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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08. 2016

02. 낙서화를 따라 관광코스가 만들어지다.

<미술, 세상을 바꾸다>

뱅크시가 체포됐다고?


“뱅크시가 체포됐다.” 영국과 미국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기사다. 2013년 2월에는 한 인터넷 언론에 뱅크시가 런던 경찰에 체포된 사진과 얼굴사진이 게재되었다. 그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낙서 화가, 정치적 행동주의자, 영화감독으로 오랫동안 뱅크시라는 가명으로 활동해온 인물이 드디어 런던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새벽에 그를 체포해 심문하고 런던에 있는 작업실을 급습해 그동안 감춰졌던 그의 정체를 밝혀냈다. 뱅크시의 진짜 이름은 폴 윌리엄 호너로, 브리스틀 출신이고 39세이다.

뱅크시의 체포 소식이 알려지자 런던 경찰청에는 뱅크시를 사칭하는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으며, 오후 6시경에는 수백 명의 시민들이 경찰서 밖에 모여 “내가 뱅크시다!”라고 외치며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여기저기에서 진위여부에 대한 기사들이 나왔다. 「허핑턴 포스트」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가짜 뱅크시였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그리고 며칠 후 뱅크시의 그림이 브리스틀의 한 벽에 나타났다. <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작품으로, 뱅크시가 지금까지 해온 표현방식과 달라서 잠시 설왕설래 했으나 그것이 뱅크시의 홈페이지01에 게재되면서 그의 그림으로 확인됐다. 이 그림으로 뱅크시가 여전히 불법 낙서화를 그리며 건재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귀걸이를 한 소녀>, 뱅크시의 고향 브리스틀에 그려진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패러디한 낙서화. 귀에는 진주 귀걸이 대신 ADT 도난방지시스템의 마크가 매달려있다.





“그 그림은 당신 것이오”

뱅크시가 언론을 크게 장식한 또 하나의 사건은 브리스틀의 브로드 플레인 소년 클럽의 문에 그린 <휴대폰 연인들>에 관한 것이다. 브로드 플레인 소년 클럽은 브리스틀의 젊은이 클럽(Youth Club, 젊은이들의 건전한 직업 및 사회활동을 돕고자 운영되는 단체. 한국의 YMCA와 비슷하다) 중 하나로 활동이 부진해 12년째 문을 닫고 있던 곳이었다. 2014년 4월 어느 날 뱅크시가 브로드 플레인 클럽의 문에 그림을 그렸다. 이후 <휴대폰 연인들>이라 불리게 되는 이 그림은 젊은 연인들이 서로를 안고 있을 때조차 각자의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뱅크시가 브리스틀 시 브로드 플레인 소년 클럽의 문에 그린 <휴대폰 연인들>, 2014.


그림을 발견한 클럽 주인은 그림이 훼손되거나 도난당할까 봐 문짝을 떼어 건물 안에 들여놨다. 이 그림에 관한 소식이 알려지자 시의회와 경찰, 브리스틀 시립미술관 등이 서로 그림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이를 보다 못한 뱅크시는 클럽 주인에게 “그 그림은 당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이후 주인은 이 그림을 경매에 내놨고, 작품은 40만 3천 파운드 (약 6억 8천만 원)에 팔렸다. 클럽 주인은 “12년간 닫혀있던 120년 전통의 클럽을 다시 열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뱅크시에게 감사한다”라고 말했다.

뱅크시는 홈페이지에 그림을 올리는 한편 문답란을 만들어 질문에 답하기도 한다. “당신이 길 위에 그린 그림을 파는 사람들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는 “어렸을 때 나는 로빈 후드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라고 답한다. 로빈 후드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의적이었다. 그는 우스갯소리지만 자신을 의적에 비유하고 있다.

뱅크시는 이제 영국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작품 가격이 비싼 작가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에 매겨진 높은 가격에 불편한 감정을 수시로 드러낸다. 현재까지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은 일명 데미언 허스트 망가트리기로 유명한 <점 없애기>이다.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이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것을 야유하는 의미에서 그의 작품 <점>을 패러디한 것이다. 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 등으로 그린 이 작품은 2008년에 20억 원 이상에 팔렸다. 원래 예상가는 3억 원 내외였으나 치열한 경쟁의 결과 가격이 이렇게 높아진 것이다.


<점 없애기>, 캔버스에 스프레이 페인트, 2008. 일명 ‘데미언 허스트 망가트리기’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그림을 뉴욕 시 거리에 놓고 팔아서 화제가 된 일도 있다. 2013년에 그는 한 노인으로 하여금 센트럴 공원에서 한 작품당 60달러에 팔도록 해, 하루 420달러를 벌었다. 그의 작품은 최하 2만 5천 달러를 호가하는데 이날 하루 반짝 세일을 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벽이 허전하다며 4점의 작품을 구매한 시카고 주민은 횡재를 한 셈이 됐다.

