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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3. 2018

06. 창의적 본능에 비전을 결합하라.

<천재들의 생각 수업>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비전을 가지고 열정을 갖는 것에 관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래스터 브라운, 페트릭 누넌, 로저 페인. 지구에 대한 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별개로, 이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는 것은 장대한 비전에 대한 헌신이다. 그들이 청사에서 근무하는 간부들보다 일에 더 열정적이어서 그럴까? 그들이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원보다 비슷한 실험에 더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어서 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들은 마음의 소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적 균형과 마음의 평정을 희생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열정에 대한 평가는 정도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열정의 ‘외부적’ 한계를 조사하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이 만들어 낸 일련의 자료들이 있다. 이를 전문적으로 말하면 ‘창의적 정신에 관한 정신병리학’이다. 이러한 연구 중에서 K.R. 이셀러 박사의 발견(잡지<아메리칸 이마고(American Imago)>에 실림)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즉, 우리 주변에서 실재하고 볼 수 있는 현실보다는 더 높은 사물의 체계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상주의자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 다음에는 뭔가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세상을 완전히 거부해야만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분명한 시야를 가진 현실주의자이자 감상적인 촉촉 한 눈을 가진 이상주의자여야 한다. 
  
이셀러 박사의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면, 노력의 결실은 이상주의 자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실재를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자, 어떤 면에서는 미약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닌 불멸하면서도 매우 신성하고 흠잡을 수 없이 완벽한 창조자 같은, 인간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결과물인 것이다. 예를 들어, 세익스피어가 쓴 희곡을 누가 다시 쓸 생각을 하겠는가? 누가 감히 피카소의 <게르니카>나 비발디의 <사계>에 변화를 줄 수 있겠는가? 최근 테러 공격으로 희생된 희생자들에게 애도하는 것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상에 누가 사나운 공격을 퍼붓는다면 이걸 더 슬프게 여기지 않을까? 이것이 단순히 위대한 예술은 대체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의 목숨은 하찮기 때문일까? 

이셀러 박사는 그런 이유 이상이라고 얘기한다. 그가 한 얘기에 따르면, 이런 작품들은 그 자체로 불가해한 현실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초월하는 특정한 힘을 갖고 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창조자 자신이 경험했던 강렬함과 아주 비슷하게 창의적 비전의 강렬함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창의적 천재에게 있어서 작업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실재적이고, 굉장히 강력한 존재라는 것을 나타낸다”고 그는 주장한다. 괴테는 미뇽(괴테의 작품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나오는 인물)이 죽었을 때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알려져 있다. 루소(프랑스 후기 인상주의 화가)는 자신이 그린 사나운 동물과 빽빽한 정글이 너무 무서워서 창문으로 달려가 숨을 쉬고 와야만 했다. 수없이 많은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고 말하는 것 같다고 수도 없이 우리에게 주장해 왔다. 
  
창조자와 그걸 보는 대중을 압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꿈에 대한 열정이다. 그러나 그 작업의 강도가 그걸 마주하는 우리에게는 기쁨을 줄 수 있지만, 그 강렬함을 감당하기 힘든 작가에게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창조자는 종종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아주 많이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셀러 박사에 따르면 자신이 경험하는 공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과 정신 분열증 환자가 느끼는 압박감이 비슷하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완성한 작품은 당연하게도 자신의 창의적 비전에 못 미친다. 그로 인해 창조자는 희망과 절망, 그리고 의기양양함과 엄청난 실망 사이를 왔다갔다 하게 되고, 이는 롤러코스터처럼 창조자를 결국 거꾸러뜨린다. 정신 분야의 또 다른 연구자인 베라 존 스테이너(Vera John-Steiner)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작품을 떠오르게 한 바로 그생각 때문에 많은 구경꾼들이 신경과민이라는 꼬리표를 창조자에게 붙이는 정도까지 되고, 이로 인해 창조자는 좌절하게 된다. 이런 것이 열정이라는 물이 밀려들어와 모든 것을 쓸어버릴 때, 이상주의자가 치러야 하는 몫이다. 그러나 자신의 열정을 통제하는 연습을 통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뀐다. 
  
