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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Oct 13. 2016

09. 휴먼원정대, 박무택 대원을 수습하라.

<완주의 조건, 열정으로 갈아신어라>

2004년 5월, 엄홍길 대장이 나를 찾아왔다.

“요즘 통 잠이 오지 않습니다.”
엄홍길 대장은 나를 보자마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은 한 달 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2004년 당시 엄홍길 대장은 트렉스타의 기술고문으로서 전문 등산화를 개발하는 데 많은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세계 지붕을 넘나들며 그 누구보다 등산화에 정통한 엄 대장은 현장 게스트를 맡을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엄 대장은 등산화뿐 아니라 히말라야 16좌 완등 비법을 적용한 등산복 ‘16 Peaks’ 라인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 친구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나는 엄 대장이 말하는 ‘그 친구’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바로 박무택 대원이었다. 박무택 대원은 2004년 5월 18일 계명대학교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한 산악인이었다.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후 하산 길에 설맹(각막염증)으로 인해 에베레스트 부근에서 고립되었다. 더는 하산이 어렵게 되자 그는 원정대 동료를 설득해 먼저 하산시킨 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홀로 최후를 맞이했다. 
     
박 대원은 엄홍길 대장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2000년부터 엄 대장과 함께 칸첸충카, K2, 시샤팡마 등 히말라야의 험준한 고봉을 오르며 삶과 죽음의 고비를 함께해온 인물이었다.
“아무래도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엄 대장은 말끝을 흐렸다. 그의 눈 속에는 에베레스트의 하얀 눈 속에 파묻힌 동료 대원의 시신이 어른거렸다. 나는 그런 엄 대장의 심정을 이해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사고락을 함께하던 동료 대원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산 사나이는 산에서 죽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느 산악인은 오히려 산에서 죽는 것을 행운이라고도 여긴다. 박무택 대원은 산에서 운명을 다 했으나, 그의 육신은 아직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 외롭게 방치되어 있었다. 에베레스트 원정길에 오른 다른 대원들이 그의 시신을 봤다는 목격담이 종종 들려왔다. 엄 대장은 세계의 수많은 산악인이 오르내리는 등반 루트 한복판에 동료 대원의 시신이 그대로 방치된 것을 빤히 알고도 차마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엄 대장에게 마땅히 해줄 말이 없었다. 엄 대장 역시 내게서 어떤 말을 기대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오죽 답답했으면 나를 찾아왔을까. 엄 대장은 그렇게 몇 마디만 툭 내던지고는 쓸쓸히 내 방을 나갔다.
     
일주일 후 엄 대장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하루빨리 히말라야로 가서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해야겠습니다.”
처음 나는 엄 대장의 말을 잘못 들은 게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러 다시 그곳에 간다니……. 그의 시신이 있는 곳은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이었다. 엄 대장과 같은 전문 산악인도 그곳까지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신 수습을 위한 원정길은 일반 원정길보다 서너 배는 더 힘이 들 것이었다.
     
“더는 미룰 수가 없습니다.”
결의에 찬 엄 대장의 목소리는 분명하고 또렷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꽤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지난주에 나를 찾아온 후로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동료 대원을 위한 길이기는 하나, 이건 너무 위험한 일입니다.”
솔직히 나는 그런 엄홍길 대장을 말리고 싶었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는 너무나도 위험한 원정이었다. 세계 어느 원정대에서도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다시 찾아간 사례는 없었다.
     
“그 친구의 시신을 찾지 못하면 평생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할 겁니다.”
엄 대장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나는 그런 엄 대장의 각오를 꺾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에베레스트에 도착해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엄 대장의 결심을 전해 들은 옛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엄 대장과 험한 봉우리를 넘나들며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 전문 산악인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이미 산과 떨어져 새로운 삶을 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한마음으로 다시 뭉쳤다. 동료 대원의 시신을 저 먼 설원에 외롭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산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였다.
     
“역시 산 사나이들의 의리는 아무도 못 말립니다, 허허.”
엄 대장은 내게 옛 동료들을 소개해주며 껄껄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미소였다. 그해 겨울,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할 에베레스트 원정팀이 꾸려졌다. 엄 대장은 원정팀의 이름을 ‘휴먼원정대’라고 지었다.

다시 에베레스트를 향하여

휴먼원정대의 이번 원정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세계 산악사 초유의 등정이었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힘든 등반이 될 것이었다. 일반 원정이 아닌, 시신 수습을 위한 원정이기 때문이었다. 실종 추정 지역을 수색해야 하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또 시신 수습 장비를 지니고 직접 수색작업을 벌여야 하는 만큼 체력 소모가 엄청날 것이었다. 박무택 대원의 시신이 있는 곳은 8,750m의 암벽 구간으로 알려져 있었다.
     
내가 휴먼원정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휴먼원정대 대원들이 원정 준비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내가 할 일을 찾아 나섰다. 처음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엄 대장을 지원해주고 싶었다. 그가 우리 회사의 기술고문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산 사나이들의 진한 우정과 의리에 감동을 한 것이다.
     
