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조언>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하는 것은 푸줏간, 술집,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해에 대한 배려다. 우리가 호소하는 것은 그들의 인류애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애심에 대해서이며, 우리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의해서다.”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장사는 자선 사업이 아니다. 푸줏간, 술집, 빵집 주인은 자애심(自愛心), 즉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기와 술, 그리고 빵을 판매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구매하여 저녁을 해결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스미스의 말은 당시에도 상당한 파급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부론》이 출간되자 영국의 철학자 흄(Hume, David, 1711~1776)은 “심원하고 견고하며 예리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오늘날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은 스미스의 말에서 자신들의 논거를 찾는다.
스미스는 자애심, 즉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이며 행위의 근원이라고 했다. 스미스가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스미스 이전에 그런 주장을 한 사람들은 많았다. 다만 스미스는 그 주장을 국부(國富: 국민의 부)의 성질과 연관시킴으로써 경제학의 토대를 놓았다. 오늘날에도 정치와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의 성격을 말할 때 스미스의 이론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국부론》을 독립적인 경제학 저작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철학자였다. 그의 강의는 자연신학, 윤리학, 정의론, 정치경제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스미스는 그 네 분야를 긴밀히 결합했다.
스코틀랜드의 현실
먼저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자. 스미스는 계몽주의 시대에 살았다. 당시 계몽주의의 중심은 프랑스였다. 스미스는 3년 동안 프랑스에 머물면서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볼테르를 비롯하여 중상주의자인 튀르고(Anne Robert Jacques Turgot, 1727~1781), 중농주의자인 케네(Françis Quesnay, 1694~1774) 등을 만났다. 특히 스미스는 루소를 좋아하여 그의 책을 탐독했지만, 스미스가 프랑스를 방문할 당시 루소는 영국에 머물렀기 때문에 만날 수는 없었다. 스미스는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와 평등의 사상을 공유했다.
스미스의 고향 스코틀랜드에도 계몽주의 시대가 있었다. 철학자 흄의 저서 《인성론(A Treatise of Human Nature)》이 출판된 1740년부터 스미스의 저서 《도덕감정론》 6판이 출판된 1790년까지 약 50년간 펼쳐진 지적 활기를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고 한다. 흄과 스미스, 그리고 스미스의 스승인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 1694~1746) 등이 당시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들이었다.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들이 직면한 주요 과제는 스코틀랜드의 현실이었다. 스미스가 태어나기 16년 전,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었다. 물론 통일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1603년에 잉글랜드의 왕 엘리자베스 1세가 죽자 당시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6세가 후계자가 되어 잉글랜드의 왕을 겸임하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제임스 6세의 어머니가 헨리 7세의 외손녀여서 잉글랜드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잉글랜드에서는 그를 제임스 1세라고 불렀다.
제임스 1세는 재위 기간에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통일시키려 했다. 그래서 자신을 그레이트브리튼의 왕(King of Great Britain)이라 했고 두 나라에서 공용되는 화폐를 만들었다. 그리고 두 나라의 국기를 합하여 국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오늘날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Union Jack)이다. 그러나 제임스 1세는 실질적인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각기 독립된 나라로 존재했다.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임스 1세의 뒤를 이은 찰스 1세와 제임스 2세는 왕권신수설에 근거하여 절대왕정을 추구했다. 이에 반대하여 청교도혁명(1649)과 명예혁명(1688)이 일어나 찰스 1세와 제임스 2세가 쫓겨났다. 이 과정에서 스코틀랜드에서는 왕들을 지지하는 반란이 일어났고 혁명파들은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제임스 2세의 둘째 딸인 앤이 왕위에 오른 직후인 1707년에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통일되었다. 앤은 잉글랜드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스코틀랜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에서는 통일에 반대하는 크고 작은 반란이 일어났고, 1745년에 정점에 이르렀다. 그해에 제임스 2세를 지지하는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런던 인근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곧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때 애덤 스미스는 스물두 살이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비록 스코틀랜드인이었지만 반란에 동의하지 않았다. 반란은 절대왕정을 추구하는 왕당파가 일으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왕정에 반대했다. 그는 자유와 평등의 사상을 확고히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스코틀랜드의 현실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상당수의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와의 통일에 부정적이었다. 제임스 2세를 지지해서가 아니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통일은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의 통합이었다. 잉글랜드인들은 우월감을 가지고 스코틀랜드인들을 대했다. 우월감은 차별 의식으로 이어졌다. 스미스 역시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면서 차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잉글랜드에는 일찍이 상공업이 발전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군사력을 증강하여 무적함대로 불렸던 스페인 함대를 격파하고 해상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상황은 달랐다. 남동부 저지대의 일부 도시에서는 잉글랜드의 영향을 받아 상공업이 발전하고 있었다. 반면 북동부의 고지대에서는 부족적인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인구의 대다수인 농민은 귀족들의 땅을 경작하는 소작농이었다. 스코틀랜드 귀족들은 잉글랜드 귀족의 사치를 따라 하기 위해 수탈을 강화했다. 농민은 곤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스코틀랜드의 후진성과 빈곤을 두고 스미스를 비롯한 스코틀랜드의 계몽사상가들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시민계급 출신이거나 시민화한 귀족 출신이었다. 그들은 중세적 질서를 거부했고 절대왕정에 반대했다. 그들이 1745년에 일어난 스코틀랜드 왕당파의 독립운동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스코틀랜드의 후진성을 고민했지만, 스코틀랜드 지역주의에 빠지지는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잉글랜드에 나타나는 문제점에도 주목했다. 경제성장에 따른 부의 획득과 그로 인한 도덕적 타락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보다도 도덕철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는 도덕철학에서 멈추지 않았다. 도덕철학은 인간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는 인간 탐구를 바탕으로 사회 탐구로 나아갔다. 그 결실이 바로 《국부론》이다.
