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의 비밀>
역설과 긍정, 환대 그리고 참여가 무기력한 아이들을 대하고 이끄는 어른들의 자세여야 한다면 아이가 지속적으로 도전할 만한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은 격려와 칭찬이다. 칭찬의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격려의 중요성도 이미 아들러의 책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격려와 칭찬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해주어야 하는 가장 큰 책무다. 아이들을 실패하게 하고 못하게 하고 일부러 무기력하게 만들 이유란 세상에 없다.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에디슨은 일찌감치 학교에서 외면을 받은 아이였다. 그는 정규 교육과정이 왕성한 호기심을 채워주지 못하자 학교를 등한시했고 결국 ‘문제아’로 낙인찍힌 채 열두 살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달걀을 품어 부화시키려고 한 유명한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에디슨의 행동은 평범하지 않다. 하지만 에디슨의 어머니는 그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 어떤 시도를 하든 받아들이고 격려해주었다. 여기에 문제아를 ‘발명왕’으로 만든 해답이 있을 것이다.
무기력한 아이들을 위해서도 가정, 학교 그리고 교실 전체에 긍정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실수나 실패에 아주 관대해야 한다. 실수는 친구요, 실패는 기회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 가끔 ‘성장학교 별’과 일반 학교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비교할 때가 있는데 언젠가 행사가 잇달아 있어서 같은 날 두 곳을 간 적이 있다. 밴드부원들이 연주를 하다 보면 실수를 하는 일도 있는데 ‘성장학교별’에서는 그냥 ‘다시 잘해보자.’ 정도로만 이야기하는데 비해서 일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내려오라’고 소리치며 혼내는 장면을 보았다. 잘해보자고 하면 아이들은 힘을 내서 다시 하려고 하지만 혼난 아이들은 위축이 돼서 무대에 올라가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다. 사소한 일하나에서도 학교 전체가 야유하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분위기인지 격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인지 알 수 있고, 여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학급 운영에서도 잘하는 것보다 일취월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한 학기를 시작할 때마다 어떤 아이에게 어떤 변화를 시도해볼까, 조심스럽게 찾아서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학기가 끝날 즈음에는 잘한 아이는 물론이고 많이 변화한 아이를 칭찬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곧 아이들을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무기력에서 벗어나면 ‘환영받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또 어른들은 노력하는 아이를 가장 멋있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일도 중요하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불필요한 더하기를 하지 말라는 것. “지금 너한테 얼마나 노력이 필요한지 알지?”, “지금 네 상태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지 알지?” 같은 말은 노력의 메시지가 아니라 압박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현재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강조하지 말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일인지를 강조해야 한다. 이 차이를 알면서도 자꾸 잊어버리고 “지금 네 수준 알지, 여기는 시골이야. 진짜 많이 노력해야 돼.”라고 압박하는 것은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아, 나는 안 되겠구나, 빨리 못한다고 해야겠어.’ 하고 뒤로 뺄 전략을 짜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격려의 의미
무기력한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언의 격려와 언어적 격려다. 그런데 우리는 격려를 받아본 적도 해본 적도 별로 없어서 다양하게 격려하는 법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격려조차 할 줄을 모른다. 아마 ‘혼내기대회’가 있어서 상대방을 혼내라고 하면 화를 잘 돋우면서 재미있게 참여할 것 같은데 격려는 경험도 없고, 할 줄도 모르고, 애초에 뭐가 격려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어떻게 격려하느냐고 물으면 “열심히 해!”, “잘해!”, “잘하면 피자 한 판 쏠게!”라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게 정말 격려일까? 열심히 하라거나 잘하라는 말은 압박이지 격려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거나 조건을 내거는 것은 격려라기보다 보상, ‘네가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내가 물질적으로 보상해줄게.’ 라는 어쩌면 보상을 넘어서 뇌물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아들러는 격려를 ‘아이를 신뢰하고 존중하며 실수나 실패를 해도 자존감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했다. 격려의 영어 표기 ‘encouragement’는 ‘용기’라는 뜻의 ‘couragement’에 접두어 ‘en’이 붙은 것이다. 즉, 원래 격려는 ‘용기를 다시 갖게 하는 것’이다. 더 근원적으로는 ‘cour’의 어원이 ‘심장’을 의미하므로 ‘심장이 다시 뛰게 만드는 일’이다. 무기력한 아이의 죽어 있던 심장이 다시 뛰어서 ‘죽어 있기’에서 ‘다시 뛰기’로 용기를 내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용기를 갖도록 도와준 적이 있는가? 아이가 어떤 시도를 했다가 실수하거나 실패했더라도 아이를 믿고 깎아내리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용기를 내도록 북돋워준 적이 있는가? 아이를 신뢰도 존중도 하지 않으면서 실수했다고 “네가 이렇게 하면 내 체면이 뭐가 되니? 앞으로 너를 어떻게 믿어?”라고 몰아붙이지는 않았는가? 이런 말을 들은 아이들은 다시 힘을 내서 뭔가를 해보기가 힘들
어진다.
격려의 말들
정신과 의사이자 교육심리학자인 루돌프 드라이커스의 책에는 ‘너는 ○○○○을 잘하는데 참 보기 좋고 마음에 들어.’ 같은 표현이 격려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냥 ‘너 잘해.’가 아니라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네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니 발전하는 것 같아서 참 좋아.’처럼 어떤 모습이 좋다든지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라는 것이다.