나는 휴먼원정대의 경비 지원뿐만 아니라 본연의 임무대로 휴먼원정대의 등반에 적합한 전문 등산화를 개발하기로 했다. 휴먼원정대가 에베레스트로 떠나기에는 아직 시간이 넉넉했다. 사실 이 전문 등산화는 지난해부터 엄 대장이 트렉스타 개발팀에 끊임없이 요구하던 등산화였다.
     
엄 대장은 우리 토종 브랜드로 세계적인 등산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열의가 뜨거웠다. 그는 대중적인 등산화만으로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문 산악인을 겨냥한 고급 전문 등산화 개발을 제안한 것이었다. 전문적인 등산화가 시장성이 없을지 모르나, 앞으로 트렉스타가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엄 대장이 제안한 전문 등산화를 이번 휴먼원정대의 출발에 맞춰 개발하기로 했다. 휴먼원정대가 에베레스트 등반을 준비하는 과정에 맞춰 신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개발팀에서는 또다시 반복적인 시제품 개발과 착화 테스트 그리고 보완 과정이 이어졌다. 마침내 전문 등산화 ‘어코드’가 탄생했다. 국내에선 더는 필적할 것이 없을 만큼 합격점을 받은 등산화였다.
     
드디어 2005년 3월 14일, 휴먼원정대는 에베레스틀 향해 출발했다. 이번 원정길에는 이들을 취재할 방송국 팀도 동행했다.

히말라야는 영원하다.

휴먼원정대가 히말라야로 향한 후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의 동향에 귀를 기울였다. 일주일 전에는 휴먼원정대가 에베레스트 중턱에 베이스캠프를 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엊그제는 박무택 대원의 아내가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원정대는 하루에 두 번꼴로 트렉스타 본사에 연락을 해왔다. 원정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늘 간단명료했다.
     
하루하루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들의 동정은 간간이 언론에도 보도되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나는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중턱에 베이스캠프를 친 후로는 일손이 잘 잡히지 않았다. 행여 일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늘 노심초사했다. 나의 몸은 부산 본사에 머물고 있었지만, 마음은 에베레스트 한가운데에 머물고 있었다. 비록 그들과 함께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숭고한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사장님예, 원정대에서 연락이 왔심더.”
개발팀의 김 부장이 부랴부랴 내 방으로 찾아왔다.
“뭐, 뭐라 카드노”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더. 지금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운구 중이라 합니더.”
휴먼원정대에서 연락이 온 것은 2005년 5월 29일이었다. 네팔로 출국한 지 76일 만이었다.
     
“헌데, 시신을 운구하기가 만만치 않은 것 같심더.”
원정대와의 통화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허락되었다. 원정대 관계자는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만 간단히 전해주었다. 아무래도 시신을 운구하기가 수월한 것 같지가 않았다. 하긴 100㎏의 얼어 있는 시신을 운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게다가 에베레스트 정상의 눈보라로 인해 시야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원했다. 이제부터가 가장 어려운 고비가 될 것이다. 세계 산악사 초유의 ‘죽음의 지대’ 8,000m 고도에서의 시신 운구 작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원정대에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그날 저녁이었다. 원정대는 3시간 이상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얼음에서 떼어내는 작업을 거쳐 시신을 수습한 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 돌무덤을 쌓아 안치했다고 전해왔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돌무덤을 만들다.

다음 날 휴먼원정대의 활약상은 각 언론에 보도되었다.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45. 트렉스타) 등반대장이 이끄는 휴먼원정대는 29일 오후 1시 20분께(이하 한국 시각)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했다. 엄 대장과 원정대원, 셰르파 등 15명은 이날 3시 30분께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세컨드 스텝(가파른 암벽 구간) 위에 돌무덤을 쌓아 안치했다고 베이스캠프 관계자가 전해왔다. 원정대원들은 박무택 대원의 유품을 수습해 이날 오후 5시께 캠프3으로 무사 귀환했다. 이로써 휴먼원정대의 등반은 막을 내렸다. 세계 산악사에 길이 남을 이들의 위대한 여정이 끝난 것이다.
     
휴먼원정대가 귀국하고 일주일 뒤 엄홍길 대장이 나를 찾아왔다.
“엄 대장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환한 표정으로 엄 대장을 맞이했다. 그러나 엄 대장의 얼굴은 어두웠다.
     
“박무택의 시신을…… 꼭 고국으로 데려오려고 했는데…….”
엄 대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나는 그런 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원래 엄 대장의 목표는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고국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눈보라 속에 얼어 있는 박 대원의 시신을 수습해 돌무덤이라도 만든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원정대원들은 하산하면서 100m를 이동하는 데 두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등 운구 작업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은 생과 사를 오가는 악천후 속에서도 동료의 시신을 끝까지 수습하려고 했다.      

엄 대장은 원정대원들을 지켜보면서 악천후로 인해 또 다른 사고가 이어질 것을 염려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박무택 대원의 아내와 무선 교신을 한 후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히말라야 정상 부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하산했다.
     
엄 대장은 여전히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고국으로 데려오지 못해 아쉬운 얼굴이었다.
“엄 대장님은 할 만큼 했습니다.”
나는 엄 대장을 위로했다. 그의 얼굴은 아쉬움과 미련이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엄 대장은 내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쓸쓸히 사라졌다. 대체 산 사나이들의 우정이란 무엇일까. 에베레스트에 묻힌 박무택 대원은 이제 더는 외롭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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