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의 조건, 열정으로 갈아신어라>
신제품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절치부심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부산의 한 야산에 올라 등산객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나는 산에 올라 등산객들의 옷차림과 등산화를 관찰하면서 머리를 쉬는 한편 영감을 얻기도 한다. 그러던 중 평범한 운동화를 착용하고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눈에 들어왔다. 등산로가 잘 다져진 대도시 주변의 야산에서는 등산화가 아니라 간편한 운동화를 신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그날따라 유독 운동화를 신은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그들은 운동화를 신고도 별 무리 없이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오히려 투박한 등산화를 신은 이들보다 발걸음이 훨씬 가볍고 경쾌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등산화도 저 운동화처럼 가볍게 만들 수는 없을까?’
보통 등산화의 무게는 적게는 600g에서 많게는 1,400g까지 나간다. 험한 산길을 걷기 위해서는 딱딱하고 견고한, 그래서 무거울 수밖에 없는 등산화가 적합하다는 것이 오랜 통념이었다. 그런데 그날 섬유 재질의 운동화를 신고 경쾌하게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을 보면서, 산행할 때 공기도 잘 통하지 않고 무거운 등산화를 신는 것이 과연 정답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걸을 때 발은 골고루 하중을 받고, 무게 중심은 매 순간 뒤에서 앞으로 이동한다. 이 무게를 고루 분배할 수 있어야 좋은 신발이다. 그렇다면 무겁고 딱딱한 등산화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등산화는 무겁고 단단해야만 하는 걸까? 그것은 산이라는 험한 환경 때문이다. 산행 도중에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야 하고 암벽 위를 걸어야 한다. 길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발목도 보호해야 하고, 수풀과 바위에 긁혀 신발이 쉬 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등산화는 내구성이라는 화두에 천착하여 ‘더 단단하고 더 튼튼하게’ 진화해왔다. 물론 재료가 두꺼워지면 무게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등산화에 대한 의존도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은 전문 산악인들도 등산화는 단단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중세의 전사가 철갑옷으로 무장하듯 단단하고 견고한(그래서 다소 무거운) 등산화를 착용했을 때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전문 산악인의 비율이 높은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등산화를 만들 때 어김없이 내구성에 기반을 두었고, 일반 소비층 역시 등산화를 고르는 기준을 견고함에 두었다. 이런 이유로 세계 굴지의 등산화 생산 업체들도 가벼운 등산화를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세상에 없던 걸 만드는 거야. 그래야 세상이 놀라지 않겠어?’
나는 즉시 계란 네 개를 들고 개발팀으로 향했다.
“잘 보거래이. 이 계란 네 개의 무게는 280g이대이. 우리가 앞으로 만들 등산화는 이보다 10g이 많고 300g보다는 10g이 적은 290g이대이.”
개발팀원들은 내 제안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럼 등산화를 계란 네 개의 무게에 맞추라는 겁니꺼?”
“그게 가능하겠습니꺼?”
“등산화가 무슨 실내홥니꺼?”
하지만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단 해보는 기다! 기왕에 만들 거면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획기적인 무게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솔직히 그때만 해도 내 제안은 억지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등산화를 계란 네 개와 비슷한 무게로 만들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에 직원들의 열정이 더해진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닐 거라고 믿었다.
등산화 하나를 만드는 공정에는 총 200여 개의 조각 부품이 들어간다. 그 부품들을 하나씩 연구해야 했다. 나는 직원들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등산화 무게를 1g 줄이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10만 원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10만 원이라는 금액은 절대 적지 않은 돈이었다. 게다가 100g을 줄이면 1,000만 원의 보너스를 챙길 수 있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직원들로부터 갖가지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기존 등산화가 반드시 채택했던 통가죽에서 과감히 탈피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천을 사용해 등산화의 무게를 줄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등산화의 기본 조건인 내구성과 방수가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벼우면서도 방수 기능과 내구성이 뛰어난 고어텍스를 채택해 샘플을 만들고 1년 동안 수천 번의 방수 테스트를 거쳤다. 회사 바깥에서는 등산화를 만드는 데 왜 그리 비싼 재질을 쓰느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를 통해 무려 45g의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일 방안을 찾기 위해 애써 만든 샘플을 산산이 분해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한 직원은 신발 밑창과 안창 사이를 주목했다. 그 부분에는 경사가 심한 곳이나 바위를 디뎠을 때 발이 뒤틀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소형 쇳조각이 들어간다. 이 쇳조각 없이 뒤틀림을 막을 수는 없을까? 오랜 연구 끝에 카본으로 만든 중창이 탄생했다. 여기서 다시 80g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목표치인 290g에 이르려면 아직 250g을 더 줄여야 했다. 이때부터 나는 1g 줄이는 포상금을 100만 원으로 올렸다. 한 달 만에 포상금이 열 배로 뛴 것이다. 당시 주임급 직원의 월급이 100만 원이었다. 1g 줄이기 프로젝트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속속 등장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성과를 올린 사람은 개발팀의 입사 1년 차 새내기였다. 그는 발뒤꿈치 형태를 잡아주는 자재에 집중했는데, 상식을 뒤집는 답을 내놓아 10g 감량을 달성함으로써 총 1,000만 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초경량 등산화를 향한 전사적인 노력은 새로운 기술과 자재 개발이 어우러지면서 갱신에 갱신을 거듭했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290g이라는 목표에 접근해갔다. 430g 등산화인 ‘가이드’를 거쳐 드디어 초경량 등산화 ‘윙’을 놓고 최종 테스트에 들어갔다.
1998년 여름이었다. 지난 수년간의 땀과 열정이 저울 위에 올라가는 순간, 모든 직원이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눈빛으로 저울의 눈금을 지켜보았다. 저울 위에 등산화를 올리자 빠른 속도로 바늘이 흔들렸다. 그리고 바늘은 정확히 290g에서 멈추었다. 마침내 초경량 등산화가 탄생한 것이다.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얼싸안고 환호성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