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예쁜 미소 지켜드릴 걸

<시 읽는 엄마>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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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베니_권미강

색동치마에 반짝이 스웨터 입은
엄마의 아침 마무리는 구찌베니였다.
자식들 먹여 살리려 장사한다며
앉은뱅이 거울 앞으로 입 내밀고
구찌베니를 빨갛게 돌리는 엄마

오미자보다 더 붉은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환하게 웃는 엄마는
가게 천장을 울리는 큰 목청으로 흥정하고
노을이 질 때까지 뱉어낸 붉은 구찌베니

저녁 밥상 콩나물이 되고 조기구이가 되고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가 되는 구찌베니
우리들도 입술을 오므렸다 펴며
배부른 웃음을 흘렸다.

유년의 장날은
온통 구찌베니향으로 가득 찼다.




딸 방을 치우려고 들어갔다.
우리 때는 자기 방 정도는 자신이 알아서 치웠는데, 요즘 애들은 정말 엄마가 치워줄 때까지 어지러뜨리기 대회라도 나갈 듯이 방을 안 치우고 산다. 이것이 내가 바빠서 못 치우고 살다 보니 그대로 빼닮았구나, 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맥이 빠지고 슬퍼진다. 그래도 굳세어라 엄마야, 하며 방바닥에 다 마시고 난 생수통부터 치워나갔다. 그러다가 책상 위에 물건 하나를 보고 ‘저게 뭐지?’ 하며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다. 빨간색 인주인가 했는데, 인주 케이스 같은 작고 둥근 플라스틱 통에 빨간 립스틱이 담겨 있었다. 그 뒤로 바닥까지 박박 긁고 남은 ‘로레알 518호’라고 쓰인 립스틱 케이스와 뚜껑이 쓰러져 있었다.

문득 밥솥이 뚫리도록 박박 긁어 누룽지까지 끓여 먹던 어린 날이 기억났다. 그래도 딸이 보통 가격의 품질 좋은 제품을 사서 쓰는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립스틱 살 돈이 없어 찌꺼기까지 긁어모아 예쁜 모습으로 가꾸려 했구나, 내가 부지런히 일해서 립스틱만큼은 떨어지지 않게 사줘야지 하고 마음을 다졌다.

딸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립스틱 바르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뭐가 급해서 벌써 화장이니? 나중에 얼굴 겉늙어서 후회하려고!”
“엄마는 뭘 몰라. 다른 애들은 나보다 2~3년 먼저 하고 다녔어. 예쁘게 보이면 기분 좋잖아.”

여자들이 화장하는 게 ‘자발적 고문’이라던 어떤 작가의 작품이 기억나면서, “예쁘게 보이면 기분 좋잖아”라는 딸의 말에 멈칫했다.

사랑하는 이들의 한마디는 크게 다가온다.
자식의 한마디는 엄마의 가슴을 칠 때가 있다.

‘그래, 그래.
다 예쁘게 보이려고, 기분 좋으려고
립스틱을 바르고 화장을 하는 거겠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몰래 엄마 립스틱을 훔쳐 바르고 누군가 볼까 겁을 냈던 내 청소년 시절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하게 자신이 하고픈 대로 하고 살아라, 마음을 내려놓으니 편안해졌다.

문득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가끔 예쁘고 좋은 옷을 보면
엄마가 지금 살아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저 옷을 사드렸을 텐데, 하는 마음이 일렁인다. 특히 화장품 가게에 가서 고급 화장품을 보거나 라벤더 향기가 나는 향수를 뿌려보며 엄마의 향기에 젖어보곤 한다. 약사였던 엄마는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할 만큼 늘 손님치레를 하느라 바빴다. 슈퍼우먼을 강요당한, 그 시절 어머니들의 대표적인 삶이었다.

엄마의 화장품 케이스를 살피면, 오래되어 짓무른 냄새가 나는 립스틱이 서너 개는 되었다. 그저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에 늘 시간이 없으셨다. 내 화장품 사기도 벅차서 엄마 화장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던 그 시절을 좀 줄이고, 진작 엄마에게 예쁘고 좋은 립스틱을 사드렸다면……. 그렇게 가슴이 아파온다.

권미강 시인의 시 「구찌베니」를 보면 억척스럽게 일하면서 번 돈으로 자식들에게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주는 어머니가 나온다.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장날에 물건을 팔러 나가던 엄마의 빨간 구찌베니가 추억의 이미지로 강렬하게 남았을 것이다. 고단함만큼이나 ‘엄마’라는 존재의 숭고함을 떠올려본다.

그저 자식들은 자아를 찾아가기에 바빠 엄마의 꿈이나 삶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만다. 나 또한 돈 벌고 살림하는 엄마로만 알고 살았지, 엄마가 얼마나 예쁜 여자였는지를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집을 나와 혼자 살면서, 딸을 낳고 키우면서 엄마의 빈자리와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곤 했다. 30대 중후반 시절, 최소 생계비로 목숨을 연명하고 치열하게 청춘을 바쳐 시를 쓰던 내 삶은 시집 『세기말 블루스』로 바뀌었고, 동 세대 젊은 친구들에게 공감을 받으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렇게 내 이름 석 자가 대중에게 알려지고 일거리도 이어져 식구들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생겼다.

하지만 그 여력도 잠시였다. 뭐든 잠시가 아닐까. 결혼과 이혼, 이혼 후 소송으로 바뀌고 묻혀가던 내 삶,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생활. 함께 살 때는 미처 몰랐던 엄마의 여백이 잉크 번지듯 나의 일상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엄마의 삶을 돌아보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잠시일 뿐,
또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에 파묻히면
나 자신마저 편지 봉투처럼 얇아져갔다.

자식을 키우니 엄마를 더 생각하고 더 이해하게 된다.

‘엄마,
보고 싶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이라는 잉크가
내 몸을 파랗게 물들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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