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결정적 승부에는 목숨을 걸어라. (마지막 회)

<조조처럼 대담하라>

by 더굿북

손자가 말했다. ‘장수는 부하에게 임무를 맡길 때 작전의도를 알려줘서는 안 된다.’ 조조가 풀이하기를, “작전의도를 병사들에게 미리 알려주면 위험한 결과에 대해 병사들이 의심을 할 수도 있고, 정보가 적진으로 새나갈 수도 있다. 병사들은 필사의 각오로 싸울 때 비로소 극히 위험한 망지(亡地)와 통상 살아나오기 힘든 사지(死地)에서도 패하지 않고 살아남는다. 『손빈병법(孫臏兵法)』은 병사는 사지에 내던져지지 않으면 공포에 떨게 된다고 지적했다.”

_ 『손자약해』 「구지」


순욱이 제시한 4가지 필연적 승리의 이유

관도대전 당시 객관적으로 볼 때 조조의 군사는 어느 모로 보나 원소의 군사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이 원소의 승리를 점친 이유다. 그러나 조조의 책사 순욱과 곽가의 평가는 달랐다. 양적인 면에서 보면 분명 열세이나 질적인 면에서 보면 조조가 원소보다 훨씬 낫다는 게 이유였다.

먼저 순욱은 이같이 말했다.
“비록 병사들이 약할지라도 반드시 강할 수 있습니다. 실로 장수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비록 강병이라 할지라도 곧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유방과 항우의 성패를 통해 이를 족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공과 더불어 천하를 다투는 자는 오직 원소뿐입니다.”

“첫째, 원소는 비록 외관상 관용하는 모습을 보이나 내심 사람을 시기하고, 사람을 임용하면서 그 마음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은 지극히 총명해 규율에 기속되지 않고 재능 또한 적의 하니 이는 그릇에서 이긴 것입니다.”

“둘째, 원소는 중대사를 유예하며, 결단하는 것이 적어 기회를 놓치나 공은 능히 대사에 단안을 내려 시변을 좇아 대처하니 이는 모책에서 이긴 것입니다.”

“셋째, 원소는 군을 통제하면서 너그럽기만 해 법령이 서지 않아 병사가 비록 많으나 실제 사용키 어려우나, 공은 법령을 밝게 하고 상벌을 엄히 해 병사들이 비록 적으나 모두 목숨을 내놓고 싸우려 하니 이는 무력에서 이긴 것입니다.”

“넷째, 원소는 가문을 배경으로 지혜로운 자를 가장하며 명예를 낚아 능력도 없으면서 떠벌이는 자들이 많이 귀의하고 있으나 공은 지극한 어짊으로 사람을 대하면서 성심을 다해 허식을 취하지 않은 채 스스로 근검하고, 공을 세운 자에게 포상하는 데 인색지 않으니 천하에 있는 충정하며 실질적인 능력을 갖춘 선비들이 모두 발탁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덕성에서 이긴 것입니다.”

“무릇 이 4가지 측면에서 우월성을 지니고 있는 데다 천자를 보필하며 정의를 기치로 내걸고 정벌에 나서니 누가 감히 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소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어찌 공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순욱이 말한 4가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을 임용하는 임인(任人), 계책에 대한 결단을 뜻하는 결모(決謀), 법을 확실히 밝히는 명법(明法), 사람을 온화하게 대하는 대인(待人)이 그것이다. 순욱은 이들 4가지 측면에서 조조가 원소보다 우월한 까닭에 능히 승리할 수 있다고 예견한 것이다. 사실 이 4가지 요소는 어떤 집단이든 체계와 기강을 잡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 덕목에 해당한다. 결국, 원소는 내실경영에서 조조에게 뒤처지고 있는 까닭에 이미 패배의 요인을 내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곽가가 제시한 필승의 10가지 이유

당시 곽가는 순욱에 비해 조조와 원소의 상황에 대한 보다 상세한 비교를 시도했다. 그가 비교의 항목으로 든 것은 모두 10가지였다. 그는 조조 앞에서 이를 일일이 설명하며 조조의 필승에 대한 신념을 부추겼다.

