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겉치레를 버리고 실질로 나아가라.

<제갈량처럼 앞서가라>

by 더굿북

혼란을 다스리는 치란(治乱)에 관한 정사는 불필요한 관직을 줄이고 유사한 관직을 합치는 생관병직과, 겉치레를 버리고 실질로 나아가는 거문취질을 말한다.

_ 『편의16책』 「치란」


허례허식을 버리고 백성을 위했던 유능한 관리가 제갈량이다.


조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브랜드의 성격이 ‘대담성과 능력’이라면 제갈량을 상징하는 브랜드의 특성은 ‘사심없는 통찰력’일 것이다. 제갈량은 유비의 삼고초려 덕분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단숨에 조직의 이인자의 자리에 발탁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개인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제갈량은 언제나 일인자 유비의 뜻을 받들고 국가에 목숨을 바쳐 충성했으며, 승상이라는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서도 결코 사사로운 이익을 얻고자 하지 않았다.

삼국시대는 기본적으로 혼란기였다. 혼란의 시기일수록 조직은 단순하고 효율적일 필요가 있었다. 공평무사하고 청렴한 지도자로서 제갈량은 이 사실을 미리 통찰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제갈량이 『편의 16책』 「치란」에서 ‘겉치레를 버리고 실질로 나아갈 것’을 강조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제갈량은 기본적으로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시키기 위한 전략을 추구한 것이다.

춘추시대 중엽 제환공을 도와 첫 패업을 이룬 관중은 부국강병(富國强兵) 계책을 흉내 낸 것이다. 『관자』 「치국」에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 나온다. “무릇 치국의 길은 반드시 우선 백성을 잘살게 하는 데서 시작한다. 백성들이 부유하면 다스리기가 쉽고, 백성들이 가난하면 다스리기가 어렵다.”

관중 사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백성을 반드시 부유하게 한다.’는 뜻의 ‘필선부민(必先富民)’에서 찾는 이유다. 그는 제자백가 가운데 요즘의 경제학파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상가(商家)의 효시에 해당한다. 상가는 통상 제자백가의 일원으로 거론되지 않고 있으나 거만의 재산을 모은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분명 하나의 사상적 흐름으로 존재했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평준서」와 「화식열전」을 편제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요즘으로 치면 「평준서」는 경제정책, 「화식열전」은 경제경영 이론서에 해당한다. 사마천은 「화식열전」에서 관중을 상가의 사상적 비조, 자공을 공부하며 사업을 병행하는 이른바 유상(儒商)의 효시로 특별히 기록해 놓았다.


「화식열전」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닮았다.


실제로 『국부론』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화식열전」에 수록돼 있다. 관중은 ‘부민’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농업과 함께 상공업을 진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농상병중(農商竝重)이라고 한다. 그는 말업(末業)으로 치부된 상공업을 본업(本業)인 농업과 같은 비중으로 중시한 최초의 경제학자에 해당한다. 많은 사람이 관중의 사상을 ‘부민주의’로 요약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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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화식열전」의 부민부국 이론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부민’은 부국강병의 대전제에 해당한다. 이는 부민이 이뤄져야 부국이 가능하고, 부국이 가능해야 강병이 실현된다는 지극히 간단한 이치이다. 당 태종은 비록 유가의 중농(重農) 이론에 치우치기는 했으나 ‘부민’의 중요성만큼은 당대의 그 누구보다 절감하고 있었다.

『정관정요』 「무농」에 이를 뒷받침하는 일화가 나온다. 정관 2년인 628년, 당 태종이 좌우 신하에게 물었다.
“무릇 일을 할 때는 근본에 힘써야 하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고 입는 것을 근본으로 삼소. 먹고 입는 것은 농사철을 잃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소. 농사철을 잃지 않으면 군주는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소. 군사동원이 계속되고 토목 사업이 그치지 않으면서 농사철을 빼앗지 않으려고 하면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이겠소”
곁에 있던 시중 왕규가 대답했다.
“전에 진시황과 한 무제는 대외적으로 누차에 걸쳐 큰 전쟁을 일으키고, 대내적으로 화려한 궁궐을 짓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민력이 고갈되자 곧바로 난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라고 어찌 백성들을 안정시키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는 백성들을 안정시킬 방법을 잃은 탓입니다. 수나라의 패망은 우리 당나라에 마치 은나라가 가까운 하나라의 패망사례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는 뜻의 은감불원(殷鑑不遠)에 해당합니다. 폐하는 수나라의 병폐를 직접 이어받은 셈이므로 이를 어떻게 혁파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매사가 그렇듯이 시작은 쉽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기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폐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심하고 삼가서 지치(至治)를 이루도록 하십시오.”
당 태종이 칭찬했다.
“그대의 말이 옳소. 무른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고 나라를 안녕하게 하는 것은 오직 군주에게 달려 있소. 군주가 지나치게 욕심을 내면 백성들은 고통스러워할 것이오. 짐이 감정을 억제하며 욕심을 줄이고, 극기하며 스스로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소.”

고금을 막론하고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바른 정사를 펼 길이 없다. 백성들이 본업에 안심하고 종사토록 군주가 스스로 절제하며 근면한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같은 「무농」에 이를 뒷받침하는 일화가 나온다. 정관 16년인 642년, 풍년으로 인해 전국의 곡물 가격이 평균 1두에 5전, 특히 낮은 곳은 1두에 3전밖에 안 되었다. 당 태종이 시신들에 말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밥으로 목숨을 잇소. 짐은 억조(億兆)창생의 부모요. 식량이 부족하면 나라는 백성을 온전히 보유할 수 없소. 이번에 풍년이 들어 양식이 풍족해졌으니 짐은 스스로 절검하는 모습을 보이며 반드시 사치하거나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오. 짐은 늘 천하 사람에게 상을 내려 모두 부귀하게 만들려는 생각을 하고 있소. 부역과 세금을 줄이면서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 식으로 집집이 모든 사람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만들 생각이오. 이것이 백성들을 부유하게 만드는 길이오. 또 그들에게 예양을 실행하도록 격려해 마을 내에서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고, 아내는 지아비를 존경하도록 할 것이오. 이는 백성들을 귀하게 만드는 길이오. 천하를 이같이 만들 수만 있다면 짐은 음악도 듣지 않고, 사냥도 가지 않을 것이오. 모든 즐거움은 바로 그 안에 있을 것이오.”



