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험한 세상에서 딸을 키운다는 것

<시 읽는 엄마>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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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살이_이시가키 린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밥을
푸성귀를
고기를
공기를
빛을
물을
부모를
형제를
스승을
돈도 마음도
먹지 않고는 살아올 수 없었다.
부풀은 배를 안고
입을 닦으면
부엌에 흩어져 있는
당근꼬리
닭 뼈다귀
아버지의 창자
마흔 살 해질녘
내 눈에 처음으로 넘쳐흐르는 짐승의 눈물




엄마는 자식과의 정을 먹고 산다. 그렇게 엄마는 자식으로 인해 다시 태어난다. 내가 내 딸의 엄마가 됨으로써 어머니의 소중함을 느낀 만큼, 내 딸에 대한 애정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따금씩 이렇게 묻는다.
‘내 딸이 없었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내 피붙이가 있다는 사실이 이리도 다정하고 따뜻할 수 없다.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딸이 주는 경이로움이 이렇게 클지 처녀 시절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내 안의 씨앗이 어느새 자라 걷다니……. 직립 인간으로 성장하기까지 순간순간 맛보는 인생의 신비. 내겐 이 모든 순간이 하나의 기적이었다.

부모님 그늘에서의 가난은 진정 가난이 아니었다. 혼자 단칸방에 세 들어 살며 밥벌이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절감하면서, 비로소 가난의 의미가 스며들었다. 이시가키 린의 시 「목숨살이」처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가난으로 인해 눈가에 넘치던 눈물을 기억한다.

이 ‘목숨살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이가 두려움과 염려, 그리고 방어력이다. 두려움이 넘치면 공포가 되어 스스로를 잡아먹기도 하지만, 적당한 양의 두려움과 염려는 인생을 탄력 있게 만든다. 또 알맞은 방어력은 미리 불행을 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험한 세상에 애를 낳아 뭐하나, 하는 비관주의자였던 나였기에 이 시가 더 남다르다. 물론 험한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는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페미니즘의 폭발을 일으킨
‘강남 묻지마 살인 사건’부터
엽기적인 폭행과 감금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부산 데이트 폭력 사건’까지,
딸 키우는 엄마 입장에선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서늘하다.

근래 1년 반 동안 데이트 폭력으로 죽은 여성이 150여 명 된다는 뉴스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 자신부터 딸 단속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뿐만 아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몸에 깔려 죽는 경우처럼 얼마나 황당한 죽음도 많은지. 그래서 딸이 외출하거나 길을 걸을 때, 혹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걸을 때 꼭 이렇게 당부한다.

“앞뒤, 양옆, 하늘까지 다 살펴보고 다니렴. 이상한 사람들이 옆에 기웃거리면 꼭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고. 밤늦게 다닐 때도 꼭 골목보다는 큰길로 다녀야 해. 아참, 위에서 사람이 떨어지지 않는가도 꼭 주의하고!”
“알았어. 정수리 위에도 안경 쓰고 다닐게.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해, 엄마.”

이젠 딸이 어느 정도 스스로의 몸을 지킬 만큼 자라서 예전만큼 염려가 지나치진 않지만, 그래도 늘 걱정이 앞서고 마음 졸이는 게 딸 키우는 엄마의 마음이다. 내가 오죽 걱정을 했으면 주변 사람들이 “서윤이는 지옥에서도 살아남을 애야”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을까.

생각해보면 젊은 여자가, 그것도 딸과 둘이 살다 보니 나부터가 험한 기억을 많이 갖고 있어 유독 딸을 걱정하는 것 같다. 딸을 데리고 택시를 탈 때도 그랬다.

“따님도 아줌마도 예쁘시네.”

내가 티셔츠를 입어서인지 나이가 몇 살이냐, 애 아빠는 뭐하냐고 묻기에 무심코 이혼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더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기사. 자기도 부인과 안 맞아 자주 다투었는데, 부인이 이혼을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외박을 해도 전화 한 통 안 온다면서.

자세한 얘기는 부담스러워 입을 다문 채 우리 아파트 옆 골목에 들어섰는데, 기사가 이상하게도 갈 생각을 않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어떤 모멸감이 쓴물처럼 올라왔다.

여자들은 알 것이다.
이런 더러운 기분을.

고독과 정념에 허덕이는 듯한 눈빛이 순간 두려웠다. 너무 무서워서 택시에서 내린 후 아파트에 바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무거운 짐을 끌고 아이를 업은 채 사람이 다니는 큰 골목을 몇 바퀴 돌았다. 내가 사람들 속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택시도 사라졌다.

어린 날 딸이 아칫거리며 걷거나 재롱부리던 모습이 이토록 생생한데, 어느새 딸은 혼자서도 무엇이든 다 잘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모르는 딸의 시간들이 점점 늘어갈수록 홀가분한 마음만큼 걱정도 커진다.

내가 없는 곳에서 네가 울고 있으면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엄마가 닿을 수 없는 곳에서도 딸이 늘 지금처럼 밝게 웃기를, 세상 모든 어둠이 우리의 딸들을 다 피해가기를 바라며 오늘도 딸의 연락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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