쩌겠나.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딸을 가슴에 품고 엄마의 온기를 물들여주고파 생각한 것이, 아이를 업고 포대기를 두른 채 자전거를 타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몹시 겁이 났지만, 점점 마음의 평화를 찾으며 가까운 시장과 놀이방을 이렇게 태우고 다녔다. 애도 신기해하고, 엄마의 온기를 따사롭게 안으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럴 때 내 마음 역시 푸근해졌다. 물론 나중엔 목 디스크로 고생을 하고 지금껏 함께 사는 병이 되었지만, 그때 느꼈던 푸근한 사랑의 감정은 지금 이 순간 보람으로 남아 있다.
포대기를 두르고 한 몸이 된다는 것.
몸속에 딸의 체온을 느끼며
혼자가 아니라는 가슴 뭉클한 기쁨을 누리는 것.
이것이 인생 모든 것의 시작이다.
매일 다시 태어나 시작한다는 기쁨은 온전히 딸아이를 통해 느끼는 마음이다. 어차피 엄마로 산다는 게 힘들다는 거 잘 안다. 아이를 통해 배우는 놀라운 사랑의 능력, 그것이 내 몸과 감각에 따뜻한 안개처럼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