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떨어져 있을 때 결혼은 그 효과를 발휘한다.

<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by 더굿북


“샐린저?”

유리창 너머로 구름 낀 하늘과 마당이 보이는, 파란 타일 벽 카페에서 엄마는 이상하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그야 읽었지. 하지만 젊었을 때인데, 다 잊어버렸어.”

테이블에는 홍차가 두 잔 놓여 있다. 홍차 잔에는 개별 포장된 길쭉한 쿠키가 한 개씩 곁들여 있지만, 아사코도 엄마도 그걸 먹을 마음은 없었다.

“왜? 샐린저가 어쨌다는 건데?”

원래 말을 툭툭 뱉는 사람이었지만 요 몇 년 사이에 엄마 말투가 더 퉁명스러워진 것 같다고 아사코는 생각한다.

“그냥. 집에 책이 두 권 있어서 엄마에게 한 권 줄까 하고.”

아사코는 옆자리에 놓아둔 가방에서 문고본을 꺼내 엄마에게 건넸다. 아빠와 이혼한 후, 엄마가 매일 책만 읽는다는 건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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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래도 석연치 않은 투였다. 문고본을 받아 쓱 훑어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왜 샐린저야?”

“그러니까 집에 어쩌다 두 권이 있었다고 하잖아.”

목소리에 그만 짜증이 묻어나고 말았다. 아사코는 눈앞에 있는 엄마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고는 실수를 깨달았다.

“왜라는 건, 대체 무슨 뜻이야?”

뒤늦게 되물었지만, 엄마는 대답 대신 또 물었다.

“너, 어디가 좀 안 좋니? 네 몸 말고, 이쿠코 말처럼 ‘마음이 편치 않은’ 건지를 묻는 거야.”

샐린저를 가방에 집어넣고, 얇은 금색 담배 케이스를 꺼낸다. 탁,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엄마는 그걸 열어 잎담배 한 개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사코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아사코는 분명하게 대답하고 미소를 머금어 보인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은데.

정원에는 불이 켜지지 않은 알전구가 빙빙 감겨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나무는 살풍경한 콘크리트 마당에서 처량하고 쓸쓸해 보였다.

“그럼 됐고.”

엄마가 피우는 담배에서 달콤한 향이 풍겼다. 아사코에게는 그리운 냄새였다. ‘2번가 집’의 냄새.

엄마는 오목조목 단정하게 생겼지만, 추워서 그런지 피부가 건조하고 화장도 약간 들떠 보였다.

세 자매 중에서 아사코가 가장 엄마를 닮았다. 이렇게 같이 차를 마시고 있으면, 사람들은 모녀라는 것을 딱 알아볼 것이다.

“네 남편은 잘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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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화제를 바꿨다.

“응.”

아사코는 안도하면서 대답한다. 찻잔을 들고 빙그레 웃자, 아사코 자신마저 기묘한 느낌이 들 정도로 행복으로 가득한 미소가 되었다.

“아, 그래.”

엄마는 거의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거 다행이네.”

또 이러네, 하고 생각하면서 아사코는 가슴속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남편인 구니카즈 얘기를 할 때면 갑자기 행복해진다. 그것은 정작 남편이 옆에 있을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옆에 있을 때보다는 떨어져 있을 때, 결혼은 그 효과를 발휘한다.

엄마가 일어나 아사코도 일어났다. 왼손에 낀 결혼반지와 손목시계를 — 구니카즈도 왼손에 똑같은 것을 하고 있을 — 힐금 보고는 코트를 입었다. 반짝거리는 하얀 실크 다운 코트.

계산대 앞에서 찻값을 치르며 엄마가 진열 케이스 안의 쿠키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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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사줄게. 며칠 안 남았잖아. 네 이번 달 생일.”

애당초 그건 이쿠코의 발상이었다. 죽으면 다달이 기일을 챙기기도 하는데, 살아 있을 때 일 년에 한 번밖에 생일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좀 이상하다면서. 가족이 다섯 있으면 다달이 다섯 번이나 생일이 있는 셈이다. 물론 그날마다 축하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이 나면 농담 삼아 “축하해”라고 말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마치 신생아처럼 몇 살 몇 개월이라는 식으로 서로의 나이를 헤아리는 것도 이누야마 집안의 습관이었다.

“고마워, 엄마.”

아사코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그 조그만 상자를 받아들었다.

카페에서 나와, 나온 김에 쇼핑을 하고 가겠다는 엄마와 헤어졌다. 아사코는 차를 세워둔 골목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오후 네 시. 서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려 하는데도 마음이 조급해져 부자연스러우리만큼 종종 걷고 만다. 저만치 가는 사람을 앞지를 때 어깨와 가방이 부딪쳤다.

조금 전 그 충족된 순간의 감정은 사라져 흔적도 없었다. 하늘은 아직 환한데, 겨울 거리에는 벌써부터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하고 길가 부티크의 쇼윈도에도 희붐한 빛이 넘치고 있다.

아사코는 겁에 질리다시피 했다. 차 옆에 도착했을 때는 몸을 떨고 있었다. 몰래 나쁜 짓을 한 아이처럼 심장까지 쿵쿵 뛰었다. 조수석에 가방을 던져 넣고 운전석에 올라타 문을 닫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이제 괜찮다. 차 안은 집 안과 똑같다. 지켜준다.

얼굴을 들고 가쁜 숨이 진정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고서, 아사코는 키를 꽂고 돌렸다. 몸에 익은 시트의 감촉과 뒷좌석에 놓인 베이지색 무릎 덮개, 불필요한 소리나 물건이 없는 차 안. 아사코가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자 차는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늦은 오후부터 밤이 걸친 시간에 밖에 있기가 싫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누구와 함께 있으면 오히려 하루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인데, 혼자서 집이 아닌 장소에 있기는 고통스러웠다. 심한 불안과 그보다 몇 백배는 절박한 후회. 갑자기 길을 잃은 듯한 불안과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다는 죄책감에 숨마저 가빠진다. 한시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돌아간다기보다는 도망치는 것에 가까운 긴박한 심리라서 심장이 뛴다.

하지만, 오늘은 전화를 걸지 않아 다행이다.

고속도로를 타자, 아사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 괜찮다. 애당초 서둘 필요는 없었다.

이런 때, 아사코는 남편에게 그만 전화를 걸고 만다. 무슨 용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이다.

“지금, 밖이야.”

아사코는 전화를 걸어 그렇게 말한다. 왠지 불안해서, 라는 말을 할 때도 있고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별일 없어?”

하고 묻는 일도 있다. 엄마 만나서 차 마셨어, 하고.

어떤 말을 하든 남편의 대답은 똑같다.

“빨리 집에 가. 문 잘 잠그고.”

남편의 목소리는 언짢고 화가 난 것처럼 들리지만, 그래도 아사코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 안도한다. 응, 이거나, 그럴게, 라고 대답하고 나면, 울고 싶을 만큼 기뻐지는 일도 있다. 그래서 뜬금없이,

“고마워”

하거나,

“미안해”

라는 말을 한다. 마치 혼이 나고서야 용서받은 아이처럼.

그런데 오늘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

다시 침착해진 아사코는 핸들을 꽉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괜찮아. 차 안은 집 안과 똑같다. 실수하지 않는 한,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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