“예전에 유방이 항우의 적수가 아니었던 사실을 공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한 고조는 오직 지혜로서 항우를 이겼으니 항우가 비록 강대했다고는 하나 결국 유방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지금 원소에게는 10가지 패배할 요인이 있고 공에게는 10가지 승리할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원소는 비록 강대하기는 하나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원소는 예의가 번다하기 그지없으나 공은 이를 자연에 맡깁니다. 이는 다스림의 이치에서 그를 이긴 것입니다.”

“둘째, 원소는 천자에 대항해 순리를 거스르고 있으나 공은 천자를 모시어 순리를 받들어 천하를 이끕니다. 이는 다스림의 명분에서 이긴 것입니다.”

“셋째, 환제와 영제 이래 정치가 관유(寬柔)함을 잃었는데 원소는 관유로써 관유를 구하려고 해 어지러운 국면을 정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공은 엄맹(嚴猛)으로서 국면을 바르게 정비하니 상하에 절제가 있습니다. 이는 다스림의 법제에서 그를 이긴 것입니다.”

“넷째, 원소는 겉으로는 관유를 내세우면서도 내심 시기하고 사람을 쓰면서도 의심을 잘하니 그가 임용한 자들은 오직 친척과 그의 자제들일 뿐입니다. 공은 밖으로는 간략하면서도 편하게 사람을 대하나 심중에는 요체를 꿰고 있어 사람을 쓰되 의심치 않습니다. 오직 그 재능에 근거해 적합한지를 따지며 친소원근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는 다스림의 그릇에서 그를 이긴 것입니다.”

“다섯째, 원소는 계획하는 것은 많으나 결단을 내리는 것이 적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으나 공은 계책이 서면 곧바로 행동에 옮기고 시의에 좇은 임기응변에 능합니다. 이는 다스림의 계책에서 그를 이긴 것입니다.”

“여섯째, 원소는 고상한 얘기를 즐기면서 사람을 대할 때 겸양하는 자세로 명예를 낚으려고 하니 선비 중 말과 외양을 잘 꾸미는 헛된 자들이 그에게 의탁합니다. 공은 성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헛된 명성을 좇지 않으니 선비 중 충직하며 실력이 있는 자들이 멀리서도 발탁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다스림의 덕성에서 그를 이긴 것입니다.”

“일곱째, 원소는 사람이 춥고 배고픈 것을 보면 이를 구제하면서 가슴에 담으니 연민의 정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일에는 충분히 고려치 못하고 있습니다. 공은 눈앞의 작은 일에는 때로 소홀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사에는 해내의 각지와 연결해 은혜를 베푸니 그 은혜가 모두 기대를 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조차 소홀함이 없게 됩니다. 이는 다스림의 인자함에서 그를 이긴 것입니다.”

“여덟째, 원소의 대신들은 권력을 쥐려고 서로 무함해 시비혼란이 일어나나 공은 치도로써 부하를 다스리니 참언과 무함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는 다스림의 지혜에서 그를 이긴 것입니다.”

“아홉째, 원소는 시비가 불명하나 공은 옳은 것은 예로 대해 승진을 시키고 옳지 않은 것은 법으로써 징치합니다. 이는 다스림의 문화에서 그를 이기는 것입니다.”

“열째, 원소는 허장성세만을 구사할 줄 알아 용병의 요체를 모릅니다. 그러나 공은 적은 군사로써 대군을 이겨 용병이 신과 같고 공의 군사가 모두 공을 믿고 적들은 공을 두려워합니다. 이는 다스림의 무력에서 그를 이긴 것입니다.”

