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비밀>
잔소리가 줄어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는 아이에게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에 기초해서 진심으로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표현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힘들지? 세상이 더 힘들어진 것 같구나. 네가 힘들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선생님)는 네가 진짜 걱정될 때가 많아. 특히 네가 하고 싶어 하는 마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시간이 오래 가는 것이 걱정이야. 물론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생각 하지만.”
미움, 불만족, 한심함, 실망의 대상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는 크게 안심한다. 물론 아이들에게 이렇게 표현하면 대체로 면전에서는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고정화된 생각에도 변화를 꾀하려 해서 아이들의 관점을 전환하는 데는 영향을 미친다. 무기력하게 지내는 자신들을 향해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이 미움, 불만족, 한심함, 실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몰라’ 하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아이 자신의 마음이 어른에게 투사된 것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정신분석가 장 다비드 나지오(Juan-David Nasio)는 무기력한 청소년, 무능함을 보이는 청소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암적 실체는 초자아, 양심, 자아이상이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부모나 선생님에게 투사하고 그 결과 부모나 선생님이 자신을 부정적으로 다룬다고 느끼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단계까지 왔다면 이전보다 더 성의를 다해서 잘해줄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가장 간단한 것은 음식을 잘해주는 일이고 건강을 걱정해주는 일이다.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자려는 아이, 잠자기를 반복하는 아이에게 수업 전에 웃어주거나 초콜릿 한두 개를 주면 그 영향으로 조금 더 깨어 있을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더 정성스럽게 요리를 해주고, 너무 비싸지 않은 옷이나 가방을 사주고, 용돈을 조금이라도 더 주어도 좋다. 그 돈으로 피시방에 갈까 봐, 엉뚱한 곳에 쓸까 봐 걱정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의 속마음에는 왜곡된 인지가 숨어 있다. ‘나한테는 좋은 걸 주려면 아까울 거야.’, ‘밥값도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내가 잘하지도 않는데 잘해줄 리가 없지, 우리 엄마는 엄청 조건적이거든’, ‘쓸모도 없는 놈에게 더는 투자 안 하겠지.’
인정받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지내는 자신에게 잘해줄 리 없고 실제로 그런 의미가 담긴 잔소리들을 반복해서 들은 아이에게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만일 그렇게 조건적인 차원에서 아이를 대할 수밖에 없다면 아이가 달라지기를 기대하기란 힘들다. 쓸모, 능력, 결과를 보고 잘해주는 부모와 교사라면 사실 회사 사장과 다를 바 없다. 가정이나 학교가 기업이 아닌 이상 존재 그 자체로 잘해주어야 한다. 아이라는 존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즐거움,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잘해주는 본질적인 이유여야 한다.
잘해주는 것에 대해서 불안을 느끼는 부모나 선생님이 많은데 아이들은 잘해주면 기어오른다거나 그것이 고착돼서 이용해 먹을까 두렵다고 한다. 그런데 교육의 단골 주제는 신뢰가 아니던가? 부모가 믿은 만큼 아이가 행동하고 선생님이 보여준 신뢰만큼 아이들은 책임을 진다. 아이들이 상담실에 와서 하는 말에 따르면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더 극단적인 포기로 나아가지 않는 이유는 그래도 부모나 선생님이 잘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과와 무관하게 잘해주는 것은 결과에 따른 보상보다 훨씬 효과가 크고 일탈과 포기 같은 폭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보호막이 된다.
“너 같은 아이한테 더 잘해줄 필요가 없어!”, “잘해줘 봤자 무슨 소용이야, 돌아오는 게 이건데.”, “잘해준 것이 아깝다.”, “그동안 잘해준 거, 다 토해내게 하고 싶다.”, “잘해줘도 안 되고, 못해줘도 안 되고, 어떻게해도 안 되는구나.”, “다 틀렸다. 애당초 잘해주지나 말걸.”
이런 말들은 독약에 가깝다. 독약을 마신 아이들은 마음의 일부가 죽어서 에너지를 상실하고 처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아이들 마음에 칼자국으로 꽂혀 깊은 상흔을 남긴다. 독설의 칼날에 베인 아이들은 부상을 입고 오랫동안 기운을 차리지 못한다. 혹시 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싶다면 이런 독설을 자주 퍼부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