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무기력의 비밀> 연재 예고

<무기력의 비밀>

by 더굿북

무기력 시스템


5시 30분, 거의 마지막 진료 시간 무렵에 가까스로 도착한 고등학생이 의자에 앉자마자 첫 마디를 던진다. “선생님, 하루 종일 자다 와서 허리 아프니까 진료는 짧게 끝내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등교를 거부하고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님 손에 끌려오다시피 왔다. 입을 꾹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가 20여분 만에 이렇게 말했다. “나 안 해, 안 할 거라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하고 집에만 있던 아이가 입대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고 찾아왔다. 부모님은 무려 3년을 집에서 지낸 아이가 도저히 군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걱정했다. 아이에게 군대에 대해서 물었다. “아무 생각 없어요.”

생기로 넘쳐야 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무기력한 상태로 지내는 아이들이 도처에 있다. 많은 부모와 교사가 무기력한 아이들이 넘친다고 호소한다. 정확히 추산할 수는 없지만 그런 아이들이 정말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텅 빈 상태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마주치면 주로 잠자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 바라보는 어른들이 더 힘들다고 난리다.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는 상태로 지내본 경험이 별로 없는 빈곤국이나 개발도상국 시절에 성장한 부모와 교사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느니 ‘아무 것도 안 할 것’이라느니 ‘포기했다’느니 더욱이 ‘아무 생각도 없다’는 말은 기성세대에게는 금기어이다시피 한 말들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후렴구처럼 달고 사는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어른들이 많다. ‘어렵지만 해내고야 말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끝장을 보겠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은데 말이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진료실에 오는 아이들도 당연히 늘었다.

“어릴 때는 수영, 축구, 피아노, 영어, 수학 다 시키면서 모든 것을 잘했으면 하고 바라더니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까 다 필요 없고 영어, 수학만 하라는 거예요. 축구를 잘해서 클럽 대항전에서 우승할 때는 좋아하더니 영어, 수학만 하라니 배신은 엄마 아빠가 먼저 한 거 아닌가요?”

상담했던 초등학생의 말이다. 장래희망이 축구선수인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와의 다툼 끝에 아이는 무척 실망하고 화가 나 있었으며 학원을 빠지고 있다고 했다. 대단한 비행은 아니지만 나쁜 짓도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으니 자신은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지낼 생각’이라고 부모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배신은 엄마, 아빠가 먼저 시작한 거 알지?”라고 덧붙였다.

무엇이든 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을 모두 시킨 것은 부모였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서 공부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것은 많은 대한민국 부모가 보여주는 일반적 행태이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다.

아마 경로와 방식은 다르더라도 이런 환경 속에서 일부 아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무기력이라는 늪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이 책에서 무수히 반복해서 나오겠지만 요즘 아이들과 청년들의 무기력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독자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나는 그러지 않았어’라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는 수동적 동조자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다. 강준만 교수의 책 <입시전쟁 잔혹사>를 훑어보아도 이 시스템은 정말 오래되었고 아무리 개선하려고 애써도 잘 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말하기도 부끄럽고 지겹지만 ‘승자독식’과 ‘획일성에 따른 평가’ 그리고 ‘끝없는 서열화’가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어온 시스템이다. 아마 이런 시스템을 유지해야만 하는 속사정이 있는 사람들과 이를 극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싸워온 역사가 지속된 거겠지만 애석하게도 결과에는 큰 변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에 입학한 아이들에게만 기회와 관심, 사랑을 주는 시스템이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 아니, 더 가속화하고 심원해졌다고 할 수 있다(경제학자 및 사회학자들은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이런 현상의 가속화에 더욱 불을 붙였다고 주장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만 학교 독서실을 이용할 수 있는가 하면 전교 1등부터 50등까지만 햇살이 잘 드는 교실에 앉아 온갖 서비스를 받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성적에 따라 급식 순서를 달리하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이 혹독한 차별과 경쟁은 헝거 게임과 다름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살아남는 자만이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승자는 승자대로 불행해지고 다수의 패자는 패자이기에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대다수가 패자의 위치, 성공의 뒤안길에서 도태당한 느낌에 빠져 지낸다. 어찌 보면 참 식상한 이야기 같지만 그 결과 상당수 아이들과 청년들은 현재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 우리가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지금 사회의 방식은 바로 무기력 시스템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시작하는 첫 번째 화두다.


