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그래, 내가 알아줄게 (마지막 회)

<이제는 나와 화해하고 싶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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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공에 치열하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 생각의 뿌리는 생각보다 너무 깊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사람을 만나온 모든 경험의 밑바닥에는 용암처럼 뜨거운 열망이 있었다. 그 열망은 순간접착제보다 백만 배나 강했다. 내 삶의 모든 것을 흔들어놓을 만큼 강력한 접착력이었다.

그 생각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순수한 열정이라고 믿었던 신념 속에 집착이라는 아나콘다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에 대한 욕망, 욕구, 탐욕이 이무기 같은 몰골을 하고 내 의식의 강바닥에서 꿈틀거렸다.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만 했다. 내가 명상을 통해 얻은 가장 귀한 보물은 모든 삶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용기였다. 나는 부끄럽고 창피한 나의 치부를 마주하기로 했다. 물론 두렵고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내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명상을 해온 저력이 빛을 냈다. 덕분에 부족하고 부끄러운 나의 모습을 피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아이 하나가 보였다. 수줍음이 많아서 말도 잘 못하는 못난이였다. 선생님께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해서 두 번이나 교실에서 오줌을 쌌고, 지지리 가난해서 수업 준비물도 제대로 챙겨갈 수가 없었다. 공부를 잘했던 것도 아니었다. 주근깨가 많은 그 아이는 교실 뒤쪽에 놓여 있는 빨간 플라스틱 컵처럼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나는 내 마음속 어두컴컴한 골목 한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 아이를 봤다. 의기소침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아주 보잘것없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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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한 나의 집착은 본능적이었다. 징글징글했던 가난과 비둘기 깃털만큼도 존재감이 없던 그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보다 뭐라도 잘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을 아주 강하게 움켜쥐었다. 성공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굳게 믿었다. 그 믿음만큼 집착이 자랐다. 하늘을 뚫고 올라간 잭의 콩나무처럼. 그 집착이 결국 모든 문제의 화근이었다. 돈과의 전쟁, 사람들과의 갈등, 건강의 문제까지 모든 갈등과 혼란의 끝에는 그 마음 하나가 있었다. 나 스스로 만든 생각의 감옥이었다.

이제 그만 그 감옥에서 나와야 했다. 드디어 화해해야 할 진짜 주인공을 만난 것이다. 돈도 사람도 건강도 일도 결국 그를 만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나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살고 있던 왜소한 자아는 때로는 아이, 때로는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함께했지만 내가 철저하게 외면해왔던 사람, 나는 나의 또 다른 모습 아니 가장 ‘진짜의 나’를 만나야 했다. 내 삶을 완전히 흔들어놓았던 대부분의 문제들이 기적처럼 해결되었지만 그다음이 진짜 본선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온전히 나다운 인생을 살기 위한 마지막 관문임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일단 여러 번 심호흡을 했다. 내가 나를 만난다는 것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일이다. 낯설고 민망하고 부끄럽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더욱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내 모습이나 인정하기 싫은 실패를 마주해야 할 때는 더 두렵고 화가 난다. 생각하기도 싫은 아픔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픈데 그 아픈 상처를 들여다봐야 하니 더 괴롭고 힘겨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만나야 했다. 그래야 내가 자유로워지고, 그래야 나답게 살 수 있으니까.

나는 여러 번 긴 호흡을 반복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나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성공에 왜 그렇게 집착했어?”
“…… 나는 못난 아이였으니까, 성공을 해야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음, 인정받고 싶었구나. 인정받으면 마음이 어떨까?”
“내가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겠지…….”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를 찾으면 마음이 어떨까?”
“나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느낄 거야. 그 전에는 별로 그런 느낌을 못 받았거든.”

그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꾸역꾸역 밀려왔다. 한의 덩어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각혈하는 결핵환자처럼 피를 토했다.

“그랬구나, 그랬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 마음 몰라줘서 정말 미안해…….”
나는 진심으로 나 자신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그렇게 외면해왔던 그 아이를 와락 끌어안아주었다. 어둠 속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던 주눅 든 그 아이를 뜨겁게 감싸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정말 펑펑 울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듯 하염없이 눈물의 강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는 그 마음 알았어. 정말 진심으로 알았어. 내가 알아줄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몰라줘도 내가 그 마음 알아줄게.”

나는 나를 두 팔로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그날의 명상은 지금까지 했던 명상들보다 수만 배나 더 강렬했다. 오랜 시간 가마솥에서 달인 인진쑥처럼 아주 쓰고 진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진한 감정의 온탕에 나의 온 영혼과 몸을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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