이를 흔히 ‘십승십패지의(十勝十敗之議)’라고 한다. 곽가는 순욱이 언급한 4가지 항목 위에 다시 6가지 항목을 덧붙여 조조의 필승을 예견한 것이다. 당시 조조는 순욱과 곽가의 얘기를 듣고 크게 기뻐한 나머지 호탕하게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경이 말한 것을 내가 무슨 덕이 있다고 감히 감당할 수 있겠소” 당시 순욱과 곽가가 분석의 초점을 맞춘 것은 조조와 원소 집단이 보여주고 있는 조직 체계 및 기강의 차이였다. 이들의 비교는 조조를 높이고 원소를 깎아내리고자 한 의도가 크게 작용한 게 사실이나 기본 내용만큼은 사실과 부합한다. 두 사람 모두 전에 원소를 좇은 적이 있기에 비교분석의 내용에 나름 무게가 실린다. 나름 정밀한 분석에 토대한 이들의 격려가 조조가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토록 부추기는 동인으로 작용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위기를 타개하는 비법을 익혀라.
- 현재의 환경과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라.
- 반드시 돌파할 수 있다는 확신을 조직원에 심어라.
- 조직원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독려하라.

곽가가 ‘십승십패지의’를 건의할 당시 조조는 ‘불감당(不堪當)’을 언급하며 겸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내심 복안을 갖고 있었다. 바로 초한전 당시 한신이 조(趙)나라를 공략할 때 구사한 배수진의 용병술이 그것이다. 조조가 『손자약해』 「구지」에 대한 주석에서 ‘배수진’에 기초한 사지계(死地計)를 제시한 게 그 증거다.

애초 한신은 위나라와 대 땅을 모두 석권한 지 불과 1달 뒤인 기원전 204년 10월, 유방의 명을 받고 곧바로 남하해 지금의 산서성 태원(太原)에 이른 뒤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험하기로 유명한 정형(井陘)의 협곡을 지나 조나라의 심장부인 도성 한단으로 돌진코자 한 것이다. 정형의 협곡 입구를 흔히 정형구(井陘口)라고 한다. ‘정형구’의 형(陘)은 산맥이 끊긴 두 산 사이가 좁게 형성되어 ‘구(口)’ 자의 모습을 이룬 곳을 말한다.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운 천혜의 험지로 일종의 관(關)에 해당한다. 정형구를 정형관(井陘關)으로 부르는 이유다.

태항산맥에는 이런 관문이 모두 8곳 있다. 정형관은 5번째 관문에 해당한다. 정형구는 태항산맥 사이에서 현재의 산서성 태원과 하북성 석가장(石家莊)을 잇는 기다란 지구대(地溝帶)의 입구에 해당한다. 원래 지구대는 나란히 뻗어 있는 단층 사이의 지반이 푹 꺼져 만들어진 좁고 긴 계곡을 말한다. 천혜의 험준한 지역이다.

당시 한신은 자신의 군사를 20만 명이라고 내세웠다. 이에 맞서 진여도 20만 명의 대군을 정형구에 배치했다. 진여도 나름 병법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 마련이다. 더 뛰어난 인물이 나타나면 자신이 아는 병법 지식은 무용지물에 가깝게 되고 만다. 불행하게도 진여는 이 덫에 걸려 있었다. 참모로 있던 이좌거(李左車)의 건의를 무시한 게 그렇다. 당시 이좌거는 이같이 건의했다.

“한신과 장이가 승세에 올라타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 저들의 예기를 당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듣건대 ‘천 리 길을 양식을 운송하며 가면 병사에게 주린 기색이 있고, 아무 준비 없이 급히 나무나 풀을 베어다가 밥을 해먹이면 군사들이 계속 배부르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정형구의 길은 매우 좁아 수레 두 대가 병행할 수 없고, 말도 대오를 지어 갈 수 없습니다. 행군의 길이는 수백 리에 이를 것이고, 형세로 보아 양식 또한 반드시 후미에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제가 기병(奇兵)을 구사코자 하니 저에게 군사 3만 명을 빌려주십시오. 그러면 샛길로 가서 그들의 치중(輜重)을 끊어버리겠습니다. 그대가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인 채 저들과 교전하지 않으면 저들은 앞으로 나아가 싸울 수가 없고, 뒤로 물러나 회군할 수도 없고, 들에서 노략질할 것도 없게 됩니다. 열흘도 채 못 돼 한신과 장이의 머리를 가히 그대 앞에 갖다놓겠습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저들의 포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진여는 『사마법』에서 역설하는 의병(義兵)을 중시하며 속임수와 기병(奇兵)의 계책을 쓰지 않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그가 반박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손자병법』에서 적의 10배면 상대를 포위하고, 2배면 싸운다고 했소. 지금 한신의 군사는 수만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수천 명에 지나지 않소. 게다가 천 리 길을 달려와 우리 군사를 치는 까닭에 지금 크게 지쳐 있을 것이오. 이런 약한 군사를 피하고 정면으로 공격지 않으면 장차 더 큰 대군이 공격해 올 때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제후들은 틀림없이 나를 겁쟁이로 업신여기며 가벼이 보고 곧장 공격해 올 것이오!”

