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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Sep 07. 2016

10. 500만 원이라는 모래성

<나는 언제나 술래>

일하다 보면 가끔 뭔가에 대해서 내가 말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책임져야 할 상황들이 생긴다. 과자 장수를 하다가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기 위해서 500만 원이 필요했다. 빠듯한 생활비에서 뺄 수가 없다. 번 것에 맞춰 생활하다 보니 얼마를 벌든 빠듯하다.

     
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 일이 잘되면 금방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이 문제지 좀 지나면 금방 일들이 풀릴 것 같았다. 한 달 정도 일이 잘 풀리는가 싶더니 장사 규모만 조금 커지고 다시 빠듯해진다. 좀 있다가, 조금만 있다가 하다가 1년이 지나 버렸다.
   

  
안 되겠다 싶어서 돈을 조금 모아 놓았는데 자동차 보험료가 나와서 헐어 쓴다. 또 조금 모아 놓으니 휴가에다 부모님을 찾아뵈면서 쓰게 된다. 조금 모았는데 집에서 또 내가 뭔가 해결해야 할 상황이 생겨 버린다. 도망칠 수 없는 상황들, 내가 돈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 싸우게 되고, 숨 막히는 분위기가 싫어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조금 모아 놓은 돈을 또 헐어 쓴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간간이 친구와 안부 전화를 하게 된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빌린 돈은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하게 된다. 친구는 묻지도 않는데 상기시키고 상기시킨다. 왠지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시간이 좀 더 지나니 내가 갚았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힘이 들수록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그럴 때면 더 마시게 된다.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마시지만 벗어나 지지 않는다. 
     
그렇게 1년이 더 지나서 문득 깨닫는다. ‘아, 갚을 수 없는 돈이구나. 돈 잃고 사람 잃게 하는 게 이런 거구나.’ 돈을 갚으면서 친구에게 술이나 한잔 사겠다고 했다. 이자는 아니더라도 술이라도 한잔 사야겠다고. 기분 좋게 너무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그냥 주고 싶었단다. 그냥 줘도 아깝지 않은 친구라서. 나라서 말하지 못했단다. 내가 누군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 그렇게 말하지 못했단다. 돈 갚아줘서 너무 고맙단다. 너무 잃고 싶지 않은 친구여서.
     
나만 생각한 것 같다. 친구는 내가 불편한 2년 동안 내 비위를 맞추면서 내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냥 준다고 했으면 좋았는데. 괜히 빌려줘서 어떤 형태로든 됐다고 말할 수도 없었던 거다. 그렇게 친구가 마음고생을 한 거다. 
     
중학교 때 알았으니까 30년쯤 된 것 같다. 술을 마시면서 또 알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살면서도 모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근성 있고, 노력하고, 어떤 난관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믿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나에 대해 알게 된다. 잊고 살던 날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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