무기력에 대한 둔감함

최근에 일어난 아동학대 관련 뉴스를 모두 보고 들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가 배가 고파서 배수관을 타고 탈출하다 발견되었고, 자신의 자녀를 살해해서 시신을 유기한 부모도 있다. 그저 끔찍한 일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하기에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굶기고 때리고 시신을 유기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반사회적 인격장애 또는 사이코패스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마음을 놓으면 되는 걸까? 다 같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들에게 자식은 무엇이었을까? 게임을 하느라 굶기고 말 안 듣는다고 때리고 아프다고 울어도 그냥 내버려 두는 그 마음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모두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난 일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아이들은 곳곳에서 푸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리 이런 일들이 벌어져도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무역 대국이 되어 엄청난 부를 쌓은 나라라고 떠들면서 아이들이 겪는 이런 불행에는 둔감하다. 어떤 이들은 아이들에게 투표권이 없어서 그렇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극히 일부분만 드러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 사회는 아동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주 부족할뿐더러 아동의 권리를 무시한다. 오늘날 아동은 소비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부모와 교사의 욕망으로 소비되고 정치가의 선전으로 소비되고 텔레비전 스타에 의해 소비되고 학원의 고객으로 소비되고 게임과 핸드폰 중독자로 소비된다. 이런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의 삶이 민감하게 존중받기란 참 어렵다. 한마디로 우리는 아동을 존중하는 일에 매우 둔감하다.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하고 싶은 두 번째 화두는 둔감함, 생각 없음,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음이다. 한 아이가 무기력해졌다는 것은 실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아동기와 청소년기 몇 년을 무기력하게 지낸다는 것은 한 아이의 인생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거나 혹은 무기력해진 뒤에야 발견하고 그제야 아이들의 아픔, 슬픔, 문제를 알게 된다. 하나의 큰 사건이 아이의 무기력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작은 일들의 반복이 쌓여 무기력해지는 사례가 더 많다. 그런데 우리는 잘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다 어느 날 ‘이 아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하고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객관적으로 묻는다.

민감한 부모나 교사라면 열정, 동기, 흥미를 잃어가는 아이에게 촉수를 세우고 아이를 위한 변화를 함께 모색해가지만 대부분 어른들이 하는 일이란 무기력한 아이를 혼내는 것이다. 이미 무기력해진 아이에게 자신의 끓어오르는 열과 화를 못 참고 실컷 혼을 낸 다음에는 아이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미 무기력해졌기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어른도 덩달아 무기력해져서 이제 아이를 포기해야 하나 싶어 자포자기하게 된다.

아이들이 무기력해지는 과정에 대한 민감함, 이미 무기력해진 아이들에 대한 세심함, 이런 섬세한 배려 없이는 무기력해지는 아이들을 막을 수도 없고 이미 무기력해진 아이들에 대한 변화를 만들기도 어렵다. 무기력한 아이들이 청년이 되면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정말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 어른들의 둔감함이 변화하지 않는 한 이 악순환은 현재 진행 중이며 아마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무기력은 비명이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다 싫어.”
“나 좀 그냥 내버려둬.”

이런 이야기를 자녀나 학생들에게 들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가끔씩 툭툭 내던지는지, 그것도 아니면 매일 입에 달고 사는지? 그렇다면 응급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명이요, 무기력한 아이들의 침묵은 더 큰마음의 목소리다. 희망 없음(hopeless)을,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태(helpless)임을, 자신을 포기하고 싶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듣고 있나? 불복종으로 들리는가? 게으름을 허락해달라는 투정으로 들리는가? 회피하고 싶다는 비겁함으로 느껴지나?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라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고 있나? 그럼 숨은 왜 쉬고 먹기는 왜 먹느냐고 할 것인가?

한 아이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고 또 하지 않은 채 빈 가방만 매고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또는 한곳에만 머무르며 갇혀 있으려고 한다는 것은, 지금 그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주 큰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는 어른, 친구,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아이의 몸은 자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이의 영혼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 소리 없는 비명에 귀 기울일 줄 알아야, 이 소리를 들어야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 단지 잠에서 깨워주는 것만이 부모의 일은 아니다. 영혼을 살리지 않으면 깨어 있어도 살아 있는 시체, 좀비나 다름없다. 시간을 죽이며 자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의 영혼과 마음을 살펴주어야 다시 파릇파릇하게 살아날 수 있다. 해리 아폰테(Harry J. Aponte)의 말처럼 우리는 치료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의 무기력은 영혼의 빈곤을 낳고 결국 삶의 빈곤을 만들어낼 것이다.




저자 ㅣ 김현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 과정을 마친 뒤 ‘사는 기쁨 신경정신과’를 개업했으며 ‘빵과 영혼’이라는 상담 센터를 만들어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일을 했다. 청소년들의 학교 폭력, 왕따, 학업 중단, 가출, 인터넷 중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왔으며 2002년에 상처은 청소년들을 돌보는 ‘성장학교 별’을 설립하여 치유와 복지, 교육과 영성이 함께하는 대안학교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가고 있다. ‘성장학교 별’은 치유적 대안학교의 모델로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 프레네 교육을 도입하고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서울 강서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으로서 지역 정신보건, 자살 예방, 정신장애 등 공동체 회복을 위한 주민 조직에도 관심을 갖고 일하며 2012년부터 지역 정신보건을 위해 경기도 광역 정신건강증진센터장, 자살 예방을 위한 활동으로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맡아 운영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초기에는 안산에 세워진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장으로 세월호 트라우마 극복에 동참하기도 했다. 또 영등포 지역에서 노숙인 진료를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현재 서남의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및 주임교수로 있으며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부회장, 대한중독정신의학회 행위중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쓴 책으로 《공부 상처》, 《교사 상처》,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희망의 심리학》, 《중2병의 비밀》, 《아이들이 인터넷 게임 때문에 너무 아파요》, 《학교 폭력, 우리 아이 지키기》(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 《인터넷 중독증》, 《성폭력 피해 가족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 《빈곤 가족과 일하기》(공역), 《가정폭력 2002》(공역), 《정신장애로부터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공역) 등이 있다. 어려움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애써온 활동이 알려져 청소년보호위원회와 MBC로부터 청소년보호대상(2004)을, 정신보건 영역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상(2003, 2015)을, 노숙인 등 소외 계층 진료 등으로 서울시장 표창(2013)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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