한신이 사람을 보내 적진을 정탐했다. 이내 이좌거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을 알고는 크게 기뻐했다.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감히 적진이 있는 정형구로 내려갔다. 당시 태항산의 완만한 경사면은 물론 우뚝 솟은 절벽에도 나무가 띄엄띄엄 있었다. 낮에도 어두운 협곡을 행군해 출구에 해당하는 정형구에서 불과 30리도 못 미치는 곳에서 행군을 멈추고 영채를 차렸다.

한밤중에 한신은 출병의 전령을 내렸다. 날쌘 기병 2천 명을 뽑아 각기 한나라를 상징하는 붉은 깃발을 하나씩 가지고 샛길을 이용해 산속에 몸을 엄폐한 뒤 조나라 군사의 동정을 살펴보게 했다. 이때 한신이 병사들에게 이같이 경계했다.

“조나라 군사는 내가 도망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영루를 비우고 나를 쫓아올 것이다. 그때 그대들은 영루로 재빨리 들어가 조나라 깃발을 뽑아낸 뒤 우리 한나라의 붉은 깃발을 세우도록 하라.”
이어 휘하 장수들 앞에서 장담했다.
“오늘은 조나라 군영을 깨뜨린 후 그곳에서 회식할 것이오.”
장수들 모두 한신의 말을 믿지 못하고 건성으로 응답했다.
“알겠습니다.”
한신이 이를 눈치채고 간략히 배경을 설명했다.
“조나라 군사는 먼저 용병에 편리한 곳에 기대어 영루를 쌓았소. 게다가 저들은 아직 대장군의 깃발을 보지 못한 까닭에 우리의 선봉을 공격하려 하지 않을 것이오. 아마 내가 이내 험로에 막혀 회군하리라고 생각할 것이오.”

그러고는 1만 명의 군사들을 먼저 나아가게 했다. 그들이 출병하자 이내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당시 한신이 배수진을 친 곳은 병주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흐르다가 정형현의 경계지역으로 들어가는 면만수(綿蔓水)였다. 조나라 군사들이 이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새벽을 넘긴 시점에 한신이 대장군의 깃발을 세운 뒤 우렁찬 군악 소리와 함께 북을 치면서 정형구를 빠져나갔다. 강물을 건너 동쪽으로 집결하자 이를 본 조나라 군사들이 이내 영루의 문을 열고 공격해 했다. 진여는 한신을 사로잡을 기회가 왔다고 판단해 전군에 총공격을 명했다.

큰 전투가 제법 오래 지속했다. 도중에 한신과 장이가 짐짓 깃발과 북을 버린 뒤 강가에 만들어 놓은 영채로 달아났다. 한신의 병사들이 진여 군대의 추격을 힘겹게 방어하면서 더는 물러서지 않고 맹렬히 저항했다. 얼마 후 과연 조나라 군사들이 완승을 할 생각으로 영루를 비운 채 총출동해 한나라의 깃발을 다퉈 빼앗으며 한신과 장의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한신의 군사가 결사적으로 저항하자 조나라 군사는 이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이 사이 한신의 명을 좇아 산등성이에 매복하고 있던 2천여 기병이 조나라 영루로 급히 들이친 뒤 조나라 깃발을 모두 뽑아 버리고 한나라의 붉은 깃발 2천 개를 세웠다. 조나라 군사들은 한신 등을 잡는 것이 어렵게 되자 이내 영루로 귀환하다가 영루가 온통 한나라의 붉은 깃발로 둘러쳐져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이들은 한나라 군사가 이미 영루에 있던 조왕의 장령들을 모두 포획한 것으로 생각했다. 조나라 병사들이 마침내 혼란에 빠져 달아나기 시작했다. 조나라 장수들이 비록 달아나는 군사들의 목을 베며 저지하고자 했으나 이미 늦었다.

