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불황은 없다>
수많은 직원들과 한 공간 안에서 숨을 쉬며 몇 년씩 함께 일하다 보니 세상에는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성실하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은 잘하지만 기본적인 소양이 모자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것이 근태(勤怠) 문제였다.
매일 함께 일을 하면서도 누구는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하는 직원들이 있는가 하면 꼭 지각을 하는 직원들도 있다. 지각하는 사람들은 그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창조적인 핑계들을 잘도 만들어 낸다. 교통 체증은 물론이고 자동차 고장이나 사고 등을 핑계 대는 것은 물론이고 사돈에 팔촌까지 수시로 사망시키는 일도 다반사였다. 단군 이래 자동차가 생긴 후부터 출퇴근 시간에 차가 안 막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매일 차가 막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감안해서 조금만 일찍 서두른다면 지각하는 일을 없을 텐데도 늘 비슷한 핑곗거리를 만들어 내곤 했다.
한 직원 역시 습관적으로 지각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더욱 황당한 것은 어쩌다 자신이 먼저 출근하고 다른 직원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오히려 더 크게 화를 내는 아주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아니, 회사가 장난이야? 자꾸 그런 식으로 늦게 오면 어떡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것처럼 오히려 큰소리를 땅땅 치니 곁에서 보기에 영 밉살맞게 보였다. 그런데 이런 류의 사람은 본인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해석도 잘하고 타협도 잘한다. 물론 본인한테만 유리한 쪽으로 말이다. 그럴 때면 나 역시 사람인지라 화가 나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거짓말을 할 때면 함께 일해야 하나 갈등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면서 기본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임스 손튼의 ‘자연은 나의 영혼입니다’라는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시간이나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 둘 다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음미하는 여행이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그리고 오늘은 선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이미 흘러가 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을 위해서는 바로 기본을 잘 지키고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나는 직원들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다스렸다. 백화점의 경우 늦게 끝나는 일이 반복되는데다 휴일도 턱없이 부족하여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거기다 늘 매장에 콕 박혀 있어야 하다 보니 개인 시간을 사용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다 보니 더욱 스트레스가 쌓이기 쉬운 직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절실한 마음으로 맡은 바 최선을 다하긴 했으나 나 역시 때때로 체력적으로 힘들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고단하여 한 시간 일찍 출근하자는 나와의 약속도 어기고 싶은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타인 역시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밥 먹듯이 지각을 반복한다면 그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해 주어야겠지만 한 시간 일찍 출근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직원의 태도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직원에 대한 칭찬과 보상은 적절하게 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일찍 출근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직원에게 눈치를 주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직원들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모범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5분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늘 한 시간 일찍 출근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에게 따끔한 질책을 하기에 부끄럽지 않았다. 또한 매장 오픈 시간에 임박하여 출근하게 되면 서두르다가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 수 있고, 티타임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오늘 하루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어 자발적으로 조금 일찍 출근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근태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것 중에 하나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예외적인 경우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장 직원들이 타 매장에 비해 한 시간 정도 일찍 출근하게 되었다. 그렇게 잘 따라와 주니 나 역시 책임감이 생겨 직원들에게 하나라도 더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독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돌아가면서 정한 책들을 기간 내에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했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목표를 주고 인센티브라는 당근을 걸어서 일하는 것이 재미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도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그렇게 직원들과 소통하며 생활하니 근태 문제는 더 이상 고민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운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분위기 좋은 매장에 대한 소문이 브랜드 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어떤 브랜드라도 시즌 중 한 달에 한 번은 영업 회의를 진행한다. 모두 그렇진 않겠지만 간혹 자신의 경력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점장들은 그 자리에서 호되게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대부분 점장이라는 이유로 늦게 출근하고 직원들과 소통도 없이 시간만 때우는 점장들이 그 대상이었다. 영업회의에 참석한 이사님은 회의에서 꼭 내 이야기를 화제로 삼곤 했다.
“남자 열 놈보다 전현미 소장 한 명이 더 낫습니다. 제발 기본 좀 지키세요!”
매니저의 근무 태도가 좋으면 직원들의 근무 태도 역시 말할 것 없다. 그렇다면 매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서로의 에너지가 좋으니 서로 눈빛만 봐도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고, 서로 서포트해 주는 것을 잊지 않으니 매장 분위기 역시 좋을 수밖에 없다. 만약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그날 그날의 실적에 따라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은 살벌한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점장들처럼 말이다.
백화점의 고객층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단 몇 분 만에 남들 연봉을 상회하는 금액을 써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한 달 꼬박 일해도 기본급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이라도 아끼고 아낀 돈으로 좋은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오는 사람도 있다. 개중엔 돈이 많아 보이는 고객에게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지극정성으로 서비스하는 반면, 행색이 초라하다는 이유로 고객에게 함부로 대하는 판매직원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고객의 돈이 많건 적건, 좋은 직업을 갖고 있건 말건 그들을 한 사람의 객체로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사람의 성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오롯이 고객이라는 존재로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돈이 많다고 더 품격 있는 서비스를 한 것도, 돈이 없어 보인다고 해서 고객을 문전박대하거나 불친절하게 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떤 고객이 오든 간에 밝은 인사와 친절한 미소를 건네는 건 똑같았다.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 그것이 내가 고객에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다만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늘 마케팅과 자기계발 서적을 챙겨 읽는 한편 세일즈에 관한 여러 가지 학습을 했다. 가장 기본적인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지속적으로 자기계발에 힘썼고, 독서를 통해 내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을 계속하다 보니 고객의 눈을 현혹시킬 만한 무언가를 할 것이 아니라, 그럴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직원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것들을 앞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을 지키며 성실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만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기본을 지키기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맡은 소임을 충실하게 해나가는 사람, 혹은 기업을 보면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일명 연예인 샴푸라 불리는 천연 샴푸를 생산하는 에포코리아는 단순히 물건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연 그대로’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곳의 제품은 30년간 리뉴얼을 하지 않은 곳으로도 유명한데, 30년 앞을 내다보고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리뉴얼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고객에게 최상의 제품을 선사하기 위해 신중하게 제품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겉포장을 요란하게 바꾸는 것보다 내실 있고 진정성 있게 고객에게 다가가는 것이 최고라는 걸 진즉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가족에게 주어도 부끄럽지 않은 상품을 만들었다는 건 결국 오로지 고객만을 생각하며 기본에 충실했다는 것처럼 느껴져 그 말이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판매 역시 마찬가지다. 화려한 말발로 물건을 포장하여 판매하는 것보다, 나의 진심을 팔아 고객에게 진정한 감동을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판매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