아이가 문제 행동을 했을 때에도 ‘너를 좋아하지만 네 행동은 너를 좋아하지 못하게 한다.’라거나 ‘네가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를 돕는 것인지 시도해보지 않을래?’라고 말하는 것이 격려에 해당한다. 또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야. 실수를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가가 더 중요해.’, ‘너는 자꾸 못할 거라고 그러는데 우리는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믿어.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봐. 어려우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면 되잖아. 네가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네가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믿어.’라고 말하는 것이 격려다.
우리에게는 격려의 정의를 생각해보고 의도적으로라도 연습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른들은 흔히 ‘내가 널 어떻게 믿니?’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런 말이 아이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는 아이를 돕겠다고 생각한다면 신뢰를 표현하는 것이 격려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자 ‘너를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래야 아이가 실수하거나 실패하더라도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된다.
비교 섞인 격려는 격려가 아니다
우리가 종종 격려라고 생각하지만 격려가 아닌 말도 있다. 비교가 섞인 격려는 온전한 격려가 아니다. 엄격히 말해서 ‘너, 참 잘한다.’는 표현도 격려가 아니라 칭찬에 가까운 평가에 해당한다. 이런 말보다 ‘네가 노력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가 격려의 표현에 더 가깝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비교 패러다임이 너무 크게 자리를 잡고 있어서 아이들을 더 쉽게, 더 크게 낙담시키는 재주가 뛰어나다. 특히 무기력한 아이들을 다룰 때는 더 심하게 비교를 하게 돼서 “야, 너 이렇게 살아서 어떡하려고 그래?”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이 말은 곧 ‘너처럼 살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의미를 담은 강한 비교에 속한다. 가령 축구를 잘하는 아이에게 “야, 너 공 잘 차네. 진짜 축구 잘하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말에는 상대적으로 ‘잘 못하는 아이도 많은데 너는 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때는 “너 공차는 거 진짜 좋아하는구나.”라고 말해주는 것이 격려에 해당한다.
자꾸 비교하는 말 습관을 버리도록 노력해야 하며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적용할 수 있는 적절한 격려의 표현들을 배우고 연습하도록 해야 한다. 비교는 잘하는 아이에게도 부담을 줄뿐더러 못하는 아이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칭찬한다고 한 것이 잘못돼서 비교가 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 무능함을 보이는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마법은 곧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 때 가져야 할 태도는 무조건 아이의 존재 자체에 가치를 두는 것이다. 아이에게 신뢰를 보여주고 아이가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있도록 돕고 나서 아이가 하려는 노력과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을 진심으로 믿어야 한다. 실제로 나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교사가 아이를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아이를 변화시키는 데 큰 힘이 되는지를 알았다. 또 학급 구성원들이 그 아이를 도와주려고 애쓰고 지지하면 훨씬 더 고무되는 모습도 여러 번 보았다.
상담센터나 병원에서는 사회기술훈련이라고 해서 아이들에게 일대일로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 식으로 롤 플레이를 시키는데 당연히 학교에서는 또래들이 상담자들처럼 반응을 해주지는 않으니까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일반화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한 아이라도 “와, 너 진짜 노력 많이 하는 것 같아. 정말 달라졌어.” 라고 말해주면 그동안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격려한 것은 ‘선생님이니까(부모님이니까) 그러는 거겠지. 사실은 아닐 수도 있어.’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정말인가 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어, 진짜인가? 애들도 그렇게 말하는데.’ 하고 말이다. 또 교사가 학급 아이들 전체가 있는 자리에서 한 아이의 장점을 지지해주거나 모두에게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면 무관심과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아이들도 반응을 보인다. 드디어 잠에서 깨어나 대답을 하는 것이다. 이때 ‘긴 잠에서 깨어나하는 말이 고작 그거냐.’ 하는 식으로 반응하면 치명상을 입히기 쉽고, 비록 아이가 상황에 부적절한 말을 하더라도 “어, 그건 조금 특별한 의견인데.” 하고 응대해주어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나라들에서는 가령 교사가 질문을 하라고 했을 때는 어떤 질문이든 기본적으로 다 좋은 질문이라고 말해주는 편이다. ‘중요한 질문을 해주었다.’고 반응한 다음에 대답을 해주는 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질문을 하면 상대를 무시하는 표현을 동원해서 면박을 주는 일이 흔하다. 중요한 것은 질문을 했다는 행위 자체를 칭찬하는 것이므로 ‘참 좋은 질문을 해주어서 고맙다.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면을 일깨워줘서 도움이 됐다.’고 먼저 말한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거나 잘 모르는 것을 물어오면 어른들은 “너, 지금 꼭 그 질문을 해야 되니?” 또는 “너 그걸 말이라고 하니?” 하면서 면박하고, 특히 교사들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면 분위기를 망친다고 받아들여서 짜증을 내기도 하는데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실제로 짜증 나는 질문을 하는 일도 있을 테고, 빨리 진도를 나가야 한다거나 성적이나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무언가를 심도 있게 다룬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깊이 있는 지식을 다룰 여력이 아예 없다. 사람이 살아 있는 수업이 아니라 교과서에 맞춰 진도를 나가는 수업을 해야 하다 보니 아무리 좋은 질문이라고 해도 친절하게 대응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무기력한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이면 반드시 호감 어린 응대를 해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와~” 하면서 엎드려 있던 아이들까지 깨어나서 수업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때 교사는 또 “우리 ○○가 이렇게 수업에 참여해주니까 너무 좋은데.”라고 말해주면 더 좋을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하는 사람의 감정과 태도와 억양에 따라서 조롱이 될 수도 있고 격려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