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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푸른 햇살,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마지막 회)

<여행의 이유>

by 더굿북

처음 겪은 불볕더위, 7월의 델리


델리Delhi 낮의 온도는 45도를 웃돈다. 거리를 2시간 돌아다녔을 뿐인데 옷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숙소로 돌아와 옷을 벗어 땀을 비틀어 짜면 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숙소에 있는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 델리 시내에 얻은 숙소에 에어컨이 있어서 덥지는 않겠지 생각했는데 미지근한 바람만 나온다. 주인에게 이야기하니 이것은 에어컨이 아니라 모양만 비슷한 선풍기란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하루 동안은 에어컨으로 알고 행복하게 지냈으니……. 벗은 옷을 세탁하여 방에 널면 1시간이면 바짝 말라 다시 입고 나가기를 반복한다. 살인적 더위다. 한국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쾌적하고 생활하기 좋은지 평소답지 않은 애국심이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른다.

1.jpg?type=w1200 ⓒ김경우 인도 타르사막


20세기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는 북쪽으로는 히말라야 산지가 길게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타르 사막이 펼쳐져 있다. 수도 델리는 뉴델리와 구델리로 구분한다. 남쪽에는 영국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뉴델리가 있는데 주로 공공기관과 고층건물이 들어서 있다. 보통 구델리를 델리라 부르는데 야무나 강을 등지고 델리 성과 성벽으로 둘러싸여있다. 11세기를 전후해 중동지역에서부터 들어오던 이슬람 세력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문화의 색채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꾸뜹 미나르 유적군’이다. 델리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세 곳 있다. 붉은 성이라고 불리는 ‘레드포트’, ‘후마윤 묘지’ 그리고 ‘꾸뜹 미나르 유적군’이다.

2.jpg?type=w1200 ⓒ한미숙 인도 델리


몸의 염분을 씻어내고 땀에 젖은 옷을 말려 입은 나는 유적지를 둘러보려고 문을 나섰다. 유적지를 보기 전에 먼저 텅 빈 뱃속에 주유할 에너지가 필요하다. 숙소 근처 한국 식당이 있다기에 그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한국 식당에서는 입맛 돋는 고국 음식을 먹는 기쁨도 크지만 같은 민족을 만났다는 반가움에 남남인데도 불구하고 즉석에서 형님 아우가 되고 언니 동생이 된다. 타지에서 만나면 모두가 내 형제요, 내 가족이다. 또한 배낭여행객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주고받는 사랑방 같은 곳으로 정보교환에 중요한 장소다. 식당에서 만난 젊은이 세 명과 택시를 타고 이동하여 델리 꾸뜹 미나르 유적지를 둘러본다. 동행하며 유적지를 둘러보니 경비도 분담하여 경제적이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니 편리하며, 함께 보는 재미도 있다.

평소 현지 음식에 관심이 많은 나는 주의 깊게 들은 식당을 찾아가 음식을 주문한다. 현지어를 몰라도 눈치와 코치, 손가락을 활용하여 메뉴판에 있는 그림을 보고 지적하거나 아니면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고 있는 손님이 있으면 그것과 같은 것으로 주문한다는 신호를 보내면 된다.

인도 음식은 선택만 잘한다면 우리 입맛에 그만이다. 탄두리 치킨tandoor chicken은 양념한 닭을 화덕에 구운 치킨이다. 화덕에 구운향이 나면서 담백하고 고소한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입안에서 침이 고인다. 바나나 잎에 나오는 밥은 오른손으로 카레 소스와 버무려 입안에 넣으면 된다. 인도인처럼 오른손과 왼손의 역할이 철저하게 나누어진 민족도 없다. 밥은 한국인처럼 오른손을 사용하지만,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을 사용한다. 화장실 뒤처리는 왼쪽 손가락으로 하니 오른손으로 시작해서 왼손으로 끝내면 된다. 손으로 밥을 먹는 나를 옆 테이블에 앉은 인도인이 힐끔 거리며 본다.

‘나, 한국 여자야. 뭘 그리 훔쳐보시나.’

새로운 식사 문화에 적응하니 인도인이 된 기분이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디저트를 주문할까? 디저트로 라씨를 주문한다. 라씨는 인도식 요구르트에 물, 우유, 과일을 섞어주는 음료다. 음식 사 먹는 재미에 맛들여 점점 대담해진 나는 거리에서 파는 라임 주스를 사 먹기도 하고, 사탕수수 나무를 손기계로 돌려 즙을 내어 파는 가게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현지인처럼 줄을 서서 기다려 사 먹기까지 한다. 사탕수수 나무즙은 먹어본 자만이 느끼는 거리 음료 특유의 달달한 맛이 있다. 우리나라 길 다방의 길 커피와는 비교가 안 되게.

불볕더위 속 델리의 미각여행 재미가 쏠쏠하다.


온 세상을 품은 커다란 눈망울

인도 사람을 보면 눈만 보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이 어찌나 커다란지 남자의 경우 부릅뜬 것 같아서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린아이나 여자의 눈은 맑고 매혹적이다. 특히 레Leh에 사는 아이들 눈망울은 그야말로 천사의 눈이다. 너무 순수해서 한 번은 여자아이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 눈이 시리게 맑은 눈동자 속에 푹 빠져 그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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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설산처럼 순수해 보이는 이유가 뭘까? 사방을 둘러봐도 외부 문화와 접하기 힘든 고도 3,500미터 고원지대다. 문명의 혜택을 찾아볼 수 없다. 여자들은 공동 우물가에 모여 채소를 씻고, 물을 길어간다. 소유보다는 나눔에 익숙한 생활이다. 문명의 오염이 덜 된 레Leh에서 만난 사람들. 애 어른 너 나 없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따라다니는데 찍은 사진 파일을 전해줄 방법을 물어보면 무슨 이야긴지 이해 못한다는 듯 커다란 눈망울만 껌벅인다. 사진기가 마냥 신기해 얼굴 한번 찍혀보고 싶은 이들을 위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다음에는 꼭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가져와서 아이들의 커다란 눈망울을 담은 사진을 즉석에서 선물해야지.


물음표라는 꼬리지느러미

내가 생각했던 인도는 걱정으로 가득한 나라였다. 걱정한다고 인도가 독도로 변하지 않으니 눈 한번 질근 감고 떠나는 거야. ‘어떻게든 부딪혀서 즐겨보자’는 마음으로 떠난 인도 여행이었는데 여지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생전에 맛보지 못한 인도 음식의 다양한 식감도 느꼈을 뿐 아니라 문명의 발달과 오염을 생각하게 되었다. 델리의 불볕더위는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참기 힘든 더위였다. 에어컨도 없이 지내는 델리의 시간을 통해 한국의 풍요로운 생활에 감사함을 느꼈고, 한편으로는 에어컨이라는 문명의 도움 없이도 지낼 수 있다는 체험을 했다.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에서 그들의 장례의식을 보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마음속으로 코를 풀며 울고 짜다가, 짜이를 마시며 장작불에 타고 있는 망자의 모습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맑고 투명한 눈으로 이방인을 바라보던 인도인의 따뜻한 시선과 마음의 여유에서 물질문명의 풍요가 인간의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본 나의 어리석음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여행은 지금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 처럼 떠나려는 순간부터 예정된 상황으로 진행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물음표라는 꼬리지느러미를 쉼 없이 흔들며
삶의 끝없는 햇살을 헤엄치는
환상을 꿈꾸는 물고기들이여!
알 수 없는 시간의 망망대해에서
일상이라는 푸른 햇살을 헤엄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인도로 떠나라!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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