지도층의 사치는 조직 발전의 가장 큰 적이다.


당 태종이 천하 사람을 모두 부귀하게 만들 생각으로 ‘부역과 세금을 줄이면서 농사철을 빼앗지 않는 식으로 집집이 모든 사람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도록 만들 생각이다.’라고 밝힌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로부터 지도층의 사치는 백성들의 근로의욕을 갉아먹는 원흉이다. 21세기라고 달라질 리 없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프라를 촘촘하게 짜는 것은 필요하지만, 인민의 근로의욕을 잃게 하는 퍼주기식의 무차별적인 복지정책을 지양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용비’와 ‘용관’의 척결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재화를 생산할지라도 재정이 이내 바닥이 나고 만다. 재정이 바닥나면 결국 인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식으로 세금 징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공물과 부역 등을 줄여야 하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이를 숙지하고 있었다. 『정관정요』 「검약」에 나오는 다음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정관 2년인 628년, 공경들이 이같이 상주했다.
“『예기』 「월령」에 따르면 여름의 마지막 한 달은 높이 쌓아 올린 망루인 대사(臺榭)에서 거주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름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고, 가을비가 벌써 내리기 시작한 까닭에 황궁 안의 낮은 곳은 매우 습합니다. 청컨대 누각 하나를 새로 지어 그곳에 머물도록 하십시오.”
당 태종이 말했다.
“짐은 기력이 쇠약해지는 병을 알고 있소. 어찌 낮고 습한 곳이 좋을 리 있겠소? 그러나 그대들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실로 낭비가 많을 것이오. 일찍이 한 문제는 노대를 만들다가 10가구 재산에 해당하는 비용을 아까워해 결국 세우지 않았소. 짐은 덕행 면에서 한 문제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데도 재화의 소비는 그를 넘어서고 있소. 이 어찌 백성들의 부모인 군주의 도리라고 할 수 있겠소”

공경들이 거듭 주청을 했으나 당 태종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이는 결코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었다. 사치를 멀리한 검박한 모습은 당 태종의 상징이기도 했다. 같은 「검약」에 나오는 다음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정관 4년인 630년, 당 태종은 좌우 시신에게 이같이 말했다.

“궁궐과 전각을 확장해 꾸미고, 연못의 누대 위에서 노니는 것은 제왕이 원하는 것일 뿐 백성들은 오히려 이를 원하지 않소. 제왕들이 바라는 것은 방탕하게 노니는 것이오. 백성들이 이를 바라지 않는 것은 바로 백성들을 수고롭고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오. 공자는 『논어』 「위령공」에서 말하기를, ‘한마디로 평생 실행할 수 있는 글자를 꼽으라면 아마도 남을 내 몸처럼 생각하는 서(恕)일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했소. 백성들을 수고롭고 피폐하게 만드는 일은 실로 백성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오. 짐은 제왕의 존귀한 자리에 앉아 있는 덕분에 천하의 모든 부를 한 몸에 지니고 있소. 모든 일은 짐에게서 나오는 까닭에 스스로 절제해야만 하오. 백성들이 바라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들의 정서를 좇아야만 하오.”
위징이 화답했다.
“폐하는 본래 백성들을 가련하게 여기면서 늘 스스로 절제하는 식으로 민심을 좇았습니다. 신이 듣건대 ‘군주가 자신의 욕망을 민정(民情)에 맞추는 나라는 창성하고, 백성을 수고롭게 만들어 자신의 향락만 꾀하는 나라는 패망한다.’고 했습니다. 수양제는 탐심에 끝이 없어 사치와 향락만 추구했습니다. 군주가 어떤 것을 좋아하면 반드시 아래에서는 경쟁적으로 이를 따르기 마련입니다. 상하가 서로 끊임없이 사치를 다투면 결국 패망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폐하도 직접 본 것이기도 합니다.”
당 태종이 칭송했다.
“그대의 응대가 실로 훌륭하오. 그대가 아니면 짐이 어디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겠소!”


거문취질하고 생관병직하라!


민생을 안정시키려면 군주 스스로 절제하며 사치를 멀리해야 한다. 그러나 군주가 아무리 절제하는 모습을 보일지라도 황실과 관청이 이를 본받지 않으면 그 효과는 반감할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이나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지출이 많으면 아무리 수입이 많을지라도 이내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최고통치권자가 천하에 임할 때 할 일 없이 국록을 축내는 관리를 퇴출하고, 필요하지 않은 사업에 대한 비용을 제거해야 한다.

제갈량이 『편의 16책』 「치란」에서 겉치레를 버리고 실질로 나아가는 거문취질(去文就质)과 더불어 불필요한 관직을 줄이고 유사한 관직을 합치는 ‘생관병직(省官并职)’을 역설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곳곳에서 국가 지도층이나 기업조직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부패를 자주 보게 된다. 지도층의 탐욕과 부패는 조직이 패망하는 결정적인 지름길이다. 죽은 지 1,700년이 지나서도 수많은 사람의 추앙과 흠모를 받는 제갈량의 모습에서 참다운 지도자의 길이란 어떤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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