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엄마>
강릉 가는 길_윤후명
삶을 이어가기에는 감자가 아리고
사랑을 나누기에는 물고기가 비리고
죽음을 이루기에는
산과 바다가 죽음보다 길쭘하여
그리운 사람들 모두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고 싶던 날이 있었다.
뒷산 호랑이가 나무되어 걸어 내려와
처녀 데려가 살았다는 옛 곳
옥수수수염 같은 고향길
그렇건만
삶과 죽음이 새삼 서로 몸을 바꿔
사랑을 더듬는 모습 속에
더욱 갈 길 아득하여
어디인가 어디인가
어디인가 멀뚱거리기만 하였다.
봄날에 내리는 눈은 낯설고 구슬프다.
날이 흐렸다.
그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충북 증평에 사는 모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했고, 두 달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고는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나도 혼자 딸을 키우며 수없이 죽고 싶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돈은 떨어지고, 갓난아이를 어찌 키워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져 막막했다. 딸과 함께 목숨을 끊은 그녀의 유서에는 “혼자 살기가 너무 힘들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백번 천 번 그 힘든 마음을 헤아리기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허망하게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도움조차 요청할 수 없었다니…….
집 안을 오가는 사람도 없고 누구 하나 전화 걸어주는 이도 없었다는 절망감은 그녀에게 더 살아갈 이유를 주지 못했다.
이 뉴스를 접하기 전 나는, 출판사를 차린 후 낸 시선집 『아들아, 외로울 때 시를 읽으렴』의 카피를 바꿔 인쇄를 맡겨둔 상태였다. 일주일을 고민한 카피의 서두는 이러했다.
‘혼자서 이겨내는 너를 위하여
아들로 살아가는 너를 위하여.’
힘들 때, 몹시 외로울 때 시를 읽으며 강하고 끈질기게 살아갈 힘을 얻으리란 믿음으로 만들었지만, 이렇게 누군가 죽어나가는 뉴스를 보면 나도 모르게 맥이 죽 빠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내 생애 꿈 중 하나가 힘겨운 이들을 돕는 것이다. 특히 시집을 기증하고 싶어 고아원과 소년원, 미혼모의 집 주소를 정리하고 편지도 써놓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어려운 이들이 지치고 외로울 때 강하고 단단하게 살아갈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의 친구들이 튼튼하게 성장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주소를 검색하던 중에 ‘찜질방을 전전하던 청소년 미혼모’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와 읽게 되었다. 미혼모의 집 간사님들이 사라진 청소년 미혼모들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였다.
마침 찜질방을 전전하던 미혼모의 친한 친구가 한부모가정지원센터의 대표에게 전화를 했나 보다. 친구를 구해달라고. 대표는 그녀를 도우러 나섰고, 새 보금자리로 이끌어주었다. 그때 어린 엄마는 눈물 지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끝인 줄 알았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월세 밀리지 말고, 당분간은 내가 도와줄게요.
일자리도 알아봐 줄 테니 다시 시작해보자고.”
센터장은 고개를 떨군 채 우는 어린 엄마의 어깨를 다독였고, 그녀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 엄마처럼 증평 모녀에게도 전화 걸어줄 친구가 있었다면, 어린 딸과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참으로 가슴 아픈 죽음이었다.
미혼모도 이혼남, 이혼녀도 점점 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해진 삶의 방식이 이젠 낯설지 않다. 청소년 부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동시에 내 후배 시인의 말도 어른거린다.
“아직도 이혼녀들은 친정에서든 사회에서든 고립되어 있어요. 소외감이 말도 못해요. 선배는 다른 여자들에 비해 복이 있어요. 글도 쓰고, 멋진 부모님과 자매들, 남동생한테까지 지지를 받았잖아요. 이혼한 여자들이 모여 있는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 보세요. 그녀들끼리 뭉쳐야 산다는 걸 절감할 거예요.”
나는 나의 이혼이
딸아이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상처도 콤플렉스도 되지 않도록
늘 이런 말을 하며 살았다.
“사람 사는 모양이 어때?
전부 다 다르지?
사람들 얼굴이 다 다르듯이 말이야.
어떤 친구는 할머니랑 살고, 또 아빠랑 살고,
우리처럼 엄마랑 사는 사람들도 있는 거야.
그 누구에게도 편견을 가지지 말아야 해.
모든 다름을 존중해야겠지.”
딸이 세 살이 되던 해에 이혼을 해서 그런지 내 딸은 이혼 후유증 없이 자랐다. 물론 이혼으로 인해 나는 늘 경제적인 절박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최근 혼자 출판사를 차린 이유도 딸이 학비와 돈 걱정을 해서였다.
“엄마, 어떡하지? 나 학비도 없는데.”
“뭐라고? 그건 엄마가 준비할 건데 무슨 소리야.”
그러면서 문득 입학금만 대출받아 내고 나머지 등록금은 네가 알아서 마련하라고 했던 나의 말이 떠올랐다.
전업 작가가 뭐기에, 예술이 뭐기에 자식을 돈 걱정하게 만들었을까……. 부끄럽고 슬펐다. 그래서 두 팔 걷어붙이고 6년 동안 망설였던 출판사를 차렸다.
어쨌든 길은 스스로 찾는 법밖엔 없지만, 그래도 언제든 그 길목에 도와주는 이들이 반드시 있다. 슬플 때 슬픈 이들을 보며 이겨내게 되고, 웃음은 웃음 속에서 더 크게 번지는 법이다. 어쩌면 모두 사라진다는 점에서, 대체로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슬픈 사람들이다. 늘 뭐 하나가 아쉽고, 안타깝고, 아프기만 하다.
삶을 이어가기에는 감자가 아리고, 사랑을 나누기에는 물고기가 비리다, 라는 것. 아주 자세하게 감자와 물고기로 삶을 비유하는 솜씨는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소설가이자 시인 윤후명에게 강릉은 실제 고향이기도 하고, 시인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이데아일 것이다.
가다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이유는 길을 잃을까봐 염려해서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특별한 상실과 특별한 슬픔을 통해 비로소 인생을 알고 성장하며 깊어진다는 사실을 놓쳐선 안 된다. 그리고 죽음을 먼저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넘어서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삶의 끈을 놓지 않는 노력 속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지 않는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