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비밀>
교사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다루는 방식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혼내기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주 지적당하고 혼나면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가령 시어머니가 며느리 집에 와서 살림을 어떻게 하면 부엌이 이 모양이냐, 화장실은 왜 이렇게 더러우냐, 청소나 제대로 하고 사느냐, 냉장고에 오래된 음식이 있던데 왜 안 먹었느냐면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면 아마 대놓고 항변은 못해도 ‘그럼 당신이 직접 하시든지’ 하는 심정이 될 것이다.
되풀이하는 지적과 잔소리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무기력에 빠지게 만든다. 아울러 잔소리 못지않게 칭찬이나 경쟁도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독이 될 수 있는데 잘하는 아이만 칭찬하는 것은 나머지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지름길이고 경쟁 가운데서도 승자가 공을 독식하게 하는 방식은 나머지 사람들을 무기력으로 내몬다.
그렇다면 무기력하게 생활하는 아이들은 마음이 평화로울까? 학교에 와서 1교시부터 자는 아이들은 무덤덤하고 창피함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대답부터 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너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니까 편하겠다, 밤에는 잠이 안 올 것 같은데 뭐하면서 보내니?” 이렇게 조롱하듯 던지는 질문에 아이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집에 가서 자고 학교에는 아예 오지말까요?”
요즘 아이들은 과거보다 훨씬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어떤 면에서는 자식이 자기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부모를 더 기쁘게 해주려는 욕구 또한 강하다. 또 스스로 나는 잘한다, 괜찮다는 자신감도 가지고 싶어 한다. 특히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 아이인지, 어떤 면에서 장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발견해서 스스로 자기 길을 찾고 싶어 한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서서히 독립하고 싶은 욕구가 잘 반영되지 않다 보니까 결국 무기력해지는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모두 이런 욕구를 가지고 있다. 다만 기성세대는 이런 욕구를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혹은 어른들이 나한테 무관심해도 그냥 참으면서 스스로를 키워가야 했다(알아주지 않아도 살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반면에 지금은 알아주지 않으면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부모와 교사, 사회 전체가 사고방식을 전환해서 아이들을 대하고 양육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
‘잘하는 아이가 점령한’ 학교와 ‘엑스트라’의 학교
친하게 지내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한테서 긴급 연락을 받았다. 새로운 학교에 부임해서 상황을 보니 기가 막혀서, 거창하게 말하면 학교 컨설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수학경시대회에 대표로 나갈 아이, 피구를 포함해 운동을 가장 잘하는 아이, 영어 스피치를 가장 잘하는 아이, 영재교육청에 과학영재로 선발된 아이, 학교 계주대회에서 우승한 팀의 주장. 지금 열거한 항목에 해당하는 아이가 다 같은 아이라는 것이다. 이 아이와 고학년 몇몇이 학교의 모든 행사를 지배하다시피 해왔으며 학교에 무슨 일만 있으면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그 아이들을 선발하고 추천해서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기회가 아예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에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다른 것도 다 잘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머지 아이들이 참여할 기회를 만들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상황이며, 그래서 대다수 아이들의 분위기는 침체되어 있고 수동적이며 잘하는 그룹 아이들과 섞이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 학교는 다소 극단적인 예에 속하기는 하지만 우리네 학교는 지난 수십 년간 소위 ‘잘하는 아이들’이 지배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밥을 더 일찍 먹기도 하고, 전교 석차 100등 안에 드는 아이들에게만 도서관 자리를 배정하기도 하며, 혼날일을 해도 공부를 잘하면 쉽게 용서해주는 분위기는 지금도 진행 중인 우리 교육의 모습이다. 학교폭력 자문을 한 경험에 비추어봐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가해자일 때는 온정적으로 대우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학교는 ‘잘하는 아이’를 편파적으로 좋아해왔다. 아이들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 서투르고 공평하게 기회를 주는 일에 부족했다. 학업이라는 분야에 경쟁을 끌어들여서 우수한 성과를 내는 아이들에게는 기회를 더 주는 특전을 베풀고, 성적에 따른 계층적 지도가 만들어지도록 해왔다.
‘잘하는 아이’ 그룹에 속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마치 그림자나 유령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부당함을 겪는다. 아이들은 학교가 보통이나 그 이하의 학생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고 자기가 큰 사고만 치지 않으면 다행으로 여기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정말로 잘 아는 교사가 없다는 현실도 알게 되었다.
누구의 책임 문제를 떠나서 지금의 학교 시스템은 많은 학자가 주장하듯이 아이들을 존중하는 형색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하고 싶어 하는 아이, 관심은 있는데 지금은 실력이 조금 부족한 아이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엑스트라’들은 자기도 기회를 가지려면 특별하게 잘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라도 있어야 한다는 비정한 어른 사회와 같은 현실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다.
무기력 시스템을 양산하는 일상의 대화 10
1. 평가하기 : 잘 하니, 못하니.
2. 비교하기 : 걔는 이렇다더라.
3. 조건화하기 : 이렇게 하면 해줄게.
4. 다그치기 : 그 정도 하고 했다고 하는 거야?
5. 혼내기 : 혼나고 할래, 그냥 할래?
6. 대신 해주기 : 이리 줘, 네가 뭘 할 줄 알겠니.
7. 막말하기 : 벌레, 쓰레기, 한심한 아이가 되었구나.
8. 사랑 철회하기 : 이러려고 널 낳고 키운 게 아니야.
9. 옛날이야기 하기(꼰대질) : 나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10. 희망 없음 이야기하기 : 네가 그렇지 뭐. 어쩌겠어, 할 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