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평전>
사임당,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최근 사임당은 ‘현모양처’ 신화에서 조금씩 해방되는 중이다. 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 조선 시대의 상황과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 등이 소개되면서 사임당은 자녀를 위해 희생했던 어머니나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하는 아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 사임당은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살았던 예술가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친정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예술가’라는 평가도 있다. 사대부가의 여성으로 태어났고 시집살이를 하지 않아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임당 평전』은 친정이나 신분의 덕을 본 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엄밀한 고증을 통해 기존의 평가들을 뛰어넘고 치열하게 살았던 예술가 사임당의 참모습을 조명한다.
일평생 군자로 살고자 했던 주체적인 여성
저자는 먼저 사임당이 언제나 군자(君子)의 길을 걸었음을 다양한 문헌에 따라 밝힌다. 조선 시대에 군자란 남성을 위한 말이었지 여성을 위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대부들은 사임당을 군자라고 불렀다. 사임당은 군자로서 불의와 타협할 수 없었기에 남편이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을 하면 망설임 없이 지적했다. 7남매를 가르칠 때는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자신부터 훌륭한 인격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들이 각자의 목표를 세울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군자 사임당은 스승 같은 어머니였고 망설임 없이 조언하는 아내였다. 규방 속에서만 살지도 않았다. 강원도·서울·경기도를 넘나드는 역동적인 삶 속에서도 피나는 노력으로 많은 작품을 완성해 냈다.
부단히 자신을 갈고닦아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이룬 예술가
사임당이 시와 그림에 능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상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오랜 시간 사임당의 미의식을 연구해 온 저자는 유가 미학을 근거로 사임당의 작품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길어 낸다. 사임당이 추구했던 가치들이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도 밝힌다. 어머니를 그리는 시 속에서 사임당의 지극한 효심을, ‘사임당서파(師任堂書派)’가 형성될 정도로 탁월했던 서예 작품에서 사임당의 올곧은 인격을, 화조도에서 사임당의 간절한 소망을 포착한다. 모든 분석에는 사대부들의 발문과 전문가의 평가가 꼼꼼하게 제시되어 있어 독자들은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사임당에 대한 각양각색의 평가를 두루 읽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임당 평전』은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살았던 예술가의 세계를 가장 정확하고 생생하게 소개한다. 90여 장의 선명한 도판은 시·글씨·그림·자수 작품에 깃들어 있는 사임당의 성품과 미의식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산수화와 매화도에서는 군자의 길을 걷고자 했던 사임당의 의지를, 탐스러운 포도 그림에서는 엷은 먹빛과 짙은 먹빛의 절묘한 조화미를 느낄 수 있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섬세한 묘사가 일품인 초충도에서는 미물들의 생명력은 물론, 가장 작고 평범한 생명에 남다른 애정을 주었던 사임당의 따뜻한 시선까지 전해진다. 독자들은 소재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초월한 작품이 주는 편안함과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저자 ㅣ 유정은
강원대학교 철학과에서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나타난 예술 철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신사임당 예술 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철학과 여성 철학, 그중에서도 조선 시대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에 관심을 두고 있다. 16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경직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열등한 존재가 되어 버린 여성들의 삶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지위가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빛을 발했던 대표적 여성인 신사임당의 예술가적 역량과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주요 연구로는 「신사임당 <초충도>의 미의식 연구」(2011), 「신사임당 가계의 효행관 고찰」(2015), 「차강 박기정의 선비 정신과 예술 정신 연구」(2016) 등이 있다. 현재 강원대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