나는 뱅크시 작품을 즐기는 한편 여러 측면에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붕괴하기 전까지는 이 세계를 조금도 바꿀 수 없다. 그때까지 그저 쇼핑이나 하면서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라고 그가 자조적으로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 뱅크시는 작품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관한 자신의 의사를 줄곧 밝혀왔다. 그 내용은 뒤에서 작품과 함께 살펴볼 예정이다.

다음 내용은 2007년 3월 『아트 인 컬처』에 발표했던 글을 다듬어 옮긴 것이다. 아래 글이 쓰인 7년 전과 오늘 사이에 뱅크시에겐 큰 변화가 있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는 것, 그리고 이제 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이다.


낙서화를 따라 관광코스가 만들어지다

뱅크시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가장 베일에 싸여있는 화가기도 하다. 뱅크시란 이름은 가명으로 진짜 이름은 물론 출생, 나이, 성장배경, 얼굴, 주소 등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스스로 개인정보를 철저히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유일하게 직접 인터뷰를 했다는 「가디언 언리미티드」의 기자 사이먼 하텐스톤은 이렇게 썼다.

뱅크시는 28살의 남자이며, 지미 네일(영국의 영화배우)과 마이크 스키너(영국의 래퍼)가 뒤섞인 듯한 인상이었다.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으며 은 귀걸이와 은사슬을 착용하고 있었다.

 2003년 7월 17일 자 신문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쩌면 당신은 그를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분명 그의 작품을 보았을 것이다. 스마일마크 얼굴의 경찰들부터, 총 대신 바나나를 든 「펄프 픽션」 총잡이에 이르기까지 뱅크시의 도발적인 작품들은 도시 곳곳에 널려있다.


영화 「펄프 픽션」의 한 장면. 권총을 바나나로 바꿔 그렸다. 런던. 2007.


뱅크시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낙서 화가로 그 이름은 가명이다. 그 익명성이 그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다. 낙서화는 범법행위이기 때문이다. 공적으로 그의 존재가 알려지는 날이 그의 낙서화가 끝나는 날이 될 것이다.

뱅크시의 흑백스텐실은 아름답고, 재기발랄하며, 부드럽게 도발적이다. 그의 작품은 미소 짓는 경찰, 드릴 전동구를 가진 쥐,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는 원숭이, 미사일폭탄을 껴안은 소녀, 털이 복슬복슬한 개를 데리고 산보하는 경찰, 총 대신 바나나를 발사하는 「펄프 픽션」의 새뮤얼 잭슨과 존 트라볼타, 무정부(Anarchy)란 글씨를 쓰고 있는 왕실근위병 등이다. 그는 작품에 굵고 빠르게 쓴 글씨로 서명을 남긴다. 재미있는 말, 풍자, 의견, 혹은 선동문 등을 남길 때도 있다.

뱅크시는 게릴라 아티스트, 아트 테러리스트 등으로 불리며 “그를 보면 21세기 미술이 보인다”와 같은 평가를 듣는다. 그는 미술계와 대중 양측으로부터 화제를 불러 모으는 스타 아티스트다. 뱅크시는 유명 록밴드 블러의 2003년 앨범 「싱크 탱크」의 재킷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낙서화를 따라 런던을 돌아보는 관광코스가 만들어졌고, 2006년에는 뱅크시의 작품이 있는 장소를 안내하는 책(마틴 불, 『뱅크시 작품 투어(Banksy Locations & Tours)』, 셀 쇼크 퍼블리싱)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인기를 알 수 있다.


록밴드 블러의 앨범 「싱크 탱크」 재킷, 2003.


뱅크시의 작업은 길에서 시작됐다. 그 자신의 고백에 따르면 14살부터 낙서화를 시작했다니 줄잡아 20년 이상을 길 위에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낙서화는 숱하게 그려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최근에는 창고를 빌려 전시를 하기도 하고, 제도권 미술의 초대를 받아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기도 한다. 200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시가 열린 후 그의 작품은 할리우드 유명인들의 관심을 끌면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뱅크시의 작품을 2만 5천 파운드(약 5천만 원)에 구매했다.

뱅크시가 유명해지고 그의 작품 가격이 오르자, 그가 그린 낙서화를 지우던 사람들이 이제는 벽을 새로 칠할 때도 그의 작품은 남겨놓고 칠하는 식으로 작품을 보존하고 있다. 최근에 그려진 작품들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그려지자마자 투명 아크릴판으로 보호하거나, 아예 그림 부분만 떼어내 따로 보관 전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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