창의적 본능에 비전을 집어넣는 것이야말로 막연한 꿈에 상상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그리고 더 훌륭한 선을 추구하도록 하는 꿈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데 있어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혁신을 만들 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경향이 비전을 가진 창조자들에게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개인적인 세계에 자신을 한정시킨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여러분이 놓친 것을 얻기 위해 걱정하느라 자신의 창의력을 제한하게 된다.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억지로 좀 더 훌륭한 선을 추구하려는 그 생각에서 빠져나온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훨씬 자유로워질 것이다. 
  
이것은 래스터 브라운, 패트릭 누넌, 로저 페인이 잘 이해하고 있는 원칙이다. 나는 그 많은 수상자 중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으로 세 사람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보호자로서 나는 그들이 하는 일에 감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맥아더상 수상자를 구성하는 수십 명의 공상가 중 단 세 명일 뿐이다. 
  
예를 들어, 내가 인터뷰한 맥아더상 수상자 중 다수가 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것은 아마도 정치학자에게서 들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시인이라면 어떨까? 큐레이터라면? 할렘가 선생님이라면? 많은 수상자들 또한 어마어마하게 큰 꿈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브레드 리소우서는 단순히 훌륭한 시집 정도를 쓰고 싶지 않아 했고, 시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싶어 했다. 조직 활동가 앤디 맥과이어는 그의 관심을 금연에서부터 전쟁 반대로 확대하는 데 있어서 전혀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 두 명의 연극 감독인 피터 셀라스와 앨런 스튜어트는 예술과 문화 사이의 관계를 알기 위해 전세계를 종횡무진했다. 법률가이자 추상화가, 작사가인 조안 에이브럼슨은 에이즈를 치료하는 것에서부터 창의력을 강화하는 것과 관련된 많은 기관을 설립했다. 목공예가 샘 말로프는 미국을 위한 목공예 전통을 보존하려는 바람으로 그의 작업 과정을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공개했다. 이러한 예는 끝도 없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고, 아이디어를 표출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칭찬이나 보상, 또는 영광을 받으려는 바람이 아니라 바로 비전이었다. 



그렇지만 당신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다른 사람을 잘 설득할 수 있는 지와 상관없이 당신의 개인적 당위성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고 당신의 떠들썩한 꿈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 한번은 젊은 패트릭 누넌이 존 D. 맥아더를 만나기 위해 플로리다로 여행을 했다. 맥아더는 괴짜 백만장자로 미국의 주하나 정도 크기의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누넌에게는 일종의 순례 여행으로 마치 낙오자, 개그맨, 사채업자, 행상꾼, 사기꾼, 이사회 회장, 유력한 대선후보, 정부관료, 상원의원, 하원의원의 지나간 흔적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늘 그렇듯이, 누넌의 걱정은 지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특히 누넌은 맥아더의 플로리다 땅의 일부를 야생생물 보호소로 보존하고 싶어 했다. 
  
이 만남은 맥아더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콜로네이즈 호텔에 있는 커피숍에서 이루어졌다. 패트릭 누넌은 눌린 정장에 산뜻한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맥아더는 지저분한 티셔츠를 입고 면도도 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하루에 스무잔씩 마시는 커피 습관으로 생긴 흔적 과 줄담배로 인한 담뱃재로 지저분해 보였다. 

누넌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맥아더 선생님… 음, 공원 부지를 보존하기 위해… 중요한 습지를… 국가적 유산으로… 생태계를 위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백만장자인 맥아더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젊은이,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뭔가를 그냥 기부해 본 적이 없다네. 그리고 지금은 그걸 시작할 때가 아니네. 이것 말고 또 다른 사항이 있나?” 
“아니요, 선생님.” 누넌이 대답했다. 
맥아더가 말했다. “그렇다면 나가는 길에 커피 값이나 내고 가게나.” 
오늘날까지 이 맥아더상을 만든 사람과 직접 얼굴을 맞댄 기쁨을 누린 유일한 수상자가 패트릭 누넌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누넌이 지키고 싶어 했던 바로 그 땅이 기부되어, 1989년에 존 D. 맥아더 비치 스테이트 파크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일반인들에게 제공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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