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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5. 2018

09. 우리 엄마들도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당신의 재능이 꿈을 받쳐주지 못할 때>



영화 《20세여 다시 한 번》(중국판 《수상한 그녀》)을 보는 내내 나는 울고 웃었다. 남편은 수시로 내 손을 잡거나 나를 품에 안았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를 보고 뭔가를 떠올렸다.

주인공인 나이 든 시어머니가 현관에서 아들과 손자가 자신을 양로원으로 보낼지 말지를 의논하는 것을 듣는다. 젊어진 시어머니는 사람들이 손녀가 입이 거친 게 자신을 닮아서라고 말하는 걸 듣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녀의 눈에 슬픈 기색이 스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엄마와 시어머니가 떠올랐다. 두 어머니는 각각 나와 남편을 키워주셨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애쓰시지만 우리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계신다. 내가 집을 사기 전까지 엄마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갈지 몰라 막막해하셨다. 내게 부담을 주기도 싫고, 내가 결혼할 때 자기 때문에 짝을 못 찾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셨는지 엄마는 나중에 양로원에 가서 살 거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퇴직금도 있고 다른 노인들이랑 같이 살면 즐거울 것 같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때 나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그 말을 들으니 왠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엄마에게 집을 사드리고 나도 신혼집을 그 맞은편 건물에 얻어 살게 되었다.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라 왔다 갔다 하는 데 5분밖에 안 걸렸다. 매일 우리가 출근하면 엄마는 조용히 우리 집에 왔다가 청소하고 빨래한 뒤 과일과 우유를 사다 놓고 조용히 가셨다.

우리가 좀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엄마는 두 사람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면서 도망치듯 집을 나가셨다. 설사 본인 집에 가서 혼자 뭘 해야 좋을지 모르는 한이 있어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엄마는 시장에서 물건을 싸게 파는 것을 보면 늘 내게 알려주셨다. 그러면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성가시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 돈 아낄 정도로 우리 가난하지 않아. 그런 얘기 좀 하지 마. 안 그래도 할 일 많아 죽겠는데.”

무안해하는 엄마의 눈에 실망감이 어렸다. 신이 나서 반짝이던 눈이 한 사람의 무시로 인해 변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난 늘 그런 식으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임신 기간 빈혈과 입덧으로 고생을 할 때 시부모님이 집에 와서 나를 챙겨주셨다. 시어머니는 남방 사람이고 나는 북방 사람이라 같은 음식을 해도 맛이 아주 달랐다. 시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처음에 먹고 냄새가 너무 역했던 나는 죄송하지만, 음식을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그날 밤 시어머니는 혼자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셨다. 이래 봬도 사시는 동네에서는 요리 솜씨로 유명했던 어머님이셨는데, 며느리는 목구멍으로 넘기지도 못하니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셨던 모양이다.

의사가 소고기를 많이 먹어서 철분을 보충해야 한다고 하자 시어머니는 집에서 수십 시간 동안 조리한 소고기를 시아버지 편으로 우리 집에 보내셨다. 시아버지는 2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오시다 길에서 국물을 많이 쏟으셨다. 시어머니는 속이 상해서 며칠 동안 시아버지에게 잔소리하셨다. 식욕이 없으면 국물이라도 먹으라고 해서 보낸 건데 그렇게 쏟을 줄 알았으면 자기가 갈 걸 그랬다며 아쉬워하셨다.

얼마 전, 시어머니는 내게 아침을 몇 시에 먹느냐고 물어보시면서 밀전병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8시 반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내가 다음 날 8시 20분에 일어나 있는 걸 보시고 시어머니는 무척이나 당황하시면서 금방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셨다. 옆에서 혼자 우유를 데우고 있는데 밀전병을 다 만들고 오신 시어머니가 자기가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1분이면 되는 일이라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오시기 때문에 나는 평소에도 혼자 있을 때 알아서 아침을 챙겨 먹었다. 그런데도 시어머니는 항상 내가 직접 움직이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동안에 있었던 많은 일이 떠올랐다. 우리 주위에서 날마다 일어났지만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소소한 일들 말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아들과 손자를 사랑하지만, 말을 거칠게 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할머니였다. 남편이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당신 시어머니는 저 시어머니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분이야!”

맞는 말이었다. 반면 나는 차가운 며느리였다. 입에 발린 말도 잘 못 했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봐 말을 아끼는 편이었다.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가 좋은 분들이시라는 건 알고 있지만 어떻게 표현을 해야 좋을지 모를 뿐이었다.

우리 집에는 어르신들이 계신다. 우리도 언젠가는 나이가 든다. 하지만 우리가 나중에 나이가 들면 어떤 모습일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내 자식이 어떻게 나를 대할지도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내 자식을 대하듯 며느리를 대할 수 있을까? 내가 나중에 도움이 되지 못하면 자식들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

엄마는 자주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난 내가 아직도 젊다고 생각하지만 눈 떠 보니 어느새 나이가 육십이더라고. 이젠 정말 늙은 것 같아. 봐봐, 바닥만 닦았는데도 이렇게 힘들잖아. 예전에는 안 이랬는데.”

나는 엄마에게 “엄마, 나 대신 택배 좀 받아 줘”, “엄마, 물 좀 갖다줘”, “바나나 사 오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오늘 한 일도 없는데 대체 뭐가 힘들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우리 엄마 나이가 곧 육십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에게도 젊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두 분도 지금의 나처럼 꿈과 이상을 품었던 때가 있었다.

우리 엄마는 젊었을 때 학교에서 알아주는 유명 인사였다. 학생회 간부였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능한 여학생이었다. 우리 시어머니는 마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미인이셨다. 백옥 같은 피부에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현지에서 유명한 재봉사였다. 시어머니에게 청혼하러 온 남자가 수두룩했고, 대부호 집안에서도 옷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실력자였다.

예전에 엄마와 시어머니의 젊었을 적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의 나처럼 젊고 나보다 훨씬 미인들이셨다. 그때 당시에 두 분도 지금 당신들의 모습처럼 나이 든 모습을 상상해봤을지 잘 모르겠다. 만약 사진 속의 그때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나와 남편의 엄마가 되기를 원하실까? 지금처럼 우리를 위해 희생하기를 바라실까?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들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다시는 돌아오지 마. 이 집에 다시 와서 고생하지 말라고.”

그러자 엄마가 대답한다.
“만약 다시 젊어질 수 있다면, 난 또 이렇게 살 거야. 그래야 다시 네 엄마가 될 수 있고 너는 내 아들이 될 테니까.”

이 대사를 듣고 나와 남편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20세여 다시 한 번! 우리 엄마들도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를 위해서 지금 모습처럼 변하신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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