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일이 나를 아프게 할 때>

by 더굿북
하워드 휴즈는 세균 공포증에 떨었다.


젊어서 세계 굴지의 갑부가 되고, 할리우드 영화와 항공기 산업에도 큰 지배력을 갖고 여배우들과도 숱하게 염문을 뿌렸던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는 세균 공포증이 있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은 결벽증과 본인의 완벽주의에 더해, 열여섯 살과 열여덟 살 때 잇따라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었다. 그래서 자신도 요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도 중년까지는 일반 사람도 보이는 불결공포증상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비행기 사고 후유증이 더해져 차츰 피해망상적이고도 편집적인 경향이 심해졌다. 마흔여덟 살이 된 이후에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고, 무균실 같은 방에 틀어박혀 생활했다. 서류를 다루는 타이피스트에게 고무장갑을 착용시켰고, 사소한 오타가 나도 바로 다시 치도록 했다. 서류 하나를 200회나 다시 타자하게 한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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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본인은 샤워도 별로 하지 않았고, 머리도 최소한으로 잘랐으며, 주변에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던 탓에 머리칼과 수염이 제멋대로 자란 더러운 몸으로 쓰레기에 파묻히듯 살았다. 편식이 심해 빈혈에 걸렸고, 커튼을 완전히 닫은 채로 살았기 때문에 낯빛은 창백했고, 상처 날까 두려워 손톱을 자르지 않아 손톱이 마귀처럼 길었다.

만년의 휴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송장 같은 모습으로, 예전에 화려했던 플레이보이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부와 권력에 이끌린 수많은 여배우를 차지하고도 그 누구와도 안정된 인연을 맺지 못했다.

휴즈는 그야말로 애착 불안과 애착 회피와 동시에 강한 공포·회피형의 불안정한 애착 유형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젊었을 때는 정복이나 칭찬과 같은 자기애적 방어 기제로 자신을 지켰지만, 중년 이후에는 건강과 체력, 욕망의 쇠퇴와 함께 온전히 방어할 수 없게 되어 허약한 정체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자신이 모든 사람에게 버림받아 죽을 것이라는 공포와 아무도 믿지 않는 의심으로부터 지켜줄 안전 기지도 없는 상황에서 휴즈는 외부 세계로부터 자신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것 외에는 자신을 지킬 방도가 없었다.



도토루 커피는 대인공포증을 극복하고 탄생했다.


도토루 커피라는 기업을 한 세대에 쌓아 올린 도리바 히로미치(鳥羽博道)도 대인공포증과 적면공포로 힘들었던 사람이다. 도리바의 아버지는 도쿄미술학교(현 도쿄예술대학) 출신의 일본화 화가였는데, 그림으로는 먹고살 수가 없어서 인형 눈을 만들면서 가까스로 생계를 꾸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박을 좋아하고 난폭한 구석도 있었다. 도리바가 아홉 살 때는 어머니마저 어린 남동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서 생활고가 극심했다.

대인 긴장은 유전 요인과 양육환경이 모두 관계되는데, 부모가 엄격하거나 난폭해서 억눌려 자란 사람에게 많이 나타난다. 도리바도 어머니가 없는 불안한 환경에서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대인 긴장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고등학생이 될 무렵에는 도리바도 생활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아버지가 만든 인형 눈을 팔러 나갔다. 내성적이고 적면공포도 있는 도리바에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물건을 파는 일은 분명 두려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도리바의 두려움을 전혀 괘념치 않았고, 어느 날은 돈 계산이 맞지 않는다며 격분하기까지 했다. 부당한 처사에 더는 참지 못한 도리바가 반항하자, 아버지는 “확 베어버릴까 보다!” 하면서 칼을 꺼내 들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도리바는 친척 집으로 도망쳤고, 그대로 도쿄로 가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고등학교도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의 생활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아버지의 그 행동이 최후의 일격으로 작용했다.

도리바는 양식 레스토랑의 수습생과 프랑스 요릿집 바텐더를 거쳐 카페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커피에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게 되는데, 가게 주인이 브라질로 건너가는 바람에 그 카페에 커피를 공급하던 커피 제조 도매회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도리바가 맡게 된 일은 영업이었다. 그러나 대인공포와 적면공포를 앓고 있었던 도리바에게 갑자기 들어간 매장에서 처음 보는 고객과 이야기를 하며 상품을 판다는 것은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몇 번이나 그만둘까 생각했다. 고민 끝에 도리바는 뛰어난 언변으로 능숙하게 영업하기보다 손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화려한 언변보다 상대방이 내가 뭘 하기를 원하는지 꿰뚫어봤습니다. 예를 들어, 매장이 좀 바쁘다 싶으면 일을 거들고, 계산대가 엉망일 때는 일을 더 편히 할 수 있는 배치를 제안하는 겁니다. 또 어떤 레스토랑에서 출장요리를 나가면 따라가 더러워진 접시를 정리하거나 남긴 음식을 버리러 가는 일을 도와줍니다. 그리고 적당한 기회를 엿보다 커피를 내미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주의 깊게 봐줍니다.” _ 오쓰카 히데키(大塚 英樹)의 《성공론-카리스마의 좌절과 도전(成功論-カリスマの挫折と挑戰)》중에서

그런 노력으로 대인공포증에 화려한 언변도 없던 도리바는 영업 실적 톱에 오른다. 카페를 하나 맡게 된 그는 손님에게 편안함과 활기를 불어넣는 매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매장도 번창시켰다.

그런 시기에 도리바는 앞서 브라질에 건너갔던 예전 고용주로부터 브라질에 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도리바는 안정된 자리를 박차고 혼자 브라질로 향했다. 브라질에서의 경험은 도리바의 인생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커피 농장 일과 판매 일을 같이하면서 현지인을 잘 활용하는 비결을 체득한 것이다. 귀국한 도리바는 도토루 커피를 설립하고, 오늘에 이르는 발전을 이룩했다.


쓰레기통이 신경 쓰여 살 수가 없다.


이십 대 중반 여성이 출근을 못 하겠다며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녀의 고민은 ‘실수로 중요한 서류를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 때문에 자꾸만 쓰레기통을 확인하고 싶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고, 결국에는 출근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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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결벽증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만진 문고리 같은 건 만지기를 꺼렸는데, 몇 개월 전부터는 그 경향이 심해져 장갑까지 끼고 출근했다고 한다. 그러다 증상이 조금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쓰레기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보름 정도 지났을 때 여성의 아버지가 면담을 요청하며 찾아왔는데,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딸의 이번 증상이 자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며 묻자, 아버지는 복잡한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여자 문제로 십 년 정도 집을 나가 살았는데, 반년 전쯤 아내와 다시 사이가 좋아져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딸의 결벽증이 심해진 것이 자기라는 ‘이물질’이 침입해서 그런 게 아닌가 하고 여러모로 걱정하고 있었다. 딸이 받아들여 주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거부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우려였다.

아버지의 추측이 꼭 빗나간 것만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서 그때까지 유지하고 있던 마음의 균형이 깨지고, 그녀의 안전 기지가 더는 안전하지 않게 됐다는 사실이 병의 도화선이 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실제로 그 후 아버지가 다시 따로 살게 되자, 그녀의 강박 증상이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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