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희대의 진위논란, <미인도>의 진실(마지막 회)

<찬란한 고독, 한의 미학>

by 더굿북


1.jpg?type=w120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미인도>, 1977, 종이에 채색, 29x26cm


문제의 본질과 해법

최근에 나는 <미인도> 감정에 참여했던 한 분으로부터 “<미인도>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인데 어떻게 위작일 수 있느냐”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국립기관을 그만큼 신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에 상응하는 제도적인 장치와 원칙을 가지고 있을까?

<미인도> 사건과 관련해서 국립현대미술관이 범한 첫 번째 실수는 1980년 김재규의 환수품을 인수할 때 감정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현대미술관 측은 작품을 인수할 때 오광수 전문위원이 감정을 했다고 줄곧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미술관에 가져갈 수 있는 작품을 고르라고 해서 여러 점을 가져온 것이지 감정을 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해야지, 왜 자꾸 끌고 들어가려고 하느냐”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이러한 갈등은 우리 미술계에 아직 감정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감정이란 기본적으로 감정가의 사인이 담긴 증서에 의해 효력이 발휘된다. 그래야 감정가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신중을 기할 수 있고, 자신의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된다. 정식 감정서가 없이 의견을 묻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술관에서 작가를 직접 통하지 않고 구입하거나 기증받는 경우는 반드시 전문가의 감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기관의 공신력이 위작을 세탁하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인도>의 경우는 천경자가 생존 작가였기 때문에 미술관에서 소장품으로 등록하기 전에 작가의 확인만 받았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그때 천경자가 위작이라고 했다면, 그래도 현대미술관이 진품이라고 주장했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의 두 번째 실수는 1991년 <미인도> 인쇄물을 만들 때 작가의 허락을 맡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저작권법이 느슨했다 하더라도 작가의 허락도 없이 900장의 인쇄물을 만들어 판매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더구나 천경자의 대표작도 아니고 문제가 많은 작품을 2-3배 확대하여 판매한 것은 무리가 있었다. 진위여부를 떠나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점에 대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했다.

화랑협회도 “생존 작가이고 정신 상태가 정상이라면 작가 의견에 감정의 우선순위를 둔다”라는 내부 규정을 정당한 이유 없이 어겼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화랑협회의 감정은 실증적 조사가 아니라 평소 관례대로 안목 감정에 의한 것이었다. 이들은 “작가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여 위작임이 밝혀질 경우 그 결과를 전면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작가를 존중했다면 작가의 주장을 먼저 받아들이고, 진품이라는 실증적 증거가 드러나면 추후 수정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였다. 작가가 위작이라고 하는데 안목 감정으로 진위를 판정한 것 자체가 작가를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같은 시기 다른 작품과 실물을 비교하는 작업조차 거치지 않고 불과 열흘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3차 감정까지 마치면서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시간은 지났지만 원칙을 지킨다면 <미인도> 사건의 해법은 간단하다. 이미 작가가 위작이라고 했기 때문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품임을 주장하려면, 지금이라도 공식적인 발표를 통해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이 은밀하게 흘린 소문과 보고서는 진실과 다른 왜곡된 것이었다. 또한 실증적인 증거는 없지만, 안목상 진품으로 본다면 학술적인 대응을 하면 된다.

그럴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한 작가를 정신이상자로 몰고 간 것에 대한 사과와 함께 위작임을 시인하고 <미인도>를 폐기처분해야 한다. 이것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상식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5년이 지나도록 <미인도>에 대한 학술 논문 한 편 없이 왜곡된 소문과 권위적 주장으로 일관해왔다.

물론 왜곡된 소문들 때문에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천경자 회고전을 치르고 천경자 평전을 쓴 연구자로서 나의 기준에서 보면 <미인도>는 위작이다. 물론 안목 감정이 절대적일 수는 없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연구하고 파악한 천경자의 특이성에 근거한 것이다. 만약 다른 연구자가 천경자 작품의 특이성을 다르게 설정하고 그에 따라 진품임을 주장한다면, 또 그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것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

그러한 논의는 천경자 연구뿐만 아니라 학술적 토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왜곡된 소문 대신 건전한 학술적 논의들이 활발해지고 천경자의 작품세계를 심도 있게 이해하고 보급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그것만이 죽어서도 잊지 못할 <미인도> 사건에 대한 천경자의 한을 승화시켜주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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