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피 한 방울 흘리지 말고 승리하라.

<조조처럼 대담하라>

by 더굿북

손자가 말했다.

‘백전백승은 결코 최상의 계책이 될 수 없다. 싸우지 않고도 굴복시키는 부전굴인(不戰屈人)이야말로 최상의 계책이다.’
조조가 풀이하기를, “적을 공격고자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계책을 써 적을 제압하는 방안부터 검토해야 한다. 적을 온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이고, 무찌르는 것은 차선이다. ‘부전굴인’은 싸우기도 전에 적이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을 말한다. 처음부터 계책을 잘 짜서 싸우면 적을 제압하는 게 쉽다.”
_ 『손자약해』 「모공」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적을 제압하라.


조조가 새롭게 편제해 펴낸 『손자약해』는 현존 『손자병법』의 원본이다. 모두 13편으로, 「시계(始計)」, 「작전(作戰)」, 「모공(謀攻)」, 「화공(火攻)」, 「용간(用間)」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의 모든 상황을 간명한 문체로 체계화한 것이 특징이다.

21세기인 현재까지도 『손자약해』가 인간경영의 보고로 간주하고 있다. 인사의 성패 등 국가경영뿐만 아니라 사적인 차원의 인간관계 전반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지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간의 총력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21세기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손자약해』의 지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그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손자약해』를 비롯한 모든 병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기에 피를 한 방울도 묻히지 않은 채 적의 무릎을 꿇게 하는 이른바 부전굴인에 있다. 그러나 실전에서 ‘부전굴인’은 대부분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 압도적인 무력적 우위를 점하기 전에는 상대가 쉽게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압도적인 무력적 우위가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승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 미국이 월남에서 철수하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퇴한 게 그렇다. 한편 초한전 당시 한신은 병서에 나오는 배수진(背水陣)을 역이용해 대승을 거뒀다. 병서에서 말하는 이치를 실제 상황에 대입해 가장 적합한 해답을 찾은 결과다. 『손자병법』 「모공」은 그 이유를 이같이 설명해 놓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울지라도 위태롭지 않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만 알면 반은 이기고 반은 진다. 적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

전략에 관한 한 이보다 더한 금언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이른바 지피지기(知彼知己) 전략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손자병법』을 실전에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로마 시대에 지중해 일대를 로마의 지배 아래 두고자 했던 카이사르처럼 전 유럽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했다. 그가 일으킨 전쟁은 기본적으로 대유럽을 겨냥한 통일전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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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손자병법』을 읽으면서 조조의 주석까지 읽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의 성격에 비춰 그 가능성은 매우 크다. 당시 나폴레옹 전쟁을 본 서양의 군사학자 클라우제비츠의 언명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전쟁론』에서 전쟁을 이같이 정의한 바 있다.

“전쟁이란 기본적으로 정치적 행위이며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는 유럽통합을 겨냥한 나폴레옹 전쟁의 특성을 간명하면서도 정확히 지적한 것으로 사실은 전쟁을 국가 대사로 정의한 손자의 말을 재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손자병법』은 「시계」에서 전쟁과 치국평천하의 관계를 이같이 풀이했다.

“전쟁이란 백성을 살리느냐 죽이느냐를 판가름하는 바탕이며 나라의 존망을 결정짓는 근본이기에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허허실실의 계책을 활용하라!


전쟁을 치국평천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본 것이다. 조조와 나폴레옹은 비록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서 통일전쟁을 전개했지만 모두 『손자병법』의 충실한 실행자들이었다. 또한, 두 사람 모두 중국 천하의 통일과 대유럽의 통일을 위해 매진한 공통점이 있다.

삼국시대 당시 조조는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서도 매번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 승리를 쟁취했다. 모든 사람이 원소의 승리를 예상했던 관도대전에도 조조는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관도대전 당시 조조가 사용한 전략전술은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허허실실(虛虛實實)의 계책이었다. 이는 『손자병법』을 관통하는 전략전술의 요체이기도 하다.

조조가 원소군의 군량고를 점하면서도, 비어있는 본진의 양쪽에 복병을 숨겨둔 게 그렇다. 허허실실의 핵심은 상대방이 전혀 생각지 못하거나 상상하기 힘든 전법을 구사해 불시에 적의 허를 찌르는 데 있다. 이는 은밀한 정보수집, 적군과 아군의 무력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평가, 때를 놓치지 않는 과감한 결단 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조조는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그러나 자만심이 지나쳐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나갔을 때는 거의 예외 없이 패했다. 패전의 뼈아픈 경험 뒤에 조조는 전략에 관한 토론을 집중적으로 시행하고 경청하며 자기 생각을 충분히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조율했다. 이것이 바로 조조가 위기 때마다 세상의 평가와 예상을 깨고 역전을 이룬 배경이다. 한마디로 참모들의 건의를 집중적으로 경청하고 조율한 덕분이다. 게다가 후대인들로부터는 당대 최고의 병법가라는 칭송을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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