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세계적인 작가의 서재에는 몇 권의 책이 꽂혀있을

<네 번째 책상 서랍 속의 타자기와 회전목마에 관하여>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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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천국을 도서관의 형태로 상상할 정도로 책을 열렬히 사랑했던 작가였다.(내가 아는 누군가는 천국을 세상 모든 종류의 빵과 케이크의 향기로 가득한 아름다운 빵집을 상상했다.) 또 경이로울 정도로 박학다식한 작가로도 유명했다. 나는 그를 상상할 때마다 어깨 위에 머리 대신 큰 도서관 하나를 얹고 사는 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떠올리곤 했었다.

나는 보르헤스의 책과 그의 생애를 접하면서 그가 살던 집과 서재를 상상하기를, 웬만한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청나게 책이 많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적어도 수만 권의 책이 커다란 서재에 빼곡하게 늘어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을 읽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자 비평가, 번역자, 편집자이다. 그가 유명해진 건 보르헤스와 가졌던 아주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어릴 적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했다. 그러던 중 당시 시력을 잃어가고 있던 보르헤스가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종의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그때부터 망구엘은 4년간 그 위대한 작가 보르헤스의 집에 무시로 드나들면서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짧지만 날카로운 촌평을 하는 보르헤스의 말을 들었으며, 보르헤스를 통해 깊이 책과 문학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보르헤스와 만남은 알베르토 망구엘이라는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몇 년 전 망구엘이 쓴 《밤의 도서관》 한국어판이 나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에게 직접 책을 읽어준 기적 같은 행운을 거머쥐었던 사람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얼른 사서 읽었다. 마치 그의 문장에서 보르헤스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망구엘은 그 책에서 보르헤스의 집에 있는 작은 몇 개의 책장들과 거기에 꽂혀 있는 책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호박처럼 크게 떴고, 문장들을 원샷으로 집어삼킬 듯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가 전해준 이야기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세상에 보르헤스의 집에 책이 고작 수백 권밖에 없었단 말이야?”

tja.jpg?type=w1200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나 같은 독자의 충격을 실컷 즐기려는 듯, 망구엘은 또 다른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르헤스가 50대 중반이었을 때, 마리오 바르가스라는 젊은 작가가 그를 찾아온다. 망구엘의 책에 나온 말을 인용하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역시 나처럼 보르헤스의 서가에 관해 “책들로 가득한 공간, 책들로 넘치는 서가, 발 디딜 틈 없이 현관부터 막고 있을 인쇄물 더미, 요컨대 잉크와 종이의 정글을 기대”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그 젊은 페루의 작가가 발견한 것은 고작 몇 개의 소박한 책장밖에 없는 아담한 아파트였을 뿐이다. 적잖이 실망한 그는 보르헤스에게 책으로 넘치는 화려한 집에서 살지 않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그런 그에게 보르헤스는 오히려 화를 내며 “리마에서는 작가들이 그렇게 살지 모르지만, 여기 부에노스아이레스 작가들은 요란스럽게 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네!” 하고 따끔하게 일갈했다.

실제로 보르헤스 집에서 서재라고 할 만한 것은 거실에 있는 세 개의 책장, 그리고 보르헤스의 침실에 있는 두 개의 책장, 모두 다섯 개의 책장이 전부였다 한다. 거실에는 그가 사랑하던 몇 종류의 백과사전들과 그가 좋아하던 제임스 조이스와 헨리 제임스, 키플링 등의 작가들 책과 19세기 아르헨티나 작가들의 책이 있었고, 일부는 어릴 때부터 즐겨 읽던 손때 묻은 책들이었다 한다. 침실에 있는 작은 책장 두 곳에는 영문학 전집이나 그가 연구하던 고대 영어에 관한 연구서와 사전들, 시집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의 서가에 마르셀 프루스트, 라신, 괴테의 《파우스트》, 밀턴, 그리스 비극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망구엘의 말처럼 보르헤스가 그런 고전들을 읽지 않았을 리는 없다. 다만 소장하고 있지 않을 뿐. 특이하게도 보르헤스는 자기 책들도 절대 소장하지 않았단다. 전 세계에서 번역된 그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수십 개국 언어로 번역된 판본들도 있을 텐데 말이다. 집에 찾아온 손님들이 보르헤스 책의 초판본을 보고 싶어 할 때마다, 보르헤스는 자부심인지 겸손인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완전히 잊어도 좋을 이름이 인쇄된 책은 한 권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 맙소사! 망구엘의 책을 읽으며 계산해보니, 보르헤스가 자신의 집에 소장하고 있는 책은 결코 1천 권도 안 되는 게 확실했다. 어릴 때부터 책과 사랑에 빠졌고 이 세상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은 보르헤스의 집에 책이 고작 그 정도밖에 없다니!

보르헤스의 서재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개인 서재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몽테뉴의 원형 탑 서재에 책이 고작 1천 권 정도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서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지성과 소장한 책의 권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하게 되었다. 많은 책을 소장하려고 애쓰는 것도 하나의 지적 허영심이나 어리석은 과시욕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도대체 내가 평생을 읽어도 다 읽지도 못할 수만 권의 장서를 무엇 때문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가? 이는 책을 책이 아니라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이요, 장서가라는 거창한 이름에 대한 허영심의 발로일 뿐이지 않은가? 나의 처지와 분수, 운명을 생각해보건대 나는 자유와 인식과 창조를 위해 살기를 원하지, 거대한 책 피라미드를 쌓는데 일생을 헌납할 이유는 조금도 없지 않은가? 쇼펜하우어가 독서에 관해 내뱉은 한 문장은 실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책을 통해 경험한 타인의 사상은 먹다 남은 찌꺼기, 즉 타인이 벗어던진 헌 옷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 속에 불타오르고 있는 이 영원한 봄날은 스스로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그에 비해 타인의 책을 통해 습득한 사상은 묘비에 글을 새기는 것에 불과하다”

또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 페트라르카는 독서란 것이 책을 서가가 아닌 머릿속에 챙겨 넣는 작업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던가? 이후 나는 책과 멋진 서재에 대한 허영심을 완전히 버렸다. 지금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서재는 널찍한 나무 책상 하나와 그 책상 주변을 빙 둘러싸는 약 1천여 권 정도의 장서를 소장할 수 있는 방으로 이루어진 서재다. 그리고 기왕이면 제법 큰 도서관에서 가까운 집. 도서관이 가까이 있으니 굳이 수만 권의 책을 집안에 들여놓지 않아도 되고, 산보 삼아 천천히 거리를 걸으며 사색을 즐길 수도 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이요, 서재에는 동서 고전을 포함하여 1천여 권 정도면 내가 늘 곁에 두고 평생에 걸쳐 읽고 또 읽을 책의 양으론 충분하니 가히 만족할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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