동감은 인간의 본성이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은 잉글랜드의 학문적 전통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잉글랜드의 학문적 전통은 프랑스와 달랐다. 프랑스에서는 데카르트가 확립한 이성 중시의 전통이 이어졌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는 베이컨의 철학에서 비롯된 경험론의 전통이 강했다. 스코틀랜드의 계몽사상가인 흄은 경험론을 끝까지 밀고 나가 회의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회의론은 이성의 한계를 밝히고자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인과법칙의 부정이다. 먹구름이 끼면 비가 올까? 인과법칙에 따르면 먹구름이 원인이 되어 비라는 결과가 생긴다. 그러나 흄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했다. 먹구름이 끼면 비가 왔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관찰하다 보니 먹구름이 끼면 비가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뿐, 먹구름과 비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흄의 주장은 당대 철학과 과학에 청천벽력이었다. 인과관계가 부정된다면 과학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리고 과학의 성과를 반영한 이성주의 철학은 근거를 상실한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일생을 두고 흄의 주장과 맞서 싸웠다.
흄은 이성의 한계를 밝힘으로써 이성 이상으로 감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자 했다. 이성론자에 따르면 감정은 이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할 것에 불과했다. 인간이 감정에 휘둘린다면 무질서와 혼란만 일으킬 뿐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계몽사상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흄이 보여주었듯이 감정은 모든 인간 행위의 근원으로서 탐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미스가 주저의 제목을 ‘도덕감정론’이라 붙인 것도 그래서였다.
스코틀랜드의 계몽사상가들은 인간의 감정 중 이기심에 주목하여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잉글랜드의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와 로크에게서 왔다. 홉스와 로크는 인간의 이기심에서부터 사회계약론을 끌어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어서 자연 상태에서는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 일어나거나(홉스), 개인의 권리가 충분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로크)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투쟁을 종식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서로 계약을 맺어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만들었다.
홉스와 로크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이기심을 억제하기 위해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 홉스는 국가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가를 괴물인 ‘리바이어던(Leviathan)’에 비유했다. 로크는 국가가 괴물과 같은 권한을 갖는 존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국가가 통제력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스미스는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반대했다. 왜 그러한가? 인간은 이기적 존재인 동시에 이기적이지 않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의 첫 문장에서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상정하더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 원리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도덕감정론》은 바로 이기심과 상반되는 원리들에 관한 탐구다. 그는 상반되는 원리의 핵심을 ‘동감(Sympathy)’이라고 했다.
동감이란 “타인이 처한 상황에 우리 자신을 설정해놓는 상상 때문에 우리는 타인과 완전히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느끼려 하는 감정”이라고 했다. 스미스는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이거나 사회의 법률을 아주 극렬하게 위반하는 사람일지라도 동감의 감정이 있다고 했다. 즉 동감은 모든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타인의 행복과 슬픔을 함께 느끼며 타인의 행복을 위한 행위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도덕감정론》에 등장하는 유명한 얘기를 보자.
“중국이란 대제국이 그 무수한 주민과 함께 갑자기 지진에 의해 사라져버렸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세계의 이 부분과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았던 유럽의 어떤 인도주의자가 (…)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인지를 상상해 보자. (…) 그의 인도적 감정을 모두 공평하게 표현한 후에, 그는 그러한 돌발 사건이 전혀 발생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마음의 평정과 가벼움을 가지고 자신의 사업 또는 쾌락을 추구할 것이다. (…) 만약 그가 내일 그의 새끼손가락을 잃어야 한다면 오늘 밤 그는 잠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1억 명의 이웃 형제의 파멸이 있었더라도, 만약 그가 직접 그것들을 본 것이 아니라면, 그는 깊은 안도감을 가지고 코를 골며 잠잘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 거대한 대중의 파멸은 명확하게 그 자신의 하찮은 비운보다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 대상인 것 같다. 그래서 인도적인 사람일지라도 그 자신에 대한 이 하찮은 비운을 방지하기 위하여 1억의 이웃 형제의 생명을, 만약 그가 그것을 절대 보지 않았다고 한다면, 기꺼이 희생시킬 것인가? 인간의 본성은 그러한 생각에 공포를 느끼며, 그리고 세상은, 아무리 부패하고 타락했더라도 그러한 상황을 즐길 수 있을 그러한 악한은 절대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가?”
