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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1. 2018

06. 남에게 상처를 잘 주는 사람

<우리가 만날 때마다 무심코 던지는 말들>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때때로 술자리를 갖곤 한다. 그 술자리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계 평화나 남북문제를 두고 다투는 것도 아니다. 술이 깨고 나면 가치도 없는 대화에 목숨을 건 것이 후회스럽기 그지없다. 술에 취해서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상대에게 커다란 응어리로 남는 것이다. 술이 깬 다음날 사과하려고 해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아가 ‘전날 무슨 말을했지?’ 생각이 나지 않을 경우도 있다. 그러한 싸움은 상대가 아니라 ‘나’에게서 비롯된 일이다.

다니엘 슈라이버는 본인의 저서『 어느 애주가의 고백』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과거에 누군가와 다퉜을 때 상처를 준 사람 역시 상대가 아닌 ‘나’였다. 술로 인해 저지른 일을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얻은 놀라운 진실이다. 싸움과 상처는 대개 술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개념 수준으로 내뱉은 말들 때문이었다.

우리는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는다. 그 상처는 염증을 일으키고 심할 경우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조심을 해야 한다. 최근 어느 모임에서 말실수로 싸움이 벌어진 사례다.

“요즘의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바로 이혼한대요.”
“왜? 그렇게 참을성이 없을까? 나라면 여러 번 이혼했겠네. 참고 살아야지.”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독선이 싫기 때문이지요.”

그렇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 내용이다.

“언니가 그럴 것 같아요.”

딸만 둘을 가진 한 아줌마가 앞자리의 선배 부인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왜? 나야?”
“언니는 딸도 없고, 아들만 하나고, 남편과도 사이가 좋지 않으니까요. 성격적으로도 며느리한데 바로 퇴짜 맞을 것 같아요.”
“뭐라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내 속으로 들어와 봤어?”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이 자리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져서 20년 이상 이어 온 모임이 박살 나기 직전이란다. 그래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상대에게 커다란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실수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자신이 느낀 대로 솔직하게 말했다고 하지만, 이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또 하나의 사례이다. 비교적 젊은 날에 명예퇴직을 한 부부가 동해안으로 나들이를 갔다. 오랜만에 가져 본 둘만의 시간에 행복이 넘쳤다.

“역시 동해 바다가 물이 맑고 시원하군.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인 것 같아.”
“당분간 모든 것을 잊고 푹 쉬세요. 그동안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생했잖아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달이 났다.

“차가 너무 막히니까 이쪽 길로 가죠?”

부인이 말하자 남편 왈.

“아니야. 지금은 막혀 보이지만 바로 풀려.”
“아니라니까.”
“내 말 좀 들어. 운전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차 세워요. 나 내릴 거야.”
“그래. 내려.”

부인은 결국 남편의 차에서 내려서 기차를 탔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고독한 여행길이 되고 말았다. 결론은 더 재미있다. 부부가 거의 같은 시각에 집에 도착해서 문을 쾅 닫고 각기 다른 방에서 잠을 잤단다.

가까운 부부 사이일지라도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름으로 인해서 무심코 내뱉은 말이 언어의 폭력으로 비춰질 수 있다.



김치찌개 때문에 이혼한 부부 이야기도 참고할 만하다. 유학 중에 만나 미국에서 살았던 두 사람의 실제 이야기다.

“김치찌개가 이렇게 짜지?”
“글쎄, 나는 괜찮은데?”
“짜다니까 그래.”
“그럼 자기가 끓여 먹든지.”

결국 남편이 따로 라면을 끓여 먹었단다. 그 후로도 사소한 부부 싸움이 수없이 반복되었고, 서로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서 각자의 이마에 주름살만 늘어났다. 결국 부부는 결혼 3년 만에 이혼 열차를 타고서 각자의 집으로 갔다. 딸은 부인이 데리고 갔다. 부녀의 상봉은 일 년에 한 번꼴. 만나면서 울고, 헤어지면서 우는 삶이 계속되고 있다. 심봉사와 심청의 만남에 버금가는 애절한 모습으로.

이러한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가정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한 발자국씩 서로 양보하면서.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돌출 발언이 자주 튀어나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은 자신이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는 통계도 있다. 옛날에 시어머니로부터 시집살이를 많이 당해 본 며느리가 자기의 며느리를 더 구박한다고 했다. 그와 같은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말로써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나 남의 흉을 잘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악한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자기만의 특수한 DNA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격의 소유자는 이 사람 저 사람의 흉을 보면서 자기만족을 한다. 자기 자신은 흉이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또한 사람들 중에는 남을 흉보는 것과 이리저리 말을 옮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단점을 흉보지만, 자신의 단점은 모르고 있다. 남을 헐뜯고 군림하려는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일까? 한양여대 김수영 교수의『 행복어 사전』에 답이 있었다. ‘에우 프라테인(eu prattein).’ 고대 그리스어 탁월함의 의미인 ‘에우eu’와 행위나 행복을 뜻하는 ‘프라테인(prattein)’의 합성어다. 즉, ‘잘하는 것’과 ‘잘사는 것’이란다. 김 교수는 단순히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잘 해내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우리 생활 속에서 늘 만날 수 있는 일이다.

당신의 출근길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분들에게, 당신이 탄 지하철과 버스를 안전하게 운전하는 분들에게 아낌없이 잘했다는 말을 해 주세요. 물론 당신도 누군가에 잘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사시길 그리고 이를 위해 잘하시길 플라톤처럼 기원해 봅니다. 에우 프라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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