한나라 군사가 조나라 군사를 협격해 대파한 뒤 남쪽으로 몇십 리 밖에 있는 저수(泜水) 가에서 진여의 목을 치고 조왕 조헐을 사로잡았다. 한신이 구사한 ‘배수진’은 후대인들로부터 한신이 구사한 여러 계책 가운데 가장 멋지고 기발한 계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싸움이 끝난 뒤 여러 장수들이 수급과 포로를 바치며 서로 분분히 축하한 뒤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 이르기를, ‘진을 칠 때 오른쪽으로 산릉을 등지고, 왼쪽 전면으로 수택을 가까이한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장군이 오히려 배수진을 치게 하면서 조나라를 격파한 뒤 회식을 하겠다고 언급했으나 저희는 내심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어떤 전술입니까”

한신이 대답했다.
“이 또한 병법에 있는 것으로 제군들이 자세히 살피지 못했을 뿐이오. 병법에 이르기를, ‘사지(死地)에 빠진 뒤에야 생환할 수 있고, 망지(亡地)에 놓인 뒤에야 생존할 수 있다’고 했소. 게다가 나 한신은 평소 장병들을 가까이할 길이 없었소. 이들을 부리는 것은 이른바 ‘훈련받지 않은 저잣거리 사람들을 모아 작전하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오. 그래서 형세 상 부득불 이들을 사지에 두어 각자 스스로 분전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오. 지금 이들에게 사방으로 도주할 수 있어 살아날 수 있는 생지(生地)를 제공했다면 모두 달아나고 말았을 것이오. 어찌 그런 사람들을 지휘하며 작전할 수 있었겠소”

‘사지’ 및 ‘망지’와 관련해 『손자병법』 「구지」는 ‘급하게 싸우면 살아남고, 싸우지 않으면 패망해 죽음이 땅이 된다.’고 기록해 놓았다. 배수진의 비결을 언급한 것이다. 덕분에 팽성대전(彭城大戰)에서 치명타를 입은 유방은 다시 항우와 접전을 벌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됐다. 한신이 배수진을 쳐 조나라를 격파할 당시 유방은 직전의 팽성대전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까닭에 패색이 짙었다. 이런 상태가 조금만 더 유지됐으면 천하는 다시 항우의 손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일거에 뒤집어 놓은 것이 바로 배수진을 구사한 한신의 조나라 격파였다.

앞에 산이 있고 뒤에 강이 있는 사지에서 오히려 승리할 수 있다.

조조는 『손자병법』 「구지」에 나오는 ‘사지’ 및 ‘망지’와 관련해 풀이하기를, “앞에 높은 산이 있고, 뒤에 강물이 있어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나려고 해도 장애가 있는 곳을 말한다.”고 했다. 살아날 길이 거의 없는 곳으로 풀이한 것이다. 그러나 조조는 한신이 그랬듯이 바로 이런 ‘사지’와 ‘망지’에서 살아날 계책을 찾아낸 것이다.

순욱과 곽가의 격려도 바로 조조의 이런 능력을 알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관도대전 당시 누가 볼지라도 접전이 벌어질 때 조조의 패배는 불을 보듯 빤했다. 이를 뒤집을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조조에게 있었다. 뛰어난 무략(武略)이 그것이다. 한쪽이 뛰어난 무략을 지니면 객관적인 무력의 우위는 별다른 효험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통상적인 병법원리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조와 원소가 건곤일척의 결전을 벌인 관도대전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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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도 이야기했다.
“심사숙고할 시간을 가져라. 그러나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온다면, 더는 생각은 하지 말고 운명을 걸고 뛰어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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