인간은 중국의 재앙보다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더 염려하는 ‘야비하고 이기적’인 존재다. 이를 일컬어 스미스는 “인간의 수동적 감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위해 1억 명의 이웃 형제들을 희생시키려고 생각하지 않는 존재다. 이를 일컬어 스미스는 “인간의 능동적 원리”라고 했다. 스미스는 인간이 수동적 감정보다 능동적 원리를 우선시한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스미스는 우리 마음속에 ‘중립적 관찰자’라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미스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우리가 타인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할 때마다 우리의 가장 몰염치한 열정을 깜짝 놀라게 하는 큰 목소리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다. 즉 우리는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서도 그 속의 어떠한 타인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우리가 그렇게 후안무치하고 맹목적으로 우리 자신을 타인들에 우선시킨다면 우리는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리가 자신들과 자신들에 관련하는 모든 것이 실제로 사소하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직 이 중립적 관찰자로부터이고, 이 중립적인 관찰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기애(自己愛)가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정정할 수 있다.”
인간은 이기심에 빠지기 쉬운 잘못된 생각을 정정할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중립적 관찰자’가 있기 때문이다. 중립적 관찰자란 ‘이성’, ‘원칙’, ‘양심’, ‘마음속의 거주자’, ‘내부의 사람’, ‘우리의 행위의 재판관이자 조정자’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기심을 근거로 국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홉스와 로크의 입장, 즉 사회계약론은 올바르지 않다. 인간은 동감 능력을 갖추고 자신을 통제하며, 타인의 행복에 이바지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존재다.
이러한 스미스의 주장은 인간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다. 인간은 이기적 본성과 아울러 타인의 행복과 고통에 동감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기심에 이끌려 행위를 하지만 중립적 관찰자의 본성으로 인해 자기 이익에만 파묻히지 않고 타인의 이익과 행복에 이바지한다. 개인의 이기적 행위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회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명제가 여기에서 도출된다. 따라서 결론은 명백하다. 국가가 인간을 통제할 필요가 없다. 인간을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보이지 않는 손’이 인간을 인도한다.
《국부론》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도덕감정론》과 같다.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프랑스어로 표현하면 ‘레세-페르(Laissez-faire)’다. ‘레세’는 영어의 ‘렛(let)’에 해당하고 ‘페르’는 ‘두(do)’에 해당한다. 비틀스의 노래 제목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렛잇비(Let it be)’다. 스미스가 ‘레세-페르’를 주장한 이유는 인간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낙관했다. 그렇다고 인간의 행위가 ‘저절로’ 사회적 이익에 부합하게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국부론》은 ‘분업’에서부터 시작한다. 스미스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핀 공장의 사례를 들어 분업의 효과를 말했다. 아무리 부지런한 사람이라도 혼자서 핀을 만들면 하루에 20개를 만들기도 어렵다. 그런데 분업을 통해 10명이 하루에 4만8,000개의 핀을 만들었다. 한 사람당 4,800개의 핀을 만들 수 있다. 분업은 공장 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사회적으로도 분업이 일어난다. 우리가 입는 모직 옷을 보자. 양치기, 양모 선별, 양모 정돈, 염색, 방직, 직조, 재단, 운반 등 수많은 사람의 작업을 거쳐 옷 한 벌이 만들어지고 우리 손에 들어온다.
왜 분업이 일어나는가? 스미스는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성향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은 어떤 물건을 다른 물건과 거래하고 교환하며 교역하려는 성향이 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협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푸줏간, 술집, 빵집 주인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스미스는 그 주인들에게 자애심과 이익을 말하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그것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원하는 이것을 드리겠소.”
이렇게 하여 거래와 교환이 이루어지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분업이 생겨난다. 그러면 분업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스미스는 “분업의 결과 생산물이 대폭 증가하여 최저 계층의 사람들에게까지 보편적인 부를 가져다준다”고 했다. 즉 최저 계층의 사람들까지도 이익을 얻어 부를 획득하게 된다. 분업은 상호 이익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사회적 이익에 이바지한다.
이제 애덤 스미스 하면 떠오르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그 구절은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 각각 한 번씩 등장한다. 먼저 《도덕감정론》을 보자.
