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는 공부가 할 수 없는 것들
감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각이 생기는 과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감각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자극이 감지된 것이니, 자극이 필수적이다. 여기에서 ‘자극’은 피부에 무엇인가가 접촉하여 발생하는 자극도 있지만, 시각적으로 지각되는 것과 같은 비접촉적인 자극도 있다. 하지만 시각도 빛을 매개로 지각되므로 양자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자극이 감각의 필수요소라는 점이다.
자극에 반응해 감각수용체가 받아들인 신호는 감각신경을 따라 중추신경에 전달된다. 이 신호를 받아 신경세포가 흥분한 것이 감각이다. 이 감각은 기억, 감정, 사고와 같은 요소가 배제된 상태로 지각 그 자체만을 의미한다. 물론 기억, 감정, 사고와 같은 요소들이 감각에 영향을 미치지만 순수한 감각만을 정의한다면 감각에는 이런 요소들이 배제되어 있다. 물론 감각되어 실제로 느껴지는 감각은 기억, 감정, 사고와 같은 것들이 작용해 복합적인 해석의 결과물로 탄생한다.
그렇다면 같은 감각이 왜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감각수용체를 포함한 감각기관의 차이가 사람마다 존재하기 때문이다. 감각수용체의 차이나 감각신경의 차이도 존재하고 심지어는 중추신경의 차이도 존재하므로 자극을 같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사람마다 같은 자극에도 다른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감각이라는 입력이 다르고, 감각된 정보의 처리 과정도 다르다면 해석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자극이 감각되어 해석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개입하는 기억, 감정, 사고와 같은 것들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같은 자극이라도 사람마다 너무나 다른 해석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고, 이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억이나 그에 따른 사고, 당시의 감정 상태와 같은 것은 시간, 장소, 상황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피부를 살짝 베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다른 외부 자극이 없는 상태라면 깜짝 놀랄 정도의 자극으로 감각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부위에 그보다 훨씬 큰 충격이 가해진다면 베는 것조차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최종적인 해석으로서의 감각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자극의 해석으로서의 감각은 공부나 창조성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역시 이 부분도 둘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상황에 따라 개인이 다르게 느끼는 감각이다. 같은 자극을 다르게 느낀다는 것은 같은 것을 같지 않게 인지한다는 의미다. 같지만 다르게 받아들인 감각은 뇌, 즉 이성과 감성에 다른 메시지를 제공한다. 이렇게 다르게 감각된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할 실마리가 제공된다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관점으로 과거의 기억과 대조하고 과거의 감정과 대조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공부이자 새로움을 향한 창조성이 발현되는 출발점이다.
다른 하나는 같은 자극이라도 인식하는 사람이 달라서 생긴 다른 감각이다. 이 감각은 위에서 설명한 상황에 따른 감각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를 만든다. 왜냐하면, 감각의 해석 과정에 개입하는 기억, 감정, 사고 등이 사람마다 너무나 다르고 작동하는 범위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른 감각은 다른 이성, 다른 감성을 만나 새로움을 창조하는 자극제가 되어준다.
그런데, 학습능력이나 창조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런 메커니즘이 전부가 아니다. 감각을 받아들인 뇌가 그다음 작업을 어떻게 수행하는가가 관건이다. 감각을 받아들인 뇌가 여러 가지 해석과 비교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 새로운 것을 지각해낼 것을 감각기관에 어떻게 요구하느냐가 학습능력이고 창조성이다. 감각기관이 100을 발견하고 뇌에 전달한 자극이 100이었으나, 감각기관에 새로운 명령으로 돌아올 때는 50이 된다면 뇌로 다시 돌아갈 자극은 얼마가 되겠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황소 머리(1942)>를 떠올려보자. 이 작품은 자전거의 안장에 손잡이를 붙여 만든 작품이다. 생김새가 황소의 머리를 닮았다. 피카소는 지나는 길에 버려진 자전거에서 안장과 손잡이를 떼어내 이 작품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며 한마디 했다. “이런 것은 나도 만들겠다.” 그런데 이런 작품을 만든 사람은 피카소가 처음이었다. 피카소는 사람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보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그 속에 숨은 본질을 찾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당신들은 보고 있어도 보고 있지 않다. 그저 보지만 말고 생각하라. 표면적인 것 배후에 숨은 놀라운 속성을 찾아라.”
그래서 감각 이전에 뇌가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있는 뇌여야만 제대로 자극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더 새롭게 지각할 것을 감각에 명령할 수 있다. 공부한다는 것은 이런 과정의 연속이다. 혹시 보고도 보지 못하는 그런 공부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은 피카소의 말처럼 ‘황소 머리’가 아니라 그냥 ‘버려진 자전거’를 보는 것이다. 또한, 남들이 보는 방식대로 보는 것이며, 그 방법조차도 ‘외운 대로’ 보는 것이다. 그저 외우는 공부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