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엄마>
내 젊음의 초상_헤르만 헤세
지금은 벌써 전설이 된 먼 과거로부터
내 젊음의 초상이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지난날 태양의 밝음에서부터
무엇이 반짝이고 무엇이 불타고 있는가를
그때 내 앞에 비추어진 길은
나에게 많은 번민의 밤과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그 길을 이제 두 번 다시 걷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왔고
그 추억은 보배로운 것이었다.
실패도 과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밖이 고요하다.
창밖 지붕 위로 별들이 박혀 밤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조용히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딸과 함께했던 추억의 기록들을 꺼내어 보고 있다. 정신없이 달려온 하루의 끝에서 이 글들을 읽으며, 나는 딸의 어린 날을 떠올렸다. 향기롭고 보송보송한 딸의 어여쁜 네 살 때를.
그날 밤, 12시가 넘었는데도 아이는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며 마감해야 할 원고를 고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내가 일을 마쳐야 아이도 잠이 들었기에 아이를 일찍 재우려는 노력은 애초에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냥 자유롭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바람을 따라 방 안까지 밀려온 어둠은 꽤나 깊고 적막해서, 금세 새벽이 오면 어쩌나 걱정이 들었다. 조급해진 나는 딸아이의 끈끈한 팔을 씻기고 비디오도 형광등도 전부 껐다. 나란히 누워 함께 기도도 했다. 감기에 걸릴 새라 가슴팍까지 이불을 덮어주고는 아이의 맑고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이제 엄마 나가서 일해도 되지?”
“응.”
“그래, 고마워.
엄마가 열심히 일해야
우리 서윤이 우유도 사고,
예쁜 옷도 사고,
같이 동물원도 놀러가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한국 나이로 갓 네 살에 불과했지만, 내가 일을 해야 우리 두 사람이 먹고산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굳이 딸을 재우기 위해 한 시간씩 뜬눈으로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자기를 떼어놓고 일하러 간다며 울고 보채지도 않았다. 싱글맘의 삶은 늘 아프고 고달팠다. 그러나 고단한 몸에도 에너지가 충만했던 건 내 딸이 내 곁에 있어서였다.
어둠 속에서 큰 눈망울을 굴리며 웃는 모습이 보였다. 매화꽃처럼 엷고 희미한 분홍빛 얼굴. 환히 빛나는 그 실루엣이 참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일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다니 가슴이 에이듯 얼마나 예쁘고 고마운지…….
그때 딸이 내게 물었다. “문 닫을까?” 하고.
내 입가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니, 책상까지 서윤이라는 꽃향기가 흘러와야
엄마는 기쁠 것 같아.”
내 딸의 향기가
책상에서 폴폴 나야
엄마인 나도 힘이 솟는다.
가끔 딸은 나에게 야단을 맞고 울다가도 이렇게 물었다.
“엄마, 나 예뻐?”
“그럼, 얼마나 예쁜데. 엄마는 누구를 제일 사랑한다고 했지?”
“엄마는 서윤이 제일 사랑해.”
무슨 말을 해야 사랑받는지 아는 애 같아 신기했다.
사실 애를 키우다 보면 내 딸만 예쁜 게 아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예쁘다.
주간에는 사립 어린이집, 야간에는 시립 어린이집 두 군데를 다녔지만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는 일도 없었다. 엄마가 꼭 일하러 가야 하나 보다, 하고 여기는 것 같았다. 원장 선생님이 어린이집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물으시면, 선생님들은 모두 내 딸이라고 했다. 상황이 어려우면 되레 아이가 부모를 돕는다는 말이 있는데, 꼭 맞는 것 같았다. 어쩌다 걸리는 감기와 기관지염 외에는 자라면서 아토피도 큰 병치레도 없이 건강히 잘 자라주었다.
딸아이는 유독 책 읽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한글을 네 살 때부터 가르쳤다. 나는 오랫동안 글짓기 선생으로 생계를 연명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딸 교육만큼은 아쉬움이 조금 남아 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창조적으로 글 쓰는 법을 가르쳐서 제자 중 한 명은 프랑스 파리 제8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고, 조카는 벨기에 왕립학교에서 의상학과 그림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 둘은 내 교육법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흐뭇하기만 하다. 딸에게도 똑같이 가르쳤다면 좋았으련만, 딸을 가르칠 여유가 생겼을 때에는 이미 엄마 말을 안 듣는 사춘기가 되어버린 후였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일 땐 엄마 말도 잘 듣고 글도 제법 잘 썼지만, 지금은 일기조차 볼 수 없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시 「내 젊음의 초상」 속 마지막 구절을 읽을 때면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된다. 내 마음도 이와 같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후회하고 있는 일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창피해진다. 웃음도 나오고.
실패도 과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