“부자들의 자연적 이기심과 탐욕에도 불구하고 (…) 그들은 자신들의 여러 개량의 산물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어 가진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어 토지가 모든 주민에게 평등한 몫으로 분할되었을 때 행하여졌을 것과 거의 같은 생활필수품을 분배하게 된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로) 의도하거나 알지 못하면서도 이렇게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고 종족 증식의 수단을 제공하게 된다.”
여기에서 ‘부자들’은 토지 소유자를 가리킨다. 토지 소유자는 더욱 많은 농작물을 얻기 위한 이기심에 수많은 사람을 고용한다. 그러나 부자의 입으로 들어갈 수 있는 농작물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그 나머지는 피고용인들의 입으로 들어가므로 부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회의 이익을 증진한다. 이러한 스미스의 논리는 사실 설득력이 없다. 그러나 스미스가 ‘토지를 평등하게 분할했을 때와 거의 같은 생활필수품을 분배’하는 것을 사회의 이익이라고 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미스는 높은 수준의 이익 분배를 말하고 있다. 이런 분배가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신의 섭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멋을 부리기 위한 수사적 구절도 아니다. 스미스는 멋과 무관한 진지한 사람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중립적 관찰자’를 가리킨다. 중립적 관찰자의 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회적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하도록 인간을 인도한다. 인간은 무한대로 자기 욕망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성 혹은 양심 혹은 마음속의 거주자에 의해 욕망이 절제되고 통제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분배한다. 또한,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선시하면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높은 수준의 분배를 하게 된다.
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을 도용당하다.
이제 《국부론》에 등장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보자.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의도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가 얼마만큼 그것을 촉진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국외의 근로보다는 국내의 근로를 유지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그는 그저 자신의 안전만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고, 또 그 근로를 그 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가지는 방법으로 방향을 부여함으로써 그는 다만 그 자신의 이득만을 의도하고 있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그의 의도 속에는 전혀 없었던 목적을 추진하게 되는 셈이다.”
이 부분은 수입 제한을 폐지하라고 촉구하는 대목에 나온다. 스미스의 주장은 앞에서 소개한 분업의 논리에서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직물 수입을 제한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모직물 제조업은 독점되고 자본은 모직물 생산에 몰린다. 이런 식으로 자본이 일부 독점 업종에 몰리면 사회적 분업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본이 모직물 생산에 몰려 신발 생산이 쇠퇴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생산물이 증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저 계층의 사람들에게까지 보편적인 부를 가져다줄 수 없다. 수입 제한 조치는 자본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지시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불필요하고 해롭다. 기업가는 자본을 어디에 써야 이익이 되는지 잘 안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수입 규제를 폐지하고 기업가가 하려는 대로 놔두어라.
기업가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를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적 이익을 증진한다. 이러한 스미스의 언급을 두고 ‘보이지 않는 손’이 인간의 이기적 행위를 정당화한다고만 이해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도덕감정론》에서 보았듯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사회적 이익과 연관하여 사용했다. 그것이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일원인 스미스의 문제의식이었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은 개개인의 이익 추구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스미스의 스승인 허치슨은 개인의 이익 추구가 저절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게 된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는 의식적인 노력 속에서 공공의 이익에 이바지하게 된다고 했다.
스미스는 스승의 주장을 이어받아 인간이 이기적 행위를 하면 저절로 사회적 이익이 실현된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받아 사회적 이익에 이바지한다. 처음부터 사회적 이익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의 처지, 고통, 행복에 동감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행동함으로써 사회적 이익이 증진되는 것이다. 인간은 마음속에 있는 이성과 양심인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적 이익에 공헌하기 위해 의식적 노력을 한다.
스미스는 두 가지 권력에 대항했다. 우선 인간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정치권력에 반대했다. 그리고 독점적 이익을 누리는 경제권력에도 반대했다. 정치권력은 인간의 자유를 부정하고 경제권력은 평등을 부정한다. 스미스는 자유와 평등의 사상 위에서 권력을 비판했다.
그런데 오늘날 권력을 옹호하기 위해 스미스의 이름이 ‘도용’되고 있다.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면서 시장을 숭배한다. 시장 원리, 시장 논리가 지고지선(至高至善)이라고도 한다. 시장 논리는 모든 것 위에 군림하며 지배하는 리바이어던, 즉 괴물이 되었다.
한 예로 노동시장을 들어보자. 노동시장이란 노동자를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 취급하자는 것이다. 이 노동시장에서 기업가는 노동자를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즉 기업가 마음대로 고용하고 해고하게 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가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희생시키자는 얘기와 같다.
스미스는 그런 행위를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그는 기업가의 이기심보다 사회적 이익을 우선시했다. 사회적 이익은 노동자들이 함께 이익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이 스미스가 주장한 정의였다. 따라서 노동자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자들은 그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손’, 즉 이